이승만 정부(1공화국, 1948.8.15~1960.4.26)

 

정부 수립(1948.8.15) -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간선제)

주한민군 철수(1948.9~1949.6)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1948.9.22)

여수·순천 10·19사건(1948.10.19)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1948.10.23)

국가보안법 제정(1948.10.27)

학도호국단 창설(1948.11.10) - 이승만의 청년·학생들 단체

대한청년당 창설(1948.12.21) - 여순반란 이후, 여러 청년단들을 통폐합하여 창설

한국민주당은 민주국민당(민국당)’으로 개칭(1949.2.1) - 이승만과 한민당의 결별

국회프락치 사건(1949.5.18) - 국회 내 소장파 의원 3인을 남로당의 프락치로 활동했다는 혐의로 구속

국민보도연맹(1949.6.5) - ex)‘태극기 휘날리며이은주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사건(1949.6.6)

김구 암살(1949.6.26)

반민특위 해체(1949.8.31)

중국의 공산화(1949.10.10)

신교육법(1949.12.31) - 민족주의와 반공교육 강화

에치슨 라인 선언(1950.1.12) -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은 태평양지역의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고 선언

농지개혁법(1950.3.10)

2대 총선(1950.5.30) - 5·10총선거에 불참하였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출마

6·25전쟁 발발(1950.6.25) - 북한의 남침

UN 안전보장이사회 소집(1950.6.26)

UN군 참전(1950.7)

국민보도연맹·형무소 재소자 학살(1950.7~)

미군에 의한 노근리 학살 사건(1950.7.26~7.29)

인천 상륙 작전(1950.9.15)

서울 수복(1950.9.28)

중공군의 참전(1950.10)

국민 방위군 사건(1950.12~1951.3)

거창 양민 학살 사건(1951.2.11)

서울 재수복(1951.3.14)

휴전협상 실시(1951.6.23)

이승만의 자유당 창당(1951.12)

부산 조선방직회사 파업(1952.3.12)

지방자치제 실시(1952.4~5) - 최초로 시··면의회 의원과 도의회 의원 선거

부산 계엄령 선포(1952.5.25)

부산 정치 파동(1952.5.26) -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 47명을 국제 공산당의 자금을 받았다는 구실로 체포·구속

교육자치제 시행(1952.6)

1차 개헌(발췌개헌, 1952.7.7) - 이승만 재선을 위한 대통령·부통령 직선제 개헌안

2대 정·부통령 선거(1952.8.5)

노동관계 기본 4법의 제정(1953)

1차 화폐 개혁(1953.2)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1953.6)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1953.10.1)

간통쌍벌죄 공포(1953.10.3) - 남편의 축첩과 부인의 외도 등 처벌

제네바회담(1954.4)

3대 총선(1954.5.20)

부산 미군부대 한국인 종업원 파업(1954.8)

2차 개헌(사사오입 개헌, 1954.11.29)

석탄 공사 산하 노동자 파업(1954.12)

부흥부(1955.2) - 산업경제의 부흥에 관한 종합적 계획과 그 실시의 관리와 조정에 관한 업무 담당

호헌동지회(1955) - ‘반 이승만 세력의 결집

호헌 동지회 분열 - 민주당(신익희, 1955.9) vs 진보당(조봉암, 1955.12)

PL480(미국 공법 480, 1956~1969) - 미국의 누적된 농산물 재고를 원조 형식으로 처리 농산물 가격 폭락

3대 정·부통령 선거(1956.5.15) - 대통령 이승만(자유당), 부통령 장면(민주당)

진보당 사건(1958.1.12)

4대 총선(1958.5.2)

경향신문 폐간(1959.4.30)

2·4 정치파동(1958.12.24) - 국가보안법 개정 + 지방자치법 개정

조봉암 처형(1959.7.31)

전국노동조합협의회(1959.10)

대구 2·28 학생 시위(1960.2.28)

3·15 4대 정·부통령 부정선거(1960.3.15)

마산 중학생 김주열의 사망(1960)

새 민법의 시행(1960.1.1)

3개년경제발전계획시안(1960.4.15)

4·19민주혁명(1960.4.19)

4·25 대학교수단 시위(1960.4.25)

이승만 하야(1960.4.26)

 

 

 

허정 과도 정부(1960.4.28~1960.8.22)

 

대한교원노동조합연합회 결성(1960.5.22)

3차 개헌(1960.6.15) - 내각책임제, 양원제 국회(민의원, 참의원), 정부의 정당 보호, 사법부 개혁, 국민의 기본권 향상

신생활 운동(1960.7~)

교원 노조 운동(1960.7.3)

은행 노조 운동(1960.7.23) - 전국은행노동조합연합회

5대 총선(1960.7.29)

피학살자유족회(1960.8) - 전쟁 중 있었던 양민학살 피해자들 유족회

북한 김일성의 남북연방제 창설 제안(1960.8.14) - 남북 정부 대표로 최고민족위원회구성 제의

 

 

 

 

장면 내각 (2공화국, 1960.8.23~1961.5.15)

 

전국대학생총연합회 결성(1960.9.12)

10·8 판결(1960.10.8) - 역사 바로 세우기에 소극적

지방자치법 5차 개정(1960.11.1)

민족통일연맹(1960.11.1)

한국노동조합총연맹(1960.11.25)

4차 개헌(1960.11.29) - 소급 특별법

지방 자치 선거 실시(1960.12)

4H 운동(1961~)

민족자주통일협의회(1961.2)

한미경제협정(1961.2.8)

2대 악법 반대 운동(1961.3~4)

국토개발사업(1961.3)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4)

 

 

박정희 군정 (1961.5.16~1963.10.14)

 

5·16 군사 쿠데타(1961.5.16)

군사혁명위원회(1961.5.16)

미국의 승인(1961.5.18)

국가재건최고회의(1961.5.19)

경제질서 회복에 관한 특별성명서(1961.5.19) - 모든 노동쟁의 일체 금지

사회정화사업(1961.5.21)

국가재건비상조치법(1961.6.6)

농어촌고리채정리법(1961.6.9)

중앙정보부 조직(1961.6.10)

재건 국민 운동(1961.6.10~)

경제기획원 신설(1961.7.22)

한국노동조합총연맹(1961.8.30)

민주공화당 사전 창당 작업 착수(1961.10~) 민간조직 창설, 4대 의혹 사건

부정축재처리법 개정(1961.10.26)

미국의 차관 도입(1962~)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

정치활동정화법(1962.3.16)

2차 화폐개혁(1962.6.10) - 긴급통화조치

() 민주당 사건(1962.7.27)

이주당 사건(1962.7.27)

서독의 차관 도입(1962.10)

김종필·오히라 비밀회담(1962.10~11)

5차 개헌(1962.12.17) -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와 대통령 직선제

국회의원선거법(1963.1.12)

민주공화당 창당(1963.2.26)

5대 대통령 선거(1963.10.15)

6대 총선(1963.11.26)

 

 

 

 

 

 

박정희 정부 (3공화국, 1963.11~1972.10)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 파견 시작(1963.12.1)

한일회담 반대 시위(1964.3.24~)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례한다’(1964.5.20) - 김지하

6·3사태(1964.6.3)

무즙파동(1965.2)

한일협정(1965.6.22) 일본의 차관 도입(1965~)

인민혁명당사건(1964.8.15)

미국의 베트남 파병 요청 수락(1964.10.31)

베트남 전쟁 참전(1965~1973)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KIST) 착공(1966) 설립(1969)

브라운각서(1966.3.4) - 미국의 한국군의 현대화 · 해외근무수당 부담 · AID차관 제공

한미행정협정(SOFA, 1966.7.9)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6대 대통령 선거(1967.5.3)

7대 총선(1967.6.8)

동백림 사건(1967.7.8)

통일혁명당사건(1968.8.24)

국민교육헌장(1968.12.5) - ‘주체적 민족사관강조, 국사와 국민윤리 교육 강화

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1969)

대학교 입학 예비고사제 실시(1969)

닉슨독트린(1969.7.25) - 냉전의 완화

6차 개헌(1969.9.14) - 3선 개헌 강행

‘40대 기수론의 대두(1969.11) -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건(1970.4.8)

포항종합제철 기공식(1970.4) 준공(1973)

야스기 시안(1970.4.22) -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전환

경부고속도로(1970.7)

전태일 분신(1970.11.13)

중국의 UN가입(1971)

새마을 운동(1971~)

1차 국토개발계획(1971) 부동산 투기 폐해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 실시(1971)

7대 대통령 선거(1971.4.27)

8대 총선(1971.5.25)

사법부 파동(1971.7.28) - 박정희 정권의 사법부 길들이기

광주대단지(성남) 집단 폭력 사태(1971.8.10)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과 직통전화 개통(1971.9.20)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1971.12.27) - 노동동자들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제약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

7·4 남북공동성명(1972.7.4) -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8·3 사채동결 조치(1972.8.3)

1차 평양 남북적십자 본회담(1972.8.29)

2차 서울 남북적십자 본회담(1972.9.12)

 

  

박정희 유신 정권 (4공화국, 1972.10~1979.11)

 

대통령 특별 선언(유신헌법 선포, 1972.10.17) - 비상계엄령 선포, 비상국무회의의 헌법 기능 수행

북한 김일성 정권의 사회주의 헌법 선포(1972.10.27)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1972.11.4)

국민투표(1972.11.21)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1972.12.15)

8대 대통령 선거(1972.12.23)

7차 개헌(1972.12.27) - 유신헌법

포항제철 준공(1973)

1차 석유파동(1973)

중화학공업화 선언(1973.1.12)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제 실시(1973.2)

9대 총선(1973.2.27)

6·23 선언(1973.6.23) - 남북한 동시 UN가입 제의, 공산권에 대한 문호 개방 선언

김대중 납치 사건(1973.8.8)

유신체제 반대 운동(1973.3~) - 박형규 목사, 각급 대학교 시위, 김재준·천관우, 장준하 등

북한의 조국통일 5대 강령(1973.6.23)

이리(익산)수출자유지역 설치(1974)

건설사의 준동 진출(1974~)

전자공업육성법 발효(1974) - 삼성 반도체 생산 시작

긴급조치 1(1974.1.8.오전)

긴급조치 2(1974.1.8.오후)

민주청년총연맹사건(민청학련, 1974)

긴급조치 4(1974.4.3)

8·15 평화통일 3원칙 선언(1974.8.15) - 상호불가침협정 남북대화 총선거

2(재건) 인민혁명당 사건(1975.4) - ‘사법사상 암흑의 날선포(1975.4.8)

육영수 여사 사살(1974.8.15)

언론 자유 수호 선언(1974.10.24)

2차 국민투표 실시(1975.2.12)

민주국민헌장(1975.3.1)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65인 선언(1975.3.15)

학도호국단 부활(1975.4)

긴급조치 9(1975.5.13)

사회-민방위대 창설(1975.9)

현대자동차 포니출고(1976)

3·1 민주 구국 선언(1976.3.1) - 명동성당에서 개최(천주교 신부, 문익환, 김대중 등)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

쌀의 자급자족 가능(1977~)

민주 교육 선언(1977.12.2) - 해직교수협의회에서 발표

고리원자력발전소 준공(1978)

동일방직 노조 운동(1978.2) - 민주노조의 씨앗을 뿌린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노동 운동

함평 고구마사건투쟁(1978.4.24) - ‘썩은 고구마를 보상하라’(한국가톨릭농민회)

우리의 교육지표(1978.6.27) - 전남대학교 교수들이 발표

10대 총선(1978.12.12)

9대 대통령 취임(1978.12.21)

2차 석유파동(1979)

Y·H 무역사건(1979.8.11)

신민당 당수 김영삼 총재 제명(1979.10.4)

·마 항쟁(1979.10.18)

10·26사태(1979.10.26) - 영웅 김재규에 의해서 독재자 박정희 시대 종말

최규하의 제10대 대통령 당선(1979.12.6)

 

 

 

신군부쿠데타 집권(1979.12.12~1981.3.2)

 

12·12 쿠데타(1979.12.12)

서울의 봄(1980.3~5)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임(1980.4.14)

5·18 광주 민주화 운동(1980.5.18)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1980.5.31)

7·30 교육 개혁 조치(1980.7.30) - 대학 본고사 폐지, 학력고사제 시행, 졸업정원제(1981)

삼청교육대(1980.8.4)

미국의 전두환 장군 승인(1980.8.8)

전두환의 제11대 대통령 취임(1980.8.27) - 통일주체국민의회에서 선출

북한의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안’(1980.10.10) - 1연방국가 2체제, ‘최고민족연방회의구성

8차 개헌(1980.10.27) - 대통령 임기7(단임제), ‘대통령선거인단에서 선출

국가보위입법회의 발족(1980.10.27)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1980.12)

민주정의당 창당(1981.1.15)

 

 

전두환 정부(5공화국, 1981.3.3~1987)

 

5공화국의 시작(1981.3.3) - ‘정의사회 구현과 민주복지국가의 건설

5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1982~1986)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1982.1.22) - ‘민족통일협의회구성, ‘통일헌법에 기초한 남북한 총선거 실시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 사건(1983.10.9)

북한의 수재 물자 제공(1984.9.14)

12대 총선(1985.2.12)

남북 경제 회담·적십자 회담 개최(1985) 최초로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한 이산가족 고향 방문(1985.9)

‘3저 호황’(1986~1989) - 저금리·저달러·저유가

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7~1991)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1.14) - “탁 치자 억 하고 죽었다

4·13 호헌조치(1987.4.13)

이한열 열사 최루탄에 맞아 사망(1987.6.9)

6월 대항쟁(1987.6)

6·10 국민대회 선언(1987.6.10)

6·29선언(1987.6.29)

7,8월 노동자대투쟁(1987.7~8) - 87.6월 민주항쟁 이후 최대 규모로 노동운동 전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987.8.29)

9차 개헌(1987.10.12) -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노동 3권 보장, 헌법재판소 재설치, 군의 정치적 중립 명문화

13대 대통령 선거(1987.12.16)

 

 

 

노태우 정부(6공화국, 1988~1992)

 

북한의 대화 제의(1988.1.1)

13대 총선(1988.4.26) - ‘여소야대정국 형성

7·7 선언 =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1988.7.7)

5공 청문회 개최(1988.11)

경기 침체의 재개(1989~)

헝가리와 수교(1989.2.1)

전국교직원노동종합 결성(1989.5.29)

전대협 대표 임수경의 평양 방문(1989.6)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1989.9.11) - 자주·평화·민주, 2국가 2체제(과도기)1국가 1체제(통일), ‘남북각료회의남북평의회설치

폴란드와 수교(1989.11.1)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1990.1)

3당 야합으로 민주자유당창당(1990.2.9)

소련과 수교(1990.9.30)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1990.11.20)

국제노동기구 가입(ILO, 1991)

수서 사건(1991.2)

부분적인 지방자치제 실시 - 기초의원선거(1991.3), 광역의원선거(1991.6)

남북한 UN 동시 가입(1991.9.17)

독일 통일(1991.10)

남북기본합의서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1991.12.31) - 남북한은 특수관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1992.1.20)

14대 총선(1992.3.24)

중국과 수교(1992.8.24)

14대 대통령 선거(1992.12.19)



 

김영삼 정부(문민정부, 1993~1997)

 

3단계 3기조 통일 방안(1993)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북한 송환(1993.3.19)

공직자 재산등록 실시(1993.6.11)

3단계 3대 기조 통일방안(1993.7.16)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실시(1993.8.12)

대전엑스포 개최(1993.8~11)

우루과이라운드 타결(1993.12.15)

하나회정리(1994.4.16)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1994.6)

카터와 김일성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1994.6.17)

김일성 사망(1994.7.8)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1994.8.15) - 8·15 대통령 경축사

제네바 북·미 합의서(1994.10.21) 2002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북미간의 논란 끝에 붕괴

국군 평시작전통제권 환수(1994.12.1)

세계무역기구 출범(WTO, 1995)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1995.3.9) 20061월 중단 선언

민자당정리와 자유민주연합조직(1995.3.30)

전면적인 지방자치제 실시(1995.6.27)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김대중, 1995.9.5)

민자당의 신한국당으로 개칭(1996.2.6)

15대 총선(1996.4.1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1996.9.12)

한보그룹 비리(1997.3.31)

김영삼 아들 김현설 구속(1997.5.31)

IMF 외환 위기(1997.11.21)

15대 대통령 선거(1997.12.18)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 1998~2002)

 

노사정위원회 설치(1998.2.6)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1998.6.16)

금강산 관광 시작(1998.11.18)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개칭(1999.1.21)

1차 연평해전(1999.6.7)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합법화(1999.7)

동티모르 파병(1999.9.28)

남북 정상 회담(2000.6.13~15)

6·15 남북 공동 선언(2000.6.15) -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

2차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2000.8.15)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2000.9.2)

남한만의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 착공식(2000.9.18)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2000.10.13)

16대 총선(2000.4.13)

남북한의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 착공식(2002.9.18)

개성공업지구 착공식(2003.6.30)

. 현대사



308. 정부의 지원으로 알렌이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병원은 광혜원이었다.

309. 최한기는 人政을 저술하였고 코페르니쿠스와 뉴톤을 소개하였다.

310.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개화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제시했으며 제국주의

옹호이론인 <사회진화론>을 소개하였다.

311. 홍경래의 난은 민란의 선구이며 임술민란(진주민란)은 민란의 전국적 확대를 가져왔다.

312.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 그리고 민보군과 맞서 싸웠다.

313. 요호부민층 가운데 경제력을 배경으로 새로이 향안에 오른 자들을 신향(新鄕) 이라 불렀다.

314. 구향과 신향의 향전(鄕戰)에서 신향이 승리하여 향권을 주도하게 되었다.

315.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에는 근검, 절약등 사회제도 개선도 포함되어 있다.

316. 동학사상은 민간신앙에 입각한 구제치료에 있어서 주술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317. 을미개혁은 단발령, 종두법 실시, 건양, 태양력, 우편제도, 소학교 설치 등으로 갑오개혁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318. 지구도경-박영교, 지구전요-최한기, 일동기유-김기수,조선교육론-서광범, 기화근사-김옥균등은 한국인의 작품이다.

319. 동학교단이 기포령을 내려 집결시킨 북접군은 전봉준의 남접 농민군과 합세 해서 공주전투에 참가하였다.

320. 독립협회는 1898년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면서 특히 러시아에 대한 경제군사적 침략을 격렬히 비판하였다.

321.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제시된 조선의 외교노선은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국 및

미국과 동맹관계를 가진다는 내용이. 조선책략의 유포로 대미수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322. 조미수호통상조약에는 치외법권과 최혜국조관, 조차지 설정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었다..

323.갑신정변의 신정부강령에는 內侍府奎章閣惠上共局등의폐지가 담겨있다.

324. 1897년 대한제국의 개혁내용중 하나는 왕실재정을 담당하는 궁내부 내장원에 많은 재원을 집중시켰다는 점이다.

325. 독립협회의 개화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친일친미적 성향과 상인지주학생 중심의 부르조아 개혁운동이었다는 점 그리고 농민군이나 의병에 대해 적대시했다는 점 등에 기인한다.

326. 최초의 외국인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 대신 부임한 미국의 데니(Denny)마저 역시 위안스카이를 통한 청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327. 동학농민군의 집강소에는 집강, 서기, 성찰, 집사, 동몽 등이 소속되었다.

328. 독립협회는 민주정치운동을 전개한 최초의 정치단체이나 황권을 옹호 하였다.

329. 유길준에 의하면 개화에는 허명개화(虛名開化)와 실상개화(實狀開化)가 있다고 하였다.

330. 오지영의 東學史에 나오는 12개조의 폐정개혁안 청상과부의 개가허용은 갑오개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331. 독립협회는 정동구락부를 근간으로 조직했으나 관민중심의 시민단체로 발전했다.

332.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을 위한 무리한 수취와 노역으로 인해 민원을 샀고 최익현의 탄핵을 받았다.

333. 개화파는 농공업을 육성하고 국력을 키워 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려 하였다.

334. 대원군은 두 차례의 양요를 거치는 동안 대포를 제작해 강화도에 배치 하였는데 이때 참고한 서적이 해국도지이다.

335. 대한제국의 개혁기에 북간도 관리를 파견했다.

336.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에서 공통적으로 표방되고 실시되었던 것은 인재등용문벌타파이다.

337. 조선정부는 전주화약 이후 청군과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철수 를 거부하고 오히려 경복궁을 강점하였다.

338. 한말의 광무개혁에서는 서울의 친위대를 증강하고 시위대를 창설하는 등 제한 군주적 지위로 격하된 왕권을 절대적 왕권으로 강화시켰다.

339. 광무개혁은 양전사업이 전개되고 지계가 발급되어 근대적 토지 소유권 제도가 마련 되었던 것으로 산업자본의 형성계기가 되었다.

340.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은 한국의 전통적인 토지소유관계와 경영방식의 헛점을 이용한 것이다.

341.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유교문화의 전통을 존중하는 문화적 자부심을 강화 시켰다.

342. 강화도조약의 체결로 일본인은 조선연해에 대해 자유롭게 측정할수있었다.

343. 조선이 최초로 수교한 서구의 국가는 미국이었다.(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344. 만민 공동회는 정부 고관으로부터 상인백정들까지 모두 참석이 허용되었다.

345.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을 철회시킨 단체는 보안회(1904)였다.

346. 개항이후 일본상인들은 치외법권을 배경으로 약탈적인 무역을 자행하였다.

347. 개항이후 일본은 우리나라에 주로 영국산 면제품을 중계무역으로 수출하였다.

348. 일본상인들의 지나친 곡물반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방곡령이 시행되었다.

349. 울릉도압록강두만강 삼림 채벌권과 경성종성의 광산 채굴권을 획득한 나라 는 러시아였다.

350. 시전상인들은 대규모 철시와 황국중앙총상회 조직을 통한 상권수호운동을 전개하였다.

351. 갑오개혁을 통하여 조선사회에서 신분제도가 폐지되었다.

352. 내국인 자본에 의한 최초의 민간은행은 조선은행이었다.

353. 독립협회는 평등사회를 위한 개혁사상을 정착시켰다.

354. 신사 유람단()과 영선사()의 파견은 근대적 기술도입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355. 동문학(1883)은 정부가 건립한 영어강습기관이었다.

356. 최남선과 박은식은 조선 광문회를 설립하여 민족고전의 정리와 간행에 노력 하였다.

357.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새로운 국한문체 보급에 공헌하였다.

358. 독립신문과 제국신문은 순 한글로 간행되었다.

359. 자혜의원은 도립병원의 전신이며 대한의원은 국립병원으로 의료요원을 양성 하였다.

360. 지석영, 주시경 등은 국문연구소(1907)를 설립하여, 국문의 정리에 힘썼다.

361. 우리 나라 최초의 신체시는 최남선이 지은 해에게서 소년에게이다.

362. 한말 <동도서기론>은 일본의 화혼양재론(和魂洋才論) 중국의 중체서용론과 맥을 같이 하였다.

363. 구한말 구국을 위해 일어난 의병중 이인영을 중심으로 한 의병들은 서울진공 작전을 폈다.

364. 19세기 후반 일본은 주로 면제품, 염료 등을 수출하고 미(), , 우피 등을 수입해 갔다.

365. 대한제국의 개혁사업중에는 양전지계사업을 통해 토지소유권을 근대법적으로 인정하려고 하였다.

366. 안확은 조선문명사에서 문명진보론적 민족사관을 강조하였다.

367. 19051910년의 기간중 우리나라 근대학교의 양상으로 중요한 것은 여성교육의 필요성에 의한 많은 여학교 설립이 있었다.

368. 일제시대 공포된 법령 중 1920년대 민족운동을 억압하려는 법적 근거는 치안유지법(1925)이었다.

369. 新幹會는 일본의 주권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의 운동인 자치운동을 적극 반대 하였다.

370.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의 시대순 배열은 正友會宣言-7월테제-12월테제-9월테제 -10월서신이다.

371. 안재홍은 조선상고사감에서 민족정기를 강조하였다.

372. 우리 나라 31 운동과 중국 54 운동의 공통점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저항운동이었다.

373. 윤봉길은 애국단원으로서 상해 홍구공원에서의 시라카와(白川)대장 사살은 한.중연합항일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374. 공화주의와 독립군기지 건설, 미곡상점설립, 친일자주처단등의 활동을 한 1910년대 전투적 독립운동단체는 대한광복회이다.

375. 일제시대 조선인 공업의 대부분은 직포공업과 식료품 가공업이었다.

376. 일본의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공업과 농업의 불균형, 공업시설의 지역적 편재성이 심하여 해방후의 민족경제에서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377. 해방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관료경찰을 대거 등용하였다.

378. 日帝는 교육을 통한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립학교령, 교과용 도서 검정규정 등을 만들었다.

379. 상해에서는 동제사, 신한혁명당, 신한청년당 등이 조직되었다.

380. 구한말 애국계몽단체 중 국권회복과 共和政體의 국민국가수립을 궁극적 목표로 삼아 활동하던 단체는 신민회였다.

381. 일제가 회사령(會社令)을 철폐한 이유는 일본독점자본의 효과적인 조선 침투를 위해서이다.

382. 31 운동의 배경으로 레닌과 윌슨의 민족자결의 원칙은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383. 주시경은 국어문법, 말의 소리등을 저술했는데 훗날 많은 제자들에 의해 <조선어학회>를 결성하였다.

384. 31 운동직후 폭탄세례를 받으면서 부임한 사이또오(齊藤實)[조선민족에

대한 대책]을 구상하면서 친일파 양성책을 고안하였다.

385. 삼국간섭후 친러내각인 제3차 김홍집 내각이 구성되었다.

386. 러일전쟁의 결과인 포츠머드 조약에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이 인정되었다.

387. 의화단(義和團)의 난을 계기로 소련이 만주에 대군을 주둔시키자 일본이 영일 동맹(1902. 1)을 맺고 영미와 함께 철군을 요구하였다.




388. 아관파천을 인정한 베베르소촌각서(1896. 5)’, 38선 분할을 잠정합의한

로마노프산현의정서(1896. 6)’에 이어 러일 양국은 조선의 내정불간섭, 교관

고문파견의 사전협의 등을 약속한 니시로제협정(1898)’을 체결하였다.

389. 독도는 을사조약을(1905) 체결하던 해에 일제에 편입되었다.

390. 민족사관의 편협성과 국수성에 머물러 있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진단학회 (1934)를 구성하여 진단학보를 발간하였다.

391. 김원봉, 이동녕, 김두봉 등이 1932년 조선의열단,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이 모여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발족시켰다.

392. 민족혁명당은 중국지역 민족운동전선의 좌우익을 통일하는데 목적을 둔 정당 이었다.

393. 4차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에서 자금을 받아 활동을 하였으나 곧 발각되고,

코민테른은 <12월 테제>를 통해 당의 해체와 재건을 지령했다.

394.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국의 지배를 인정 받았다.

395. 행정각부에 일본인 차관이 파견된 것은 한일신협약(1907) 이후의 일이다.

396. 일제는 만주사변이후 한반도에 대해 병참기지화정책을 시행하였다.

397. 일제는 공황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블록경제체제 를 추진하였다.

398. 대한광복회는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의연금 징수, 친일파 처단등의 활동을 담당하였다.

399. 한인 애국단원이었던 이봉창과 윤봉길은 의거활동을 전개하였다.

400. 만주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기지로는 삼원보, 한흥동 등이 있다.

401.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는 한국인 사회에 기반을 둔 자치정부의 성격을 띠었다.

402. 지주출신의 민족기업으로는 김성수가 설립한 경성방직주식회사가 있다.

403. 성명회(聲明會)는 연해주에서 광복의 그 날까지 피의 투쟁을 결행하겠다는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404. 일제의 간도참변과 미쓰야 협정(삼시협정-1925)으로 만주에 이주하였던 우리 동포들은 큰 희생을 치루었다.

405. 천도교대종교에 대한 일제의 감시와 간섭이 특히 심하였다.

406. 청구학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어용학자들의 왜곡된 한국사 연구에 대항하여 진단학회(1934)가 조직되었다.

407. 동경 유학생들은 극예술 협회를 조직하여, 연극공연을 민중계몽의 수단으로 삼았다.

408. 군대식으로 조직된 대한광복단은 만주에 독립군 사관학교건립을 계획하고, 친일파 숙청활동을 하였다.

409. 농민운동은 주로 소작인조합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는데, 5할 이상의 고율인 소작료 인하소작권 이동반대가 주목적이었다.

410. 일제의 식민사학으로는 민족동화론, 타율성론, 한국사상 부재론, 정체성론등이 있다.

411. 일제의 무차별 수탈정책으로 1920년대에는 노동쟁의, 소작쟁의가 급격히 늘어 나고 있었다.

412. 신간회운동, 민족유일당운동, 전국연합진선협회운동은 일제하 전개된 좌우익 의 연합단체운동이었다.

413.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지주계급의 토지소유는 근대적 소유로 法認 되었다.

414. 일제가 독도를 일본영토에 포함시키는 불법행위를 자행한 시점은 러일전쟁 시기이다.

415. 건국준비위원회는 449월 인민대표자 대회를 열어 조선인민 공화국을 선포 하였다.

416. 2공화국 시기에는 각 대학에 민족통일연맹이 만들어졌으며 통일운동이 본격화되었다.

417. 조선민족혁명당은 1935년 남경에서 한국독립당 등 5당이 통합하여 조직된 민족통일전선이다.

418. 1941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채택한 건국강령의 내용에는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의무화하고 일체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419. 남북공동성명에서는 중상비방의 중지와 남북조절위원회의 설치를 약속 하였다.

420. 31 운동은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3대 원칙을 가지고 준비에 임했다.

421. 191931 운동직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무원제와 의정원제가 결합 된 민주공화정체였다.

422. 19727. 4 남북공동성명은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서 민족적 단결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423.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한 독립군단(獨立軍團)參議府이다.

424. 419 의거후 통일론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가장 큰 요인은 혁신적 정치세력 의 활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425. 38도선 획정에 대해 얄타협정에서 연합국의 군사적 견지에서 논의되었다.

426. 농지개혁의 지가는 연평균 소출의 1.5(150%)5년간 평균분할상환 (연소출의 30%)케 하고 상환 완료전에 소유권 이전을 금했다.

427. 민족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전개된 좌우합작 운동을 중도세력인 김구, 여운형, 김규식 등이 중심 인물이었다.

428. ‘좌우합작 7원칙은 토지친일파 처리문제 등을 중도적인 입장에서 조정하였다.

429. 임시정부의 건국 강령 가운데는 대산업기관의 국유화, 의무교육의 실시, 사회 보장제의 실시 등이 규정되어 있다.

430. 19448월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건국동맹을 결성하였으며 산하에 농민동맹,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다.

431. 金九 등 임시정부 계열에서는 반탁운동을 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하고 신탁통치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국민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432. 31 독립선언서는 본문을 최남선이, 공약삼장은 한용운이 작성하였고 민족

대표자 33인의 총대표는 손병희였다.

433. 조선농민을 회유하고, 항일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일제의 허구적 관제운동 을 <농촌진흥운동>이라 한다.

434. 194111월 임정이 채택한 건국강령에는 대생산기관, 국가기간산업의 국유화 를 규정하고 있으나 중소기업은 사유화한다고 명시하였다.

435. 해방후 신한공사가 관리했던 日本人 토지는 특혜불하로 신흥재벌의 탄생 계기가 되었다.

436. 좌우합작 우익단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1937)와 좌익단체인 조선민족전선

연맹(1937)을 통합하여 전국연합진선협회가 결정(1939)되었다.

437. 신탁통치를 계기로 좌익의 단합은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결성되었다.

438. 1차 조선공산당의 모체는 이르쿠츠파 계열의 화요회와 일본 유학생파의 북풍회의 결합체인 비밀결사(1925. 4)였다.

439. 국내 유일의 건국준비단체인 건국준비위원회는 치안대를 결성하고, 일본 경찰서를 접수하였다.

440. 건국준비위원회는 건국강령으로 완전한 독립국가건설, 민주정권수립, 자주적 민중생활의 확보를 내세웠다.

441. 3공화국 들어와 굴욕적인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본격화되자 학생과 시민 들은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 ‘63

사태였다.

442. 우익측의 김규식과 좌익측의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좌우합작위원회가 1946 7월 구성되고, 좌우합작위원회가 일어났다.

443. 해방후 농지개혁에 있어서 19483월에는 우선 신한공사 소유토지를 농가 호당 2정보를 상한으로 유상분배하였다.

444. 한국내에서 좌우익의 대립을 더욱 격화시킨 것은 신탁통치문제였다.

445. 1950년대 남한의 공업화는 원조물자를 가공하는 소비재 산업이 팽창 하였다.

446. 광복 후 좌우의 갈등을 파탄지경까지 몰고간 큰 사건은 신탁통치 찬반 운동 이었다.

447.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사항으로 임시정부 제정당 사회단체와 협의하여 4개국 신탁 통치의 방안을 강구한다는 내용이 있다.

448.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를 한 것은 1941년의 일이다.

449. 남북한의 교차승인과 유엔 동시가입을 제안한 것은 623선언이다.

450. 북한의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에 배제된 북한지역 정치세력은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이다.

451. 74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남북한 정부의 합의에 의해 발표된 최초의 공동 성명이었다.

452. 1972년에 합의된 평화통일 3원칙의 중심내용은 통일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 조선시대

 

122. 조선시대 四館으로는 예문관, 승문원, 성균관, 교서관을 말한다.

123. 국왕의 모든 행위는 史官에 의해 기록되었다.

124. 조선의 三司三法司에 공통되는 것은 사헌부이다.

125. 조선의 과거제도에서 잡과의 경우 初試는 해당관청에서 覆試禮曹에서 관장 하였다.

126. 조선의 과거제도에서 武官시험의 경우 대과소과의 구별이 없었으며 壯元도 없었다.

127. 태종 이방원에 의한 왕자의 난은 왕자들간의 세력다툼이자 훈신 제거의 기회가 되었다.

128. 태종때 향부곡을 제도상 폐지하였다.

129. 태종은 호패법을 실시하여 양반뿐만 아니라 노비까지 편제하여 流民방지, 인력 파악에 이용하였다.

130. ‘규형인지의는 토지측량기구로 이를 바탕으로 양전사업의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131.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유향소가 폐지되었다.

132. 조선시대의 서경권은 5품이하의 당하관 임명시 동의권 행사를 말한다

(고려는 모든 관리 임명시 적용).

133. 정조때 김치인에 의해서 규장각 제도가 기본 법제화한 대전통편이 만들어졌다.

134. 조선의 과전법은 시산관 모두에게 지급, 18등급 차등지급, 수조권의 위임이라는 점에서 고려 전시과와 공통된다.

135. 조선전기 동평관(東平館)은 일본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중국사신태평관, 여진사신북평관).

136. 조선전기 향청은 중앙관리로 하여금 연고지의 향청을 통제할 수 있도록 경재소를 두었다. 京在所는 그지방출신 중앙관으로 구성되고 향청을 감독하였다.

137. 經國大典의 형벌 적용은 본인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부모형제처자까지도 연대 처벌하는 연좌법이 채택되었다.

138. 조선전기 특정 지역의 특산물, 교통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이나 문화재의 분포 상황까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는 동국여지승람이었다.

139. 천거는 초야에 숨어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제도였다. 조광조에 의해 한차례 시행되었으나 곧 페지되었다.

140. 조선조 세종때 노인들의 경험을 근거로 엮은 농서는 農事直說이었다(우리나라 최초의 농서).

141. 조선초 왕권강화에 기여한 기관은 승정원과 의금부였다.

142. 잡색군은 전직관료,노비까지 포함되어 편성된예비군이었다(농민은 불포함).

143. 노비는 신분이 세습되었고, 매매상속양도의 대상이 되었다.

144. 조선은 성문법치주의 국가이지만 민법에 해당하는 것은 주로 관습법을 적용하였다.

145. 역촌, 진촌, 원촌, 어촌, 점촌은 주민의 신분과 직역에 따라 형성된 특수 마을이다.

146. 16세기에 환곡제도는 점차 고리대로 변질되어 농민부담을 가중시켰다.

147. 고려국사동국사략은 성리학적 대의명분을 강조한 사서였다.

148. 조선전기 중앙집권화와 국방강화를 위해 조선후기에는 산업경제적 목적으로 각종 지도와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149. 사림은 양반신분의 우위성을 유지하기 위해 예학과 보학을 발달시켰다.

150. 조선의 교린정책에는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문화적 자존의식이 깔려 있었다.

151.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양인신분이면 누구나 응시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수공업자, 서얼, 무당, 승려 등은 응시할 수 없었다.

152. 조선시대 향교(鄕校)는 지방에 설치한 관학으로 중등교육기관이었다.

153. 조선 전기 양반은 군사적 의무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제외되었다. 이후 양반불역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154. 18C초 그림에서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그대로 나타내는 진경산수화가 출현하였다.

155. 조선 전기 과전법하에서 병작반수제는 법적으로 제한을 받았다.

156. 19세기 들어와 붕당구도의 파탄으로 비변사의 정치적 비중이 더욱 커졌다.

157. 사림파는 15C 개국 당시 중소지주층이나 16C 집권이후 농장을 배경으로 한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158. 조광조가 음모모략으로 인해 축출당한 것이 기묘사화이다.

159. 당쟁의 원인을 주로 연구한 서적은 이건창의 당의통략이다.

160. 이황의 理氣二元論에 대응하여 기대승(고봉)理氣共發設을주장하였다.

161.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에서 4단이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말하며 7정이란 이다. 사단칠정론은 조선의 리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162. 양명학은 주관적실천적 유학체계로서 주기론적인 입장으로서 북학파에 의해 소개되고 연구되었다.

163. 정제두에 의해 집대성된 양명학은 심즉리, 치양지, 지행합일을 주된 사상으로 하였다.

164. 18C 중엽 노론 내부에 주기설과 주리설의 분파가 생겨 이른바 호락시비(湖洛是非)’라 불리는 큰 논쟁이 일어났다.

165. 조선후기의 西人은 대신이 주도하는 臣權중심의 정치를 지향하였고 군주나 사대부가 똑같은 禮論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66. 임진왜란 당시 의병은 정부의 모병에 소극적이었고, 재산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봉기하였다.

167.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없다는점에서 조선시대 불교와 도교는 공통점을 갖는다.

168. 16세기 사림세력은 小學보급에 적극적이고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대중화 하였다.

169. 이순신이 최후를 마친 노량대첩이나 명량대첩도 모두정유재란(1597)이후의 일이다.

170. 북벌론자로는 봉림대군(효종), 송시열, 송준길, 이완, 임경업등이 있다.

171. 사림은 중앙집권체제보다는 향촌 자치제를 주장하였다.

172. 탕평책을 처음 시도한 숙종은 공평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일시에 특정붕당을 기용하거나 배척하였다

173. 인조반정(1623)의 결과 서인정권이 성립하였고 친명배금정책을 확실히 하였다.

174.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론은 이이의 학통계승을 자부하였다.

175. 정약용은 노동량에 따라 수확량을 배분하는 여전제(閭田制)를 주장하였다.

176. 이항로, 기정진 등은 주리론을 이일원론(理一元論)으로 발전시켜 위정척사운동 의 철학적 배경이 되었다. 위정척사운동은 후에 항일의병운동에 정신적 배경이 되었다.

177. 士林派는 대개 영남을 토착적인 중소지주였다.

178. 독일공사 부들러(budler)가 조선의 영세중립국화를 건의한 배경은 거문도 사건이었다(18851887).

179. 조선후기에는 왕이 행차할 때, 징을 치고 나가 직접 호소하는 제도가 새로 나타났는데 이를 <격쟁상언 擊錚上言>이라 한.

180. 조선후기 실학은 기존의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한 화이론을 현실위주의 화이론으로 전환하고자 하였다.

181. 이앙법은 노동력 감소, 농민층의 계층분화, 광작 등을 야기시켰다.

182. 대동법 실시의 가장 큰 의의는 家戶단호의 세 부과가 土地단위의 세부과 방식으로 바뀌어 무전농민의 부담감소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183. 군적 수포제의 폐가 커지자 <양역변통론>이 대두되었다. 그것은 병농일치제로 의 환원과 호포론이 거론되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4. 균역법은 16/2필을 12/1필로 감해주고 결작 2를 징수하며 양반에게는 선무 군관이라는 이름으로 1필씩을 부과하였다.

185. 조선시대 지방군인 속오군은 양반에서 노비까지 편성된 양천혼성으로서 경비를 자담하였다.

186. 실학(實學)은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표방하는 비판적실천적 학문사상 이었다. 또한 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187. 정약용은 田論에서 閭田制의 차선책으로 井田制를 주장하였다.

188. 천주교사 일지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는 김대건이며 최초의 신자는 허균이다.

189. 조선전기의 화가인 안견, 최경, 이상좌 모두 도화서 소속의 관인화가였다.

190. 분청사기 청화백자, 철사백자, 진사백자는 모두 조선의 자기들이다.

191. 분청사기는 고려의 청자가 퇴화한 것으로 조선전기에 만들어졌으나 점차 쇠퇴하여 백자가 조선자기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92. 숙종때 처음 간행된 조선왕실의 족보가 선원록이다.

193. 실록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역대 국왕의 훌륭한 언행으로 모범이 될 만한 것을 뽑은 것이 국조보감이다.

194. 한치윤의 <해동역사>540여종의 중국 및 일본서적을 참고하여 85권으로 펴낸 방대한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다.

195. 백골징포, 양역변통론, 어세, 염세, 결작은 모두 균역법과 관련이 있다.

196. 1718세기 농민의 계층분화로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난 임노동자층이 널리 형성되었다.

197. ‘장시라는 농촌시장은 연작상경 농법이 확립된 15세기 후반에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198. 농가집성에서 지배층은 지주전호제를 설정하여 지주적 토지지배가 유지 되었다.

199. 조선후기 삼정(三政)중에서 가장 심한 문란 현상은 환곡의 운영에서 나타났다.

200. 1819세기의 民畵는 서민화가가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작가와 제작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다.

201. 正祖代 재상으로서 남인 학자들을 보호하고 서학을 묵인한 정치가는 채제공 이었다.

202. 공납의 일종인 進上은 왕에 대한 지방관의 의례적인 선물이었다.

203. 미천한 출신 이경민은 서얼의 역사인 희조일사를 편찬하였다. 이 외에도 이진흥의 [연조귀감], 이진택의 [규사], 조희룡의 [호산외기], 최성환의 [고문비략] 등이 있다.

204. 속오군은 양반부터 노비까지 편제되어 신분질서 동요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205. 세도정치란 왕의 신임을 얻은 외척이 정권을 대행하는 정치형태이다. 즉 한 당파가 아닌 일문일족이 득세하였는데 순조때 안동 김씨가 헌종 때는 풍향 조씨 가 철종 때는 다시 안동 김씨가 집권하였다,

206. 일본은 국내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조선의 사절을 맞이하여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하였다.

207. 조선후기 민영수공업자들은 공인상인으로부터 원료와 자금을 선대받아 제품 을 생산하였다.

208. 공인은 상업의 발달로 도고로 성장하였다.

209. 조선후기에는 상공업의 발달로 화폐가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300. 우리 나라에서의 천주교는 선교사의 선교가 아닌 학문으로 수용되었다(17세기 베이징 왕래 사신).

301. 홍경래의 난에는 농민상민광산 노동자까지 가세하였다.

302. 중인상민들은 詩社를 조직하고 동인지를 간행하기도 하였다(위항문학).

303. 김석문, 홍대용, 이익, 정약용등은 지전설을 주장하였다. 이는 성리학적 세계관 을 탈피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304.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고, 사상의학(태양태음소양소음)을 체계화하였다.

305.大同法 실시의 영향으로 가장 중요한변화는<상업자본의 대두>라는점이다.

306. 조선 후기 양반호가 증가하고 상민호가 급감함에 따라 삼정이 문란해졌다.

307. 열조통기(列朝統紀)는 조선시대의 역사만을 다루었다.

II. 중세 고려시대


65. 성종때의 치적으로는 수서원비서원 설치, 국자감 설립, 문신월과법 제정, 의창상평창, 분사제도, 등이 있다.

66. 공음전 혜택을 못받는 6품이하 하급 양반자제에게는 한인전이 지급되었다. 천민신분으로 특히 부곡민은 전호(소작농)와 유사하였다.

67.문종때의 전시과 제도하에서 산관(구직관리)은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경정전시과-현직관리).

68.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평민들도 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대가족 단위의 편제가 이루어졌다.

69. 고려 상서성의 은 상서령이었지만 실권이 없었고 복야라는 사람이 실권을 쥐고 있었으나 재상에도 합류하지 못했다.

70. 고려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은 독자적인 기구였다. (당제 모방: 26, 송제 모방: 중추원, 삼사)

71. 고려시대 工匠, 樂工, 鄕吏에게도 무산계 전시과와 외역전이 지급되었다.

72. 고려의 分司制度는 개경과 비슷한 기구를 두어 서경을 우대한 제도이다.

73. 고려의 문음제도는 5품관 이상의 자제에게 산관(散官)과 승직(昇職)이 집중 되어 여타에게는 기회가 적었다.

74. 재부의 재상과 중추원의 추신은 예하 관서의 장관을 겸하는 겸직제도가 발달 하였다.

75. 고려후기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으로 신흥무인세력이 대두되었다.

76. 고려건국의 중심세력은 호족과 해상세력이었다.

77.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의 통일은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닌, 고대사회에서 중세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78. 고려의 삼사는 화폐와 곡식을 출납 및 회계를 담당하였다(조선의 삼사는 언론기관 - 홍문관사헌부사간원).

79. 음서제와 공음전은 문벌귀족세력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80. 최씨 정권의 군사적 기반은 도방과 삼별초였다.

81. 강동 6주의 회복으로 고려의 영토가 압록강까지 확대되었다.

82. 공민왕은 쌍성 총관부를 쳐서 철령이북의 땅을 무력으로 수복하였다.

83. 전민변정도감의 설치는 무신들의 불법 노비와 토지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이루어졌다.

84. 태조때 실시한 역분전은 논공행상(論功行賞)적 성격을 띠었다.

85. 공납은 농민들에게 조세보다도 더무거운 부담이 되었다(역역 >공납>조세).

86. 고려는 경제문화적 목적에 의해 송과 교류하였다(송은 정치적군사적 목적으 로 교류).

87. 문종때 경정전시과에서는 국방인식의 고조로 무관에 대한 대우가 현저히 상승되었다.

88. 고려 전시과의 시작은 경종 원년인 976년의 일로서 人品官品을 고려하여 만들었다(시정전시과).

89. 고려 중앙군인 2군은 응양군가 용호군이며 6위는 좌우위신호위흥위위감문위금오위천우위군이다.

90. 고려 광종때 백관의 공복제(960)를 실시하였다.

91. 팔관회는 兩京(개경.서경)에서만 개최되며 국왕은 외국사신의선물도 받았다.

92. 대장경이란 , , 三藏의 불교경전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93. 조계종은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한 선종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94. 의통은 중국 천태종의 제16대 교조가 되었고 제관은 [천태사교의]를 저술 하였다.

95. 이승휴의 帝王韻紀에는 단군뿐만 아니라 발해의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96. 이규보는 고구려의 역사를 서사시로 엮은[동명왕편]을 지었다.

97. 삼국유사에는 神異한 내용의 기사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객관적이다.

98. 의천의 교선 통합은 교리적 측면에서 교단의 단순한 통합에 그쳤고 법상종을 의식한 정치적 통합의 성격이 짙다.

99. 고려 전기에는 외관이 파견되지 않은 屬縣이 파견된 主縣보다 거의 3배정도 많았다.

100. 의천이 교관겸수를 주장하여 화엄종을 정비하고 원효의 통불교 사상을 도입 교선통합운동을 전개했다.

101. 고려시대 재산상속은 자녀균분상속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102. 팔만대장경, 훈민정음은 UNESCO 지정 세계 기록문화 유산이다.

103. 새로운 유교철학의 수용에 따라 종래 문화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103. 공민왕은 최고학부인 성균관을 부흥시켜 순수한 유교교육기관으로 개편하고 많은 성리학자 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04.고려후기 의종때에는 <기은색>이라는 새로운 수탈기관을 조직하고 <별공사> 라는 관리를 지방에 파견하여 23중으로 백성들을 수탈하였다.

105. 삼국사기는 유교사관에 의해 기전체로 서술된 사서이다. 현존 최고의 사서 이다.

106. 고려후기에는 수필문학, 설화문학이 유행하였다.

107. 서경길지설은 북진정책추진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108.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은 봉정사 극락전이다.

109. 공민왕이 그린 천산대렵도는 고려후기 회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110. 고려 조계종은 인간의 심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11. 고려의 국자감에는 평민들도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잡학에).

112. 고려시대 일역전(一易田)2년에 한번씩 농사짓는 토지를 말하고 재역전 (再易田)3년에 한번씩 농사짓는 토지를 말하고 불역전(不易田)은 매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를 말한다.

113. 고려시대 특히 후기로 되면서 지방자치 공동체적 성격이 강화된 향도(香徒)는 군현 아래에 있는 농민들의 소규모 마을단위의 공동체였다.

114. 간섭기의 심양왕 제도는 왕권 견제제도였으며 독로화 정책은 왕자의 인질 제도였다.

115. 최씨정권기에는 무신을 억압하고 문신을 우대하였다.

116. 은 고려왕족의 血族婚을 비난하고 노비제도 개혁을 요구하였다.

117. 농장은 무신정권 이후 지배하에서 더욱 조장되었다.

118. 무신집권기의 민란은 처음 서북지방(서계의 민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반 무신난은 김보당의 난이다.

119. 신진사대부들은 민본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다.

120. 고려 무신집권기에 무신들은 기존의 정치기구(유명무실)와는 별도의 기구 를 내세워 권력을 행사하였다.

121. 공민왕은 권문세족의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정방을 폐지하였다.

. 선사시대 ~ 고대국가


0. 흔암리와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에 벼농사가 전래하였음을 알려준다.

1. 우리나라 君長制社會에서는 사유재산에 대한 보호는 철저하였다.

2. 고구려에서는 대가들도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료들을 거느렸다.

3.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로 반구대암각화, 천전리 암각화,고령 암각화등이 있다.

4.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역집단의 수장이 묻힌 무덤으로 지배자의 등장을 말해 준다.

5. 신석기인들은 구석기인들과 단절되어 있으며 새로 한반도로 이동해온 우리민족의 기원이다.

6. 비파형 동검과 함께 미송리식 토기는 고조선의 세력범위와 일치한다.

7. 세형동검은 한반도에서만 발견된다.

8. 고조선은 상대부장군 등의 중앙관직을 두고 지방관으로 도위를 파견 하였다.

9. 단군왕검, 소도지역의 천군, 차차웅은 모두 주술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10. 원시신앙 중 샤머니즘(Shamanism)은 세계적 유형의 원시종교이며 애니미즘(animism)은 우주만물이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근원적 신앙이었다.

11. 삼한 중 마한이 가장크게 강대하였다. 그중에서도 목지국이 영도세력이 되었다.

12. 신석기시대에는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의 신앙활동이 있었다.

13. 청동기 문화의 주인공은 무문 토기의 제작사용인들이다.

14. 卵生說話太陽숭배사상과 관련이 깊다.

15. 부여에서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잘익지않으면 그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바꾸거나 죽이기도 하였다.

16. 철기문화는 B.C 4세기경 중국의 스키타이 계통의 청동기 문화와 함께전래 되었다.

17. 단군신화의 弘益人間은 고조선이 새로운 지배자에 의해서 새로운 사회질서가 확립 되었음을 말해준다.

18. 櫛文土器人은 뒤에 이동해 온 無文土器人들에게 정복동화되어 우리민족의 주류를 형성 하였다.

19. 청동기인은 주로 구릉지대에 거주하면서 기장수수벼 등을 재배하였다

20. 삼국시대 불교의 유입으로 인해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는데 특히 호국사상을 대표하는 仁王經이 널리 읽혔다.

21. 신라의 和白會議와 같은 귀족회의가 있었다는 것은 백제의 政事巖에서의 재상 선출에서 엿볼 수 있다.

22. 고구려 소수림왕 때에 전진에서 순도가 최초로 불교를 전파하였다.

23.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특유의 예서체로 약 1,800여 자가 수록되어 있으며 주몽의 건국, 왕의 공덕, 능묘의 수묘 등 3부로 구성되었다.

24. 삼국시대 공통적인 지방관으로 도사(道使)가 있어 조세수납군사지휘노동력 동원 등을 담당 하였다.

25. 고대국가체제가 갖추어지면서 노비도 율령체계에 편입되었다.

26. 신라(8C) 문화중 불국사와 석굴암이 이 시기의 문화를 대표한다.

27. 백제가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한 시기에는 22부의 중앙관서와 5, 5방의 내외통치 조직을 완비하였다

28. 본가야를 복속시킨것은 법흥왕때이며대가야를 복속시킨것은 진흥왕때이다.

29. 삼국이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각각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 때의 일이다.

30. 삼국이 고대국가를 완성한것은 각각 근초고왕,소수림왕,법흥왕때의 일이다.

31. 제가회의, 정사암회의, 화백회의는 국왕중심의 귀족정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32. 5소경은 수도의 편재성이 가져오는 지방통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설치 되었다.

33. 화백제도는 귀족과 왕권사이의 권력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34. 녹읍제도의 부활은 귀족세력의 강화를 의미한다.

35. 통일신라의 국제무역항인 울산항에는 아라비아 상인까지 내왕하였다.

36.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부여계열임을 말해주는 자료로는 왕족의 성이 부여라는 점,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칭했다는 점 등에서 알 수 있다.

37. 고구려에서는 삼론종이, 백제에서는 율종이 발달하였다.

38.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전제왕권이 확립되고 갈문왕 제도가 쇠퇴하였다.

39. 고구려는 초기에 석총이, 후기에 토총이 발달하였다.

40. 신라에서 불교가 늦게 공인된 이유로는 고유한 신앙이 강하여 外來宗敎를 배척 하였기 때문이다.

41. 보우는 원의 임제종을 고려에 전래하여 조선 선종의 주류로 발전시키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42. 4C(미천왕) 고구려는 낙랑을 쳐서 중국세력을 우리나라에서 몰아내는데 성공 하였다.

43.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을 확보하였다.

44. 원효의 화쟁사상은 교종불교의 제학설을 한단계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려는 사상 이다.

45. 신문왕은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확립하기 위해 국학을 정비하였고, 설총은 군주 에게 도덕정치를 요구하는 <화왕계>를 지어 신문왕의 노력을 뒷받침하였다

46. 강서대묘에서는 四神圖가 발견되었다. 이외에 백제 송산리 6호분, 타카마쓰 고분, 기토라 고분에서 사신도가 나왔으며 이는 도교적 요소를 엿볼수 있다.

47. 일본화폐가 발해 유적지에서 발견된 바 있다.

48. 신라 골품제도는 고대국가 확대과정에서 족장세력의 대소에 따라 골품이정해졌다.

49. 최치원의 사산비명 중 신라 선종사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지증대사비문]이며 골품제를 수록하고 있는 것은 [낭혜화상비]이다.

50. 신라 下代 변방을 수비하던 軍鎭세력, 지방 호족세력 등이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 하게 되었다.

51. 신라말기 儒佛과 풍수도참사상이 복합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52. 원효는 정토신앙을 통해 十門和諍論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각 종파간의 대립을 조화융화하고자 하였.

53. 황룡사 9층탑, 왕흥사, 백고좌회 등은 모두 호국신앙을 나타낸다.

54. 나말 신라의 역사무대가 중앙에서 지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55. 공의 난(770)‘96각간의 난이라고도 하며 왕위쟁탈전의 시초였다. 왕위쟁탈전은 신라 하대 진골 귀족간의 다툼이다.

56. 통일이후 신라는 주군에 외사정(外司正)을 파견하였다.

57. 신라말의 지리도참설은 송악이 國都가 될 만한 吉地라고도 하였다.

58. 발해의 정혜공주묘는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으로서 고구려계통의 영향을 보여준다. 반대로 정효공주묘는 전축분(벽돌무덤)으로서 당적 문화계통의 영향을 보여준다.

59.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하여 커다란 정치세력으로까지 성장 하였다.

60. 원효는 각 종파간의 대립을 조화, 융화하고자 十門和諍論을 지었다.

61. 신라의 이방부(理方部) 발해의 禮部와 그 기능이 같다(형률담당).

62. 신라 민정문서에 의하면 연령별남녀별 인구수가3년마다파악되었다(6등급).

63. 만파식적 고사는 신문왕대의 전제왕권강화와 신라의 평화를 상징한다.

64. 발해사를 처음으로 우리 민족사의 연장으로 보려하였던 것은 유득공의 [발해고] 이다.

우리 나라 역사 편찬 과정

 

1. 삼국시대

배경

한학의 발달

영토 확장과 중앙집권 국가 완성

역사서

고구려 - 영양왕(600) - 이문진 - 신집5

신집5권 이전에 유기100권이 있었음

백 제 - 근초고왕(4C) - 고 흥 - 서기

신 라 - 진흥왕(6C) - 거칠부 - 국사

고려시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참고했으나 현존하지는 않음

 

2. 고려시대

고려 초기

특징 - 독자적·자주적 사관의 역사서 편찬

사서 - 황주량7대실록, 김양감가락국기,구삼국사

☞『7대실록』→ 거란 침입으로 소실된 태조목종 실록

☞『가락국기』→ 김수로왕 설화가 담긴 가야 관련 내용

고려 중기

특징 - 보수적·사대적·유교적 사관의 역사서 편찬

사서 - 박인량고금록, 홍관속편년통제, 김부식삼국사기

내용

ⓐ『삼국사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이후 인종 때 편찬

중국 정사를 모방하여 유교적 입장에서 편찬

기전체 방식으로 신라의 정통성을 강조함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서

무신정변기

특징 󰠆󰠏 새로운 역사 의식의 등장

󰠌󰠏 민족적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싹틈

사서 󰠆󰠏 각훈해동고승전, 이규보동국이상국집-동명왕편

󰠌󰠏 일연삼국유사,이승휴제왕운기

내용

ⓐ『동명왕편: 1193년 이규보가 민족적 자부심과 외세와의 저항정신을 일깨 우기 위해 동명왕의 건국 서사시 편찬

ⓑ『삼국유사』󰠆󰠏 1281년 충렬왕 때 일연이 편찬

고조선 계승의식에 의해 편찬

불교의 중심 설화와 야사를 많이 수록

󰠌󰠏 단군 신화의 내용을 최초로 수록

ⓒ『제왕운기』󰠆󰠏 충렬왕 때 이승휴가 편찬

중국(상권)과 우리(하권) 역사를 한시로 편찬

우리 역사를 단군부터 실어 민족의 기원으로 삼음

󰠌󰠏 발해사를 처음으로 연구

 

보충학습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비교

구 분

삼 국 사 기

삼국유사

편찬시기

인종 때 (1145)

묘청의 난 진압 후

충렬왕 때 (1281)

원의 간섭기

편 찬 자

김부식

일 연

체 제

기전체

야사체

내 용

왕조 중심의 정사체

삼국시대 역사 서술

설화 중심의 야사체

단군부터 고려까지 서술

특 징

신라 중심의 역사 서술

고구려 계승의식 부정

불교의 입장에서 서술

고조선 계승의식 강조

사 관

보수적 유교사관

자주적 사관

 

원의 간섭 이후의 사서

특징 󰠆󰠏 성리학적 사관의 등장

󰠌󰠏 정통과 대의명분 강조

사서 󰠆󰠏 이제현사략,고려국사, 원부고금록

󰠌󰠏 정가신천추금경록, 민지본조편년강목

내용

사략- 성리학적 춘추사관을 확립, 조선시대 역사학에 영향

※『삼국사기사략의 공통점 =>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

 

보충설명역사서를 묻는 방법

성격

자주적 사관󰠆󰠏고려 초, 무신정변기, 조선 15C, 조선 18C

(=독자적) 󰠌󰠏7대실록, 삼국유사, 동국통감, 동사강목 등

보수적 사관󰠆󰠏고려 중기, 성리학 수용 이후, 조선 1617C

(=사대적) 󰠌󰠏삼국사기, 사략, 기자실기, 여사제강 등

 

서술방식(=편찬방식)

기전체 󰠆󰠏 본기, 열전, , 연표 순으로 편찬

(=정사체)󰠌󰠏 삼국사기 등 대다수 역사서 서술 방식

편년체 󰠆󰠏 , , 일별로 서술(=날짜별 서술)

(=일기체)󰠌󰠏 ~절요, 통감, 실록, 편년

기사본말체󰠆󰠏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

󰠌󰠏 연려실기술, 삼국유사도 포함 가능

야사체 󰠆󰠏 이야기 중심의 역사 서술

(=이야기체)󰠌󰠏 삼국유사

강목체 󰠆󰠏 (대의)와 목(세목)으로 나누어 서술

(=통사체)󰠌󰠏 동사강목 대표적

 

3. 조선시대

건국초

특징 - 왕조 개창 정당화하고 성리학적 통치규범을 정당화시키는 사서 편찬

사서 - 정도전고려국사, 권근동국사략

 

15C 중엽

특징 - 성리학적 대의명분보다 민족적 자각과 왕실의 위신을 높이는 사서 편 찬

사서 󰠆󰠏 김종서고려사,고려사절요

󰠌󰠏 서거정삼국사절요,동국통감

내용

ⓐ『동국통감』󰠆󰠏 성종 때(1484) 서거정이 편찬

고조선에서 고려 공양왕 때까지의 역사를 수록

우리 나라 최초의 편년체 통사

󰠌󰠏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하여 민족사의 새로운 개척을 제시

 

16C 사서

특징 󰠆󰠏 사림에 의한 존화주의왕도주의 사관

󰠌󰠏 단군 조선이 부정되고 기자를 더 높이 숭상

사서 󰠆󰠏『기자실기- 기자 중심

󰠌󰠏『동사찬요,표제음주동국사략- 중국 중심

내용

ⓐ『동사찬요-동국통감을 전면 부정하고 새롭게 편찬

영향

긍정적󰠆󰠏민족적 자부심에 의한 소중화 의식으로 왜와 여진 무시

󰠌󰠏애국심을 높여주는 역할로 왜란과 호란 때 의병을 조직

부정적 -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여 양난을 격음

 



18C 실학저 사서

특징 -- 실학적 사서 편찬

사서

안정복동사강목』󰠆󰠏 한국사의 독자적 정통론 체계화

한백겸 이후 삼한정통론 체계화

󰠌󰠏 고증사학의 토대 마련

삼한정통론=>단군-(기자조선)-삼한(마한)-삼국-통신으로 연결

이종휘동사』󰠆󰠏 만주 중심의 북방사 체계화

고대사의 시야를 만주까지 확대

󰠌󰠏 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 극복

유득공발해고』󰠆󰠏 발해사의 체계적 서술에 노력

󰠌󰠏 발해를 신라와 함께 남북국으로 규정

한치윤해동역사- 외국의 많은 자료를 이용 민족사 인식의 폭 확대

이긍익연려실기술- 실증적객관적 역사서술에 노력

 

보충학습조선왕조 실록

편찬임금 : 태조실록철종실록까지 25대 임금

편찬시기 : 태종 때 태조 실록이 처음 편찬

편 찬 처 : 춘추관 내의 임시관청인 실록청

편찬방식 : 그날 그날의 사건을 낱낱이 기록한 편년체

편찬사료󰠆󰠏 사관이 임금의 언행을 기록한 사초를 기본자료

󰠌󰠏 시정기, 의정부등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보조자료

특징 󰠆󰠏 왕 사후에 편찬

조선시대 연구의 가장 귀중한 자료

조선시대 문화 수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일단 편찬된 실록이라 할지라도 붕당 하에서 개수 가능

󰠌󰠏 연산군과 광해군은 일기로 표기했지만 실록으로 인정함

수정실록을 갖는 임금 : 선조, 현종, 경종

실록보존 󰠆󰠏 세종 때 4대사고 :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임난 때 전주사고본만 묘향산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소실

광해군 때 5대사고로 정비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사고본 소실

󰠌󰠏 현존실록은 태백산본과 정족산본만 현존

 

4. 개항기

근대 계몽 사학의 성립

박은식, 신채호, 장지연 등 활동

영웅들의 전기 편찬

외국 흥망사와 독립사 편찬

항일 저작물 간행 오수불망, 금수회의록

민족주의 사학의 방향 제시

민족 고전의 정리 및 간행 : 조선광문회 - 최남선, 박은식 중심

사학자

장지연 : 백두산 정계비고, 대한 최근세사, 대한 강역고

민족 주체성과 조국 정신 고취

신채호 : 독사신론,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강감찬전, 최도통전

민족 정신 고취

박은식 : 연개소문전, 안중근전, 이준전

현 채 : 동국사략, 유년필독(=근대학교의 대표적 역사 교과서)

정 교 : 대한계년사

황 현 : 매천야록

 

5. 일제시대

식민사관

특징

일제가 우리 역사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 사관

우리 민족의 뿌리와 근본을 무시한 사관

단군 조선을 부정하고 고대사 왜곡이 가장 심함

우리 역사를 왜곡날조한 사관

이론

만선사관 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 내선일체론

당파성론 후진성론

정체성론 타율성론

연구단체

조선사 편수회 고적조사위원회

법전조사국 청구학회

 

민족주의 사관

특징

한민족의 기원을 밝힘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을 강조

민족정신 강조

학자

박은식 󰠆󰠏 근대사 연구에 노력

역사는 신()이요, 나라는 형()이라고 강조

한국통사 - 근대 이후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 서술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일제 침략에 대한 한민족의 독립운동 서술

󰠌󰠏 민족 혼강조

신채호 󰠆󰠏 고대사 연구에 노력

민족주의 역사학의 기반 확립

조선상고사 - 역사를 아()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인식

조선사연구초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극찬

독사신론 - 삼한정통론에서 벗어나 고대사의 체계를 정립

󰠌󰠏 낭가사상강조

정인보 󰠆󰠏 근대사 연구에 치중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 가장 잘 계승

조선사연구 - 실학 연구에 노력

󰠌󰠏 5천년간의 조선의 강조

문일평 󰠆󰠏 근대사 연구에 노력

50년사 - 개항 이후 역사 연구

󰠌󰠏 조선심강조

최남선 󰠆󰠏 조선역사, 고사통, 아시조선

󰠌󰠏 불함문화권 주장

 

실증주의 사학

특징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 강조

사실 그대로의 역사 강조

문헌 고증을 통한 역사 연구

진단학회 결성

일제의 청구학회를 중심으로 한 왜곡돤 한국사 연구에 반발하여 조직

1934년 조직하여 1942년 일제에 의해 해체

학자 - 이병도, 김상기, 신석호, 이상백, 이윤재, 조윤제, 손진태 등

 

사회경제 사학

특징

일제의 경제학자들이 우리 역사의 후진성과 정체성을 강조한데 반발

유물론적 변증법에 의한 역사 연구 강조

세계사적 역사 발전 단계설을 우리 역사에 적용함

일제가 주장하는 한국사의 특수성론을 배척하고 보편사의 이론 적용

학자

백남운 󰠆󰠏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체계화함

󰠌󰠏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 경제사

기타 - 김석형, 이청원, 박극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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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 조선사회의 성격

양반관료사회 - 귀족 중심의 중세사회에서 문무 양반 관료체제 성립.

과전법 체제 - 토지에 대한 사적 지배가 진전, 양인 자작농의 증가로 농민의 지위 상승.

특수 행정구역의 소멸 - 부곡의 소멸로 양인의 증가(천민의 양인화).

성리학의 정치이념화 - 억불숭유 정책과 성리학이 일반국민의 일상생활의 규범이 됨.

국민국가의 기반 마련 - 한글의 창제, 단군국조(檀君國祖)관념 등의 민족의식 고취, 우리 역사지리에 대한 관심 고조, 대외적으로 국경선의 확장에 따른 국경의식의 성장.

 

. 양반관료사회의 성립

1. 조선의 건국 배경 위화도 회군(정치적, 군사적 권력 장악)

사전개혁(경제적 권력 장악)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 - 정도전조준 등의 강경파(역성혁명파)의 신흥사대부와 이성계 를 중심으로 하는 무인세력농민군사세력.

 

 

2. 조선의 중앙집권화 과정(왕권강화 과정)

태 조

태 종

세 종

세 조

성 종

* 기본 정책

- 농본억상 정책

- 억불숭유 정책

- 사대교린 정책

* 병제 - 의흥삼군부

* 억불책 - 도첩제 실시

* 관리임용제도 정비

-

음양이과문음 등 7과로 정비

 

* 왕권강화책

- 사병혁파, 6조직계제 실시, 사원정리

* 주민통제

- 호패법 실시

- 호적정리(3년마다)

* 양전사업(20년마다)

* 지방제도 개편

- 8도체제 확립

* 학문의 장려

- 집현전 설치

* 한글 창제

* 의정부 서사제

* 불교의 정리

- 선의 통합, 36개 로 정리.

* 음악정리

- 관습도감(박연)

* 활자개량(갑인자)

* 화폐발행(조선통보)

* 토지세제개혁

- 전분6, 연분9등법

* 과학기술의 발달

- 측우기, 대소간의,

자격루, 앙부일귀 등

- 칠정산 내(아라 비아의 영향)

* 서적편찬

- 농사직설, 의방유취,

효행록, 삼강행실도,

용비어천가 등.

* 영토확장사민정책

- 서북4, 동북6

* 삼포개항과 계해약조

* 계유정난으로 등극.

- 이징옥, 이시애의 난 진압

* 왕권강화책

- 집현전 폐지,

6조직계제 부활

* 군제개편

- 중앙군(5)

- 지방군(진관체제)

* 경국대전 편찬착수

- 형전 완성

* 직전법 실시

* 홍문관 설치

* 규형인지의 제작

 

* 중앙집권 완성

 

* 편찬 사업

- 동국통감

- 동국여지승람

- 삼국사절요

 

* 경국대전의 반포

 

* 도첩제의 폐지

- 승려의 출가 금지

 

* 관수관급제 실시

 

* 5가작통법제정

 

. 조선사회의 정치구조

 

1. 무 양반의 관등체계

(1). 조선 정치 체제의 특징 - 재상권과 합의제 발달, 광범위한 겸임제 발달(중요 관서의 책임자는 당상관 이상), 관계 안에 일정한 구분이 있음(당상관 정3품 이상, 참상관 종6품이상)

(2). 관등체계 - 18품계가 기본, 각품에 정9품이 있고, 6품이상은 상하로 구분이 되어 있어 총 30 등급.

2. 중앙 정치 기구

의정부

영의정(1)

백관과 서무를 총괄하는 최고 회의 기관

6

판 서(2)

공조 등 행정 실무관장

승정원

도승지(3)

왕명출납

의금부

판 사(1)

특별 사법기관

삼사

사헌부

대사헌(2)

감찰기관

사간원

대사간(3)

간쟁기관

홍문관

대제학(2)

학술기관

한성부

판 윤(2)

서울의 치안과 행정 담당

사 관

교서관

제 조(12)

서적편찬

성균관

지 사(2)

교육기관

예문관

대제학(2)

교서제정

승문원

도제조(1)

외교문서 작성

 

3. 지방제도

(1). 8도 체제(태종) -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부현을 설치

- 도에는 관찰사를 파견(방백) : 행정권과 병권 관할, 임기는 360, 상피제도 적용

- 군현의 수령(목민관) : 임기는 1800, 상피제도 적용

 

(2). 지방관의 임무 - 農桑盛戶口增學校興軍政修賦役均詞訟簡奸猾息 등이고 조세와 공물의 징수가 가장 중요.

 

(3). 지방 통제기구(효율적인 지방통치를 통한 중앙집권 목적)

향청 - 유향소의 후신

- 조직 : 지방의 양반층으로 구성(향안이 지방 양반의 등재명부)

- 대표자 : 좌수와 2명의 별감

- 역할 : 수령의 감시 및 보좌, 향리규찰, 풍속교정, 민정대표, 정령의 시달.

 

경재소 - 서울에 설치

- 구성 : 각 지방 출신의 중앙관리로 구성

- 역할 : 해당 지방의 제반사 주관, 서울과 지방간의 연락담당.

경저리 - 지방 향리를 서울에 상주시킴.

- 해당지방의 공부를 수납.

 

4. 조선사회의 군사제도

(1). 조선전기의 군역제도 - 1660세의 丁男은 원칙적으로 군역의 의무가 있음.

- 양인개병제, 농병일치제

- 保法의 제정(세조) : 양인은 정병이 되거나, 保人(봉족)이 되어 비용을 부담.

- 법제적으로 양반도 군역의 의무가 있음, 향리와 노비는 원칙적으로 군역의 의무 면제.

- 군역의 변질 - 15세기 말에는 대립제, 16세기에는 방군수포현상이 성행

군적수포제로 법제화하여 전기의 의무병제에서 납포군화 현상 발생.

 

(2). 전기의 중앙군(5) 구성 - 의흥위(서울중부방비), 용양위(서울동부경상도), 호분위(서울서부평안도),

충좌위(서울남부전라도), 충무위(서울북부함경도)

병종 - 전문적인 직업군인과 의무병(정병)으로 구성.

 

(3). 전기의 지방군(영진군) 진관체제의 성립(세조) - 각도에 병영과 수영을 설치

- 군사 중요지점에 진을 설치(주진 : 병사가 있는 곳, 거 진 등) : 거진을 중심으로 여러진을 진관으로 편성.

- 병사와 수사가 파견 : 원칙적으로 관찰사가 병사나 수 사를 겸임하였으나, 병영이나 수영이 2개 이상 설치 된지역에는 전임 병사나 수사 를 파견.

관찰사가 전임병사나 수사보다 권한이 큼.

 

(4). 전기의 특수군 - <잡색군> - 예비군적 성격

- 전직관료, 향리, 학생, 노비 등으로 구성(농민은 제외)

- 주로 내륙지방을 방비하기 위해 설치.

- 임진왜란 때 의병조직 하는 데 유리.

 

5. 조선사회의 교육과 과거제도

(1). 교육제도 유학교육 - 서당 : 양반자제의 초등교육 담당

- 향교 - 각 지방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 양반 뿐 아니라 양인의 입학도 허용

- 구조는 명륜당(강의실), 문묘, 양재(기숙사)와 기타건물로 구성(성균관과 동일).

- 4부학당 - 서울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으로 향교와 달리 문묘가 없음.

- 성균관 - 국립대학으로 고등교육기관

- 15세 이상의 양반자제, 향교4학의 졸업자 또는 생원과 진사가 입학

- 구조 : 명륜당, 문묘, 양재, 존경각(도서관), 비천당(과거시험보는 곳)

기술교육 - 고려시대와 달리 모든 기술교육을 해당관청에서 담당.

의학

전의감

천문, 지리

관상감

역학

사역원

도교

소격서

산학

호조

회화

도화서

율학

형조

 

 

(2). 과거제도 문과 - 소과 : 생원과 진사 시험(급제자에게 백패지급)

- 대과 - 초시(100), 복시(33), 전시(순위만 결정) : 급제자에게 홍패 지급, 참상관(6)

- 응시자격 : 원칙적으로 양인이상이면 응시 가능(, 공업자 서얼 등은 제한)

- 시기 : 3년마다 보는 정기시험

무과 - 초시(200), 복시(28), 전시(순위만 결정) : 장원제도가 없음

잡과 - 기술관 등용시험, 전시가 없음

승과 - 중종 대에 폐지

(3). 문음제도 : 2품이상의 관리 자손은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관직을 수여(고려 : 5품이상)

(4). 기타 특별시험 - 증광시(특별한 경사), 알성시(왕의 문묘 참배시), 별시(국가적인 경사), 백일장(시골유생의 학업장려),

도시(무관선발), 취재(특정직의 기술관임용), 유일(추천에 의한 시험 : 조광조의 현량과)

 

. 조선사회의 경제사회구조

 

1. 조선전기의 신분구조

 

<조선 전기의 양천제> - 조선전기에는 양인과 천인으로 신분이 구분, 16세기 이후에 양반, 중인, 상민, 노비 로 구분됨.

양인 양반 - 무관리, 관리로서의 과전을 지급받고 사유지인 공신전별사전 등을 지급받음

- 양반도 원칙적으로 군역의 의무를 지나 현실적으로 불역.

중인 - 하위 지배층, 기술관서얼향리 등이 중인층을 형성.

상민 - 농민 - 원칙적으로 과거에 응시가능하고 조세, 공납, 역의 의무를 지는 계층

-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영농민 이나 소작농의 지위에 있음.

- 상민 - 상인과 수공업자, 군역의 의무 대신 국역의 의무를 짐, 과거 응시가 제한됨.

천인 노비 - 최하위 계층, 매매상속증여의 대상, 원칙적으로 군역의 의무가 없음, 노비종모법에 따라 신분세습.

- 공노비 : 선상노비(직접 노동력 제공), 납공노비(일정한 신공만을 납부)

- 사노비 : 솔거노비(직접 노동력 제공),

외거노비(주인과 따로 거주, 경제적 독립 인정, 경제적 지위가 양인인 소작농 과 비슷한 계층)

기타 천인 - 노비를 제외한 기타 천인은 법제적으로는 신분이 양인임.

- 백정(피혁, 유기제조업), 광대, 무당, 창기 등

- 신양역천 : 조예, 나장, 일수, 조군, 수군, 봉수군, 역졸

 

2. 조선시대의 경제구조

(1). 기본 정책 - 농본 억상 정책에 따라 농업을 중시, 상업과 수공업은 통제(관영으로 운영), 대외 무역의 부진

 

(2). 토지제도

과전법 제도(공양왕,1391) - 직역에 따라 국가에서 과전 지급

- 수조권에 따라 공전과 사전으로 분류

- 과전은 세습되지 않는 것이 원칙, 그러나 수신전, 휼양전의 명목으로 세습됨.

- 과전법 하에서는 병작반수가 금지, 농민의 경작권 보장(농민의 지위향상)

- 과전의 지급은 경기내의 사전에 한함.

- 현직 18등급으로 차등지급, 수확량의 10분의 1로 전주에게 지급하 고 전주는 그 중에 15분의 1로 국가에 납부.

직전법(세조, 1466) - 현직자에게만 과전을 지급

관수관급제(성종, 1470) - 국가에서 조세를 직접 거두어 지급함, 조와 세의 구별이 없어짐.

직전제의 폐지(명종, 1556) - 관리에게 녹봉만을 지급, 양반의 병작반수제 성행, 농장 등의 사유지가 확대됨.

 

(3). 조선사회의 조세제도

전세제도 - 손실답험법 : 국초의 제도, 10분의 1

- 공 법 : 세종대에 전분6등법과 연등9등법에 의해 최고20두에서 최저4두를 납부(15분의 1)

- 영 정 법(1635) : 1결당 4두로 고정(자영농에 유리하고 병작농은 불리한 제도)

 

의 의무 - 군역 : 병농일치제양인개병제로 양인이상이면 원칙적으로 군역의 의무가 있음

- 요역

- 군역의 변질 : 15세기 말에는 대립제, 16세기에는 방군수포제, 군적수포제로 변질.(전기의 의무병제에서 2필의 군포를 납부하는 납포군화, 모병제의 성립)

 

공납의 의무 - 왕실과 관청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현물로 징수하는 제도.

- 상공과 별공, 진상이 있음(상공보다 별공이나 진상이 농민에게 더 큰 부담)

 

(4). 조선전기의 상업과 수공업 수공업 - 조선 전기는 관영 수공업이 중심

- 관장 : 공장안에 등록되어 각 해당관청에 소속됨, 신분상으로는

대부분 공노비

- 사장 : 사영수공업자, 양반들의 주문품 생산과 농기구 등을 제작.

- 사원경제 : 제지양조업에 진출

- 가내수공업 : 주로 면포면직의 제작에 종사

상 업 - 농본억상 정책에 따라 국가의 통제를 받음, 어용적, 관허상인 중심 으로 운영.

- 시전상인(관허상인) : 금난전권을 갖고, 국가에 세를 부담하는 어 용상인(특히6의전).

- 보부상(관허상인) : 주로 지방 장시를 중심으로 활동

- 경시서 설치 : 시전을 감독, 도량형의 검사, 물가의 조절 등 상업통제

- 지방장시의 발생 : 15세기 말부터 발생, 16세기 이후에는 전국적으 로 확산, 조선정부는 장시의 성행을 통제함.

 



3. 조선사회의 사회제도

(1). 조선전기의 신분제도 - 천제

 

(2). 가족제도 - 가부장적 가족제도 : 유교적 질서에 의해 통제, 강상죄(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중되로 처리.

 

(3). 법률

법전의 편찬 - 세조대에 착수하여(호전과 형전완성) 성종대에 완성

조선시대 법전의 변천

태조

태종

세종

성종

영조

정조

고종(대원군)

* 조선경국전(정도전)

* 경제문감(정도전)

* 경제육전(조준)

* 원육전,속육전

* 정전6

* 육전등록

* 경국대전

* 속대전

* 대전통편

* 대전회통

 

법률 형법 - 가장 중요하게 취급, 주로 대명률에 의함, 반역죄와 강상죄가 중죄, 연좌법 적용

- 형벌은 태(곤장)(공장)(징역)(유배)(사형)

- 사법기관 : 3법사(사헌부, 형조, 한성부), 의금부(특별사법기관), 포도청(일반치안),

장예원(노비담당) .

민법 - 주로 관습에 의해 처리

지방관의 권한 - 수령(목민관)은 민사, 경범, 태형의 사법권이 있고, 관찰사는 모든 범죄를 다루었으나, 중죄와 사형은 중앙에 보고하고 처리

 

. 조선전기의 사상과 문화

 

1. 억불숭유 정책

(1). 관학파의 형성과 성격(조선전기의 사회성격)

형 성

* 고려말의 역성혁명파, 세조의 왕위찬탈에 동조한 세력 등 훈구파

성 격

* 중앙집권과 부국강병을 추구

* 15세기 문화를 주도한 세력 - 사장을 중시, 각종 편찬사업 실시, 관학중심

* 공리주의를 중시 - 격물치지적 학풍경험적 학풍

* 성리학 이외의 불교도교풍수지리설민간신앙도 포용

* 과학과 기술, 문화와 예술에도 관심을 보임

 

(2). 불교정책 - 태조 : 도첩제의 실시(승려의 수를 제한하는 조치)

- 성종 : 도첩제를 폐지하여 출가를 일체 금지함.

- 중종 : 승과제도를 폐지

* 세조 :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경을 언해, 원각사 중건

 

(3). 도교와 민간신앙 - 국가에서 도교행사 주관 : 소격서를 설치하고 도교행사를 주관(삼청동에 제단을 세우고 초제를 지내고 마니산 초제를 지냄)

- 민간신앙을 국가신앙으로 흡수 : 무당을 국가에서 채용, 평양에 단군사당 건립 등.

 

2. 훈민정음의 창제 - 목적 : 대민교화의 필요성에 의함(세종,1443에 제작되어 1446년에 반포)

- 한글서적 보급 :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동국정운>, 불경언해, 농서, 병서

- 사용계층 : 부녀자나 피지배계층이 사용, 식자층은 여전히 한자를 사용.

 

3. 편찬사업의 전개

 

(1). 조선전기 편찬사업의 성격 - 유교정치에 따른 통치를 위한 실용적인 성격의 서적이 편찬됨.

 

(2). 역사서

실록의 편찬 - 내용 : 태조에서부터 철종대까지의 실록을 제작

- 보관 : 춘추관충주성주전주에 보관(이 중 임진왜란 시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다른 사고본은 소실됨.)

- 편찬기관 : 춘추관 내에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왕의 사후에 편찬

- 참고자료 : 사초, 의정부 등록, 비변사 등록, 일성록, 승정원 일기, 시정기 등을 참고로 실록 편찬.

- 국조보감 : 실록내용을 압축하여 경연 참고서로 편찬

- 개수실록 : 선조, 현종, 경종의 개수실록이 편찬(당쟁과 관련되어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편찬자

시대(서술체제)

내 용

고려국사

정도전

여말태조(편년체)

이제현의 고려국사 계승, 성리학적 사관

동국사략

권근, 하륜

태 종(편년체)

단군조선에서 신라 말까지의 역사, 신라중심서술

고 려 사

김종서,정인지

세종문종(기전체)

자주적 입장에서 서술

고려사절요

김종서

문 종(편년체)

자주적 입장에서 서술

동국통감

서거정

성 종(편년체)

최초의 통사, 단군조선을 민족사의 시조로 정립

삼국사절요

서거정

성 종(편년체)

삼국시대의 역사를 자주적으로 정리.

(3). 지리서, 지도

서 적 명

편찬자

시대

내용

지 도

혼일강리도

이 회

태종

* 현존하는 동양최고(最古)의 세계지도

- 중국중심적 사관 반영

팔도도

정척, 양성지

세종세조

* 인지의를 이용한 최초의 실측지도

- 북방에(압록강) 대한 관심을 반영.

지리지

팔도지리지

윤회, 신색

세종

* 최초의 인문지리서(경상도지리가 현존)

세종실록지리지

정인지, 노사신

단종

* 동국여지승람의 모범

- 히 단군신화가 수록

동국여지승람

강희맹

성종

* 조선전기 인문지리서의 완성본

신증동국여지승람

이 행

중종

* 현재 전하는 인문지리서.

 

(4). 윤리서 - 삼강행실도(설순)

- 국조오례의(신숙주) : 국가적 의례에 관한 정리서 ( 제례 등의 서민의 예는 주자가례에 의함)

- 효행록(설순)

 

4. 과학의 발달

 

(1). 발달 배경 - 조선전기의 관학파의 성격과 관련됨.

- 조선전기는 부국강병과 중앙집권을 추구, 공리주의, 격물치지적 학풍으로 과학, 기술도 중시함.

- 따라서 조선전기는 농법천문의학인쇄술무기의 발달이 현저함.

16세기의 사회성격과 구분되는 점(, 이해필요)

 

(2). 농법의 발달 - 시비법 발달, 연작상경법, 부 일부지방에 이앙법 보급, 수리시설의 신축보수, 新田의 개발 등.

- <농사직설> : 세종대에 정초가 저술, 촌로들의 의견을 들어 우리 현실에 맞는 농법보급 목적,

이앙법을 소개(이앙법의 보급을 경계함)

- <금양잡록> : 성종대에 강희맹, 지방에서 직접 경험한 농법기록

 

(3). 천문기상학의 발달(서운관 후에 관상감) - 천체관측 : 혼천의, 간의(세종)

- 시간관측 : 앙부일귀(해시계), 자격루(물시계)

- 우량관측 : 측우기

- 토지측량 : 인지의, 규형(세조)

 

(4). 의학의 발달 -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5). 인쇄술의 발달 - 태종대의 계미자, 세종대의 갑인자 등

 

(6). 무기의 발달 - 화포의 제작, 화차제작, 비격진천뢰 제작, 태종대에 거북선 제작

- <진도> : 태조대에 정도전이 저술, 전술과 부대편성방법에 관한 내용 수록

- <병장도설> : 세종대에 집현전, 군사훈련 교본, 화포제작과 방법 수록

- <동국병감> : 문종, 고려말까지의 전쟁사를 정리.

 

5. 문학과 음악

 

(1). 문학의 발달 - 한문학 : 조선시대 문학의 주류, 특히 관학파는 경학보다 사장을 중시, 양반들의 필수 교양.

서거정의 <동문선>, 서거정의 <필원잡기>, 성현의 <용재총화>, 김시습의 <금오신화>

- 국문학 : 훈민정음의 창제로 발전.

악장의 발달(용비어천가), 가사의 발달(정극인의 상춘곡, 정철), 단형시조의 발전.

 

(2). 음악의 발달 - 아악의 정리 : 세종대에 설치된 관습도감, 박연

- 성종대에 <악학궤범> 편찬

- 민간음악 과 특수 음악 : 농악, 가곡, 범패 등

 

6. 예술의 발달

 

(1). 서예의 발달 - 양반들의 필수 교양으로 발전.

- 조선전기의 4대가 : 안평대군(조맹부체), 김구(인수체), 한호(한석봉), 양사언(초서에 능함)

 

(2). 회화 - 15세기 회화의 특징 : 그림은 장인들이 하는 일이라 기피, 양반 중에는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림(강희안)

문인화(강의안), 산수화초상화 발달(장인들이 그림), 관념적 산수화 유행.

전기의 그림은 중국의 화풍을 모방, 예술성보다는 기계적인 모사에 치중.

- 주요 화가 - 안견(장인, 도화서 소속) : <몽유도원도>, <적벽도>

- 강희안 : <고사관수도>, <산수인물도>

- 최경(장인) : 산수화 인물화의 대가, <채희귀한도>

- 이상좌(노비출신 장인) : <송하보월도>, <관음도>, <월광보살도>

-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미술에 영향을 미침.

 

(3). 공예 - 특색 : 생활필수품이나 사대부의 문방구 등과 관련하여 특색있는 발달, 실용적서민적 성격

- 자기의 발달 : 분청사기와 백자의 발달.

 

(4). 건축 - 특색 : 고려시대에는 사원건축 중심, 조선시대에는 도시의 궁궐, 성곽성문학교 건축이 발달.

- 조선전기의 건축물 : 해인사 경판고, 창덕궁 돈화문(현존 서울시내 최고 목조건축물), 경복궁창덕 궁창경궁과 남대문 등 4대문, 신륵사 조사당, 원각사 10층석탑(고려 경천사 탑의 영향) .

 

 

. 조선전기의 대외관계

 

1. VS. 명관계

 

(1). 기본정책 - 친명 사대외교 : 단 건국 초에 정도전에 의해서 정명계획이 세워지기 함.

 

(2). 사신의 파견 - 1년에 정기적으로 3차례 파견이 원칙, 나중에 동지사가 추가됨, 그 외에 비정기사 파견

- 하정사(賀正使) 또는 정조사(연초에 파견), 성절사(명 황제의 생일), 천추사(황태자 생일),

동지사(연말)

 

(3). 대명무역 - 수출품 : 마필인삼화문석 등

- 수입품 : 견직물서적약재문방구도자기 등

 

2. VS. 여진관계

 

. 和戰 양면 정책 - 강경책 - 국방상의 국경선 확보와 농지 확보를 목적으로 북방지방 개척, 북방개척을 위해 조선 초에 사민정책을 실시.

- 두만강 유역 확보 : 세종, 김종서, 동북6 설치(경성, 경원, 종성, 온성, 회령, 부령)

- 압록강 유역 확보 : 세종, 최윤덕이천, 서북4 설치(여연, 우예, 자성, 무창)

- 회유책 : 여진족의 귀순 장려, 관직토지주택 등 제공, 무역소 설치(경원, 경성),

북평관(사신숙소)설치

 

3. VS. 왜관계

 

. 和戰 양면 정책 - 강경책 : 세종대에 이종무가 쓰시마섬 토벌.

- 회유책 - 귀화장려, 동평관(사신숙소) 설치,

- 제한된 조공무역 허용(삼포개항 : 부산포, 제포, 염포), 도서(조선측의 무역허 가증)문인(대마도주가 발행)을 표시하고 교역을 허용.

- 계해약조(세종:1443) : 세견선 50, 세사미두 200, 3포에 거류할 왜인의 수를 제한.

-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 일본의 사정을 쓴 일본여행기.

- 무역품 : 수출(, 무명, 삼베, 서적, 공예품), 수입(구리, , 향료, 약재)

 

4. 기타 동남아시아 - 조선 초기에 사이암(태국), 자바 등 동남아시아 각국과도 교역.

 

고 대 사

 

고대국가의 성립(왕권강화와 국가조직의 정비시기)과 발전

 

1. 고대국가의 성격(초기국가와 비교)

 

왕권의 강화 : 왕위의 세습, 부자상속

중앙집권화 : 군장세력의 중앙관료화(군장세력의 독립성 상실, 외관의 파견, 불교의수용, 율령의 반포)

정복사업의 전개 : 광대한 영토국가의 형성

2. 고구려

 

(1). 성립

태조왕(53146) 옥저복속, 현도군 축출(B.C.75), 계루부 고씨의 왕위계승

고국천왕(179197) 5부의 행정개편, 부자상속, 진대법(춘대추납, 빈민구제책, 의창의 기원)

동천왕(227248) 와 친교(중국은 위오의 삼국시대), 서안평 공격

미천왕(300331) 낙랑축출(313, 한군현의 마지막 축출), 서안평점렴(중국은 516국의 혼란기)

고국원왕(331371) 백제 근초고왕(백제의 전성기)의 침공으로 전사

 

(2). 완성

소수림왕(371384) 고대국가의 완성, 불교수용(전진:순도), 태학설치, 율령반포,

 

(3). 전성기

광개토대왕(391413) 요동진출, 만주확보(숙신정복), 한강상류확보, 영락, 신라가야에 침입한 왜구격퇴 (내물왕)

장수왕(413491) 평양천도(427), 중국 남북조와 통교, 백제공략(개로왕 전사 웅진천도)

문자명왕(491519) 고구려 최대의 영토확보

 

3. 백제

 

(1). 성립과 완성

고이왕(234286) 고대국가성립과 완성, 낙랑대방공격(한군현과 대립), 율령반포, 관제정비(6좌평, 16관 등, 관리복색제정), 서진에 사신파견

근초고왕(346375) 백제의 전성기, 마한병합, 고구려 공략(고국원왕전사), 부자상속,

국사편찬(서기:고흥), 동진왜와 통교,

해외진출(요서진출, 고대상업세력 형성), 부여씨의 왕위세습

침류왕(384385) 불교수용(동진:마라난타)

 

(2). 침체기

비유왕(427455) 제동맹 결성(433: 비유눌지)

개로왕(455475) 북위에 국서보냄, 장수왕 침공으로 전사

문주왕(475477) 웅진천도(475)

동성왕(479501) 결혼동맹(485: 동성소지)

무녕왕(501523) 22담로 설치(중앙에서 왕족파견 : 지방통제 강화), 중국 남조()와 교류

 

(3). 중흥기

성왕(523554) 사비천도,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538), 중앙관제 22설치, 불교장려,

일본에 불교전파(노리사치계), 중국 남조와 교류, 신라와 공동으로 한강유역 회복,

신라의 배신으로 나제동맹 결렬(554)

 

3. 신라

 

(1). 성립과 발전

내물왕(356402) 고대국가의 성립기, 김씨의 왕위세습, 마립간(대군장)사용, 왜구축출(광개토왕의 도움), 북중국과 교류(고구려의 영향)

눌지왕(417458) 제동맹 결성(433: 비유눌지), 부자상속

소지왕(479500) 우역설치, 시장개설, 결혼동맹(485: 동성소지)

지증왕(500514) 한화정책(국호: 신라, 왕호: ), 군현제 실시, 우경실시, 수리사업, 순장금지, 우산국복 속

법흥왕(514540) 율령반포, 백관공복제정, 연호사용(건원), 불교공인, 병부상대등 설치, 금관가야 정복

진흥왕(540576) 영토확장( 단양적성비, 순수비: 창녕비,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품주 설치, 가야병합, 화랑도 공인, 국사편찬(거칠부:국사), 백좌강회,

팔관회, 황룡사건립, 국통주통제도(고려광종 : 왕사국사제도)

 

 

. 고대국가의 대외관계

 

1. 대외관계의 성격 형식적으로는 조공의 형식으로 대함.

실질적으로는 중국세력의 적절한 이용, 선진문화 수용, 정치문화적 이익을 취함.

 

2. 고구려 vs (수의 건국 : 589)

(1). 원인 : 고구려의 요서지방 선제공격, 돌궐과 연합하여 수를 자극.

(2). 결과 : 살수대첩(612)

 

3. 고구려 vs

(1). 당건국 초기 : 고구려와 사신교환, 포로교환등 친선관계 유지

(2). 당태종의 압력 : 고구려의 천리장성 축조, 연개소문의 정변과 대외정책의 강경화

(3). 결과 : 안시성 싸움(645)

 

 

. 신라의 통일전쟁기

 

1. 당 동맹의 결성 당동맹의 결성(진덕여왕, 648), 당에 <태평송>을 바치고 속히 출병요청(진덕)

2. 백제의 멸망(660)과 부흥운동 웅진도독부 설치(유인원), 복신도침왕자풍(주류성:한산),

흑치상지(임존성:대흥)

3. 고구려의 멸망(668)과 부흥운동 안동도호부 설치(설인귀): 백제와 신라의 모든 도독부 총관

검모잠안승(한성:재령)

4. 당 전쟁 계림도독부 설치(663),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664)

고구려 부흥군 이용 : 안승을 보덕국왕에 임명(670), 안승은 통일후 진골귀족으로 편입.

백제구토회복(소부리주 설치)

당전쟁 ; 매소성전투,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이동시킴(676. 통일을 위한 최후의 조치)

 

 

 

. 고대국가의 정치구조와 사회

 

1. 고구려의 정치구조와 사회

 

(1). 특징

1). 삼국 중 가장 먼저 관등조직 성립(대대로 이하 10여 관등)

2). 使者계열로 분리 (연장자 또는 가부장적 족장으로 종래의 군장, 사자는 조세를 거두는 사람으로 행정관리)

3). 중앙정치조직(귀족합좌제도가 존재) 귀족연합정치로 수상인 대대로제가회의에서 선출.

4). 지방행정조직 지방관 파견, 행정과 군사의 일치, 중앙집권적이고 군사적 조직

5). 3(국내성, 평양성, 한성) 정치적문화적 중심지로 주,군 감시기능도 겸함

 

(2). 사회구조

 

1). 지배층 왕을 비롯하여 5부출신의 귀족들이 정치적,군사적 실권장악(귀족연합정치)

고추가 : 전왕족 또는 왕비족의 대인에게 주는 존칭(신라의 갈문왕제도와 유사)

2). 피지배층 농민 : 일반적으로 자영농민, 조세공납力役부담(인두세가 세에 비해 무거움: 고대사회의 일면)

노비

 

(3). 율령 : 반역자패군자살인자는 사형, 절도죄는 12배 배상, 牛馬를 죽인자는 노비화

 

2. 백제의 정치조직과 사회구조

 

(1). 특징

1). 토착적 세력기반이 약하고 중국의 영향으로 가장 먼저 정치조직 정비(고이왕 : 6좌평, 16관등, 관리 복색)

2). 佐平 , 계열, 무명계열의 3단계로 구성(, , )

3). 일찍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음 : 중국의 6전제 모방(6좌평제)

4). 중앙정치조직 귀족연합정치로 수상인 상좌평을 선출(정사암회의)

5). 지방행정조직 군사적행정적 조직으로 구성

 

(2). 사회구조 : 고구려와 비슷,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룬다.

 

3. 신라의 정치구조와 사회구조

 

(1). 특색

1). 법흥왕때 이벌찬 이하 17관등으로 정비

2). 관등제도가 신분제도(골품제도)와 연관( 진골:이벌찬, 6두품:아찬, 5두품:대나마, 4두품:대사승진의 상한)

3). 중위제도( 5, 6두품에 존재 )

4).중앙정치제도 법흥왕 : 병부, 상대등( 귀족회의 주관대변, 신라 중대에 세력약화)

진흥왕 : 품주( 총괄기관 : 기밀재정 )

진평왕 : 위화부(인사), 조부(공납), 예부(교육의식), 영객부(외교), 승부(육상교통)

진덕여왕 : 집사부(기밀), 창부(회계), 좌이방부(형벌)

5). 지방제도

 

(2). 사회구조

골품제도

화백회의 : 진골귀족들의 합좌제도로 만장일치로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며, 귀족사회의 대표적인 특징.

이 제도는 각 집단의 부정을 막고 단결을 강화하는 구실을 하였으며, 귀족세력과 왕권 사이의 권 력을 조절하는 기능도 가졌다. 고구려의 제가회의, 백제의 정사암회의 등도 같은 성격의 제도.

화랑도 : 진흥왕때 공인되었으며, 옛 씨족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기원하였다. 국선과 화랑은 진골귀족출신 에서 나오고 낭도는 6두품에서 평민으로 구성되어, 대립된 계급간의 갈등을 조절완화하는 구 실을 함.

 

(3). 농민의 부역사실 입증 : 영천 청제비(법흥왕), 남산 신성비(진평왕)

 



 

. 고대국가의 문화

 

1. 불교의 수용

 

(1). 배경 : 삼국초기에는 민간신앙(천신,일월신,지신등 잡신을 모시는 샤머니즘)과 새로이 시조신(주몽, 동명,혁 거세)을 모시는 신앙이 지배적이었으나,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가운데 초부족적인 사상으로 국민을 단합하는 데 필요한 고등종교(불교)의 탄생이 필요하게 되었다.

(2). 삼국불교의 특징

1). 왕실을 통한 불교수용 : , 신라는 구족세력의 반대로 100여년간 박해를 받다가 법흥왕때 공인.

2). 호국불교의 성격 : 인왕경, 인왕회(백좌강회)

3). 현세구복적 성격 : 왕권강화, 신분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용도로 이용

(3). 불교의 역할 : 중앙집권화에 기여, 고대문화발전(중국문화 수입), 갈등이나 모순의 극복, 불교미술발달.

 

2. 한학유학의 발전

 

3. 도교의 전래 삼국시대 말기에 중국에서 전래, 귀족사회에 보급, 연개소문의 장려(불교세력억압목적)

강서대묘의 사신도, 산경문전, 사택지적비, 무녕왕릉지석(매지권),

세속오계(,,선 혼합), 화랑의 명칭(국선), 최치원의 사산비문

 

4. 예술의 발달

 

(1). 고구려

1). 고분 석총(장군총) : 벽화가 없다. 광개토왕릉으로 추정

토총 : 쌍영총(서방계통의 영향, 귀족의 가옥양식을 알 수 있음), 강서대묘(도교의 영향,사신도)

2). 불상 연가 7연명 금동여래 입상

(2). 백제

1). 고분 한성시대 : 고구려의 영향으로 계단식 석총(적석총)이 유행

웅진시대 : 중국 남조의 영향으로 전축분(벽돌무덤)이 유행, 소박하고 고졸한 것이 특징

공주 송산리 고분(무녕왕릉) : 사신도, 지석(매지권), 금관식

사비시대 규모는 작지만 세력(횡혈식 석실고분)

부여 능산리 고분 : 사신도

2). 불상 : 서산마애 삼존 석불, 금동보살 입상

3). 석탑 : 익산미륵사지 석탑(목조탑형식), 부여정림사지 5층석탑

 

(3). 신라

1). 고분 적석목곽분 : 벽화없음. 공예품의 보고(부장품 다수), 금관총, 천마총(벽화가 아님)

횡혈식 석실분

於宿墓 : 최근 발견된 유적으로 벽화 발견

2). 건축물 : 분황사 모전탑, 첨성대, 황룡사, 황룡사 9층 목탑

 

5. 삼국문화의 일본전파(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한 나라는 백제이다.)

 

(1). 고구려 담징 : 호류사 금당벽화, 맷돌 전래

도현 : <일본세기>저술

 

(2). 백제 아직기왕인(근초고왕) : 논어천자문 전래

단양이고안무(무녕왕) : 오경박사, 유학전래

유귀노리사치계(성왕) : 오경박사유학, 불상경론전래

혜총(위덕왕) : 계율종전래

관륵(무왕) : 천문지리둔갑방술전래

 

(3). 신라( 군사적 대립이 잦아 문화전수 미약) 조선술인쇄술 전래

 

 

고대국가의 형성과 완성

 

고구려

백 제

신 라

국가기틀

태조왕(2)

고이왕(3)

내물왕(4)

부자상속

고국천왕(3)

근초고왕(4)

눌지왕(5)

확립완성

소수림왕(4)

근초고왕(4)

법흥왕(6)

불교공인

소수림왕(4)

침류왕(4)

법흥왕(6)

영토확장

광개토왕장수왕(5)

근초고왕(4)

진흥왕(6)

율령반포

소수림왕(4)

고이왕(3)

법흥왕(6)

한강확보

장수왕(5)

고이왕(3)

진흥왕(6)

 

 

세기별로 본 삼국의 발전

 

고구려

백 제

신 라

외 교

2세기

*태조왕(현도축출,옥 저동예점령)

*고국천왕

위례 지방

사로 연맹

 

3세기

*동천왕(오와 연결)

*고이왕

(한강유역점령)

 

4세기

(백제전성기)

*미천왕(낙랑축출),

*소수림왕

*근초고왕(마한점령,

고대상업세력형성)

*내물왕(왜구격퇴,고 구려전진과 교섭)

 

5세기

(고구려전성기)

*광개토왕, *장수왕(평양천도:남 하정책)

웅진천도(475)

*눌지나제동맹, 부자상속

*소지왕결혼동맹

*제동맹(433)

*결혼동맹(483)

6세기

(신라전성기)

한강상실

*무령왕(남조와통교)

*성왕(사비천도)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의 정복사업

(적성비, 순수비)

*제동맹

*십자형외교(고구려백제돌궐vs 신라)

7세기

당과 전쟁

멸망(668)

멸망(660)

신라의 삼국통일기

 

 

 

 

 

삼국의 중앙관제와 지방행정조직

 

고구려

백 제

신 라

관등

대대로이하 10여 관등

좌평 이하 16관등

이벌찬 이하 17관등

수상

대대로

상좌평(내신좌평)

상대등집사부 시중

수도

5

5

6

지방

5(욕살)(처려근지)

3(국내성평양성한성)

5(방령)(군장)

22담로(왕족파견)

5(군주)

2소경(사신: 동원경, 중원경)

 

골품제도

 

1. 성립 : 중앙집권국가 성립시기, 각 지방의 족장세력들을 통합,편제하는 과정속에 왕경인 중심

2. 구분 : 진골성골(왕족), 대족장에게는 6두품(득난), 작은 족장에게 45두품

3. 역할 : 개인신분만이 아니라, 친족의 등급도 표시, 정치적 진출범위에서부터 사소한 의식주 생활양식

까지 규제

4. 6두품 : 아찬까지 승진할 수 있으며, 중대에는 왕권을 보좌하며 학문, 종교계에서 활약했으나 하대는

선종과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반신라적 세력으로 변신

5. 13두품은 평민계층으로 보며, 노비는 탈락계급으로 두품이 없음.

 

 

삼국시대 예술의 특징

 

고구려

백 제

신 라

성 격

힘과 정열, 사실적 표현

우아함미의식의 세력

소박한 전통엄격조화미

건 축

석총(장군총: 벽화없음)

토총(중국의 영향, 벽화있 음)

: 강서대묘의 사신도(도교의 영향), 쌍영총의 기사도(서방계통), 무용총의 수렵도와 무용도, 각저총의 씨름도

 

 

 

한성시대(적석총) : 고구려 계통

웅진시대 : 공주송산리무덤 (무녕왕릉: 전축분), 중국남조의 영향을 받음

사비시대(횡혈식석실고분):

부여능산리무덤

미륵사지 석탑(목탑형식)

정림사지 5층석탑

 

적석목곽분(부장품다수, 벽화가 없음) : 천마총

於宿墓(벽화발견)

 

황룡사9층목탑(몽고침입 때 소실)

분황사 모전탑

첨성대

 

불 상

연가 7년명 금동여래 입상

서산 마애 삼존불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

글 씨

광개토 대왕릉비문

사택 지적비문

무녕왕릉의 지석

단양적성비, 임신서기석,

진흥왕 순수비

공통점

2원성(민간예술의 전통적 소박성 + 지배층의 불교적귀족적세련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삼국이 공통적으로 제작

 

 

 

 

 

 

 

 

 

 

 

 

 

통일신라의 중앙관제

관 부 명

기 능

고 려

발 해

조 선

집사부()

군국기무

중서문하성

정당성

의정부

위 화 부

인사공훈

이 부

충 부

이 조

조 부

공납부역

호 부

삼 사

인 부

호 조

창 부

회 계

예 부

교육의식

예 부

의 부

예 조

영 객 부

외 교

병 부

국방군사

병 부

지 부

병 조

좌이방부

법률형벌

형 부

예 부

형 조

우이방부

 

예 작 부

토목영선

공 부

신 부

공 조

공 장 부

수 공 업

사 정 부

감찰풍기

어사대

중정대

사헌부

승 부

육상교통

 

 

 

선 부

해상교통

 

 

 

 

 

비석의 내용

1. 광개토왕비(장수왕:414) 3부로 구성(건국내력, 대왕의 영토확장, 묘지기인), 특히 신라가야 지방

에 침입한 왜구 격퇴사실이 기록되어 있음. 일본의 임나경영설의 근거로 사용.

2. 중원고구려비 신라를 東夷로 지칭, 신라에 고구려군이 주둔했음을 알수 있는 비석(한강상류)

3. 영일냉수리비(지증왕) 갈문왕기록, 재산권분쟁내용수록(최고의 비석)

4. 울진봉평비(법흥왕) 영토확장 및 율령반포 입증, 신라관등기록, 법흥왕을 寐錦왕으로 호칭

5. 영천청제비(법흥왕) 저수지 축조에 부역 동원 사실 입증

6. 단양적성비,순수비(진흥왕) 영토확장과정을 보여줌. 단양적성비(한강상류),창녕비(대가야지역),

북한산비(한강하류), 황초령비마운령비(강원북부함경도지방)

7. 남산신성비(진평왕) 신성축조에 부역동원사실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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