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
허무의
불
물 이항 위에 불 붙어 있었네. //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
남은 날은
적지만 //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
남은 날은
적지만 //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 감상 : 김남조의 시세계의 주조를 이루는 것은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절대적 존재에 대한 기도의 자세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시적 자아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제목 <정념의 기(旗)>에서 ‘정’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념’은 신에 대한 소망의 마음을, ‘기’는 추상적인 ‘정념’을 가시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 성격 : 주지적, 상징적, 사색적, 회고적
* 시적 의미
· ‘물’(생성 이미지, 차가움)과 ‘불’(소멸이미지, 뜨거움)의 대립되는 심상
· ‘겨울 바다’ : 절망과 갈등을 초극한 깨달음의 시적 공간
* 구성
· 제1연 : 기대와 희망이 부재된 ‘죽음’의 공간(바다)
· 제2연 : 좌절의 체험
· 제3연 : 대립된 심상(사랑과 좌절, 슬픔과 기쁨, 죽음과 소생)
- 대립 속에 극복 의지
· 제4연 : (시상의 반전)극복 후의 깨달음과 자기 긍정으로의 전환
· 제5~6연 : 기도의 문을 통해 절망에서 희망으로, 고통에서 환희로 인도(주제연)
· 제7~8연 : ‘인고의 물기둥’이 단단한 심상을 이루며 절망의 초극 의지를 나타냄
* 주제 : 삶의 허무 극복 의지(자기 초월과 강인한 삶의 의지)
* 출전 : 시집 [겨울 바다](1967)
해설
(촛)불은 액체가 되어 흐르기도 하고, 딱딱하게 흥결하여 고체가 되기도 한다. 蠟(납)은 기름이 고체로 변한 불이며, 커다란 눈물인 바다는 결정(結晶)한 불인 소금이 액체(液體)로 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이 시인의 채집상자 안에 들어 있는 성스러운 불을 그냥 보석처럼 구경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끝없이 생성하고 움직이고 자라나고 순환(循環)한다.
그녀의 시에 ‘불’의 매개물(媒介物)이 유난히 많이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묘초(妙草), 향유(香油), 유황(硫黃), 좀더 추상적인 불의 촉매체(觸媒體)로서는 자석(磁石)과 철사, 면도(面刀)날과 같은 금속(金屬)이 있다. 이 시인의 불은 그저 뜨거울 뿐 아니라, 때로는 얼음과 같이 차가운 불도 된다. 생명(生命) 그것과 마찬가지, 자석과는 반대로 자신과 타자의 생명을 잘라 떼어버리는 예리(銳利)한 면도날이 불꽃의 매개물(媒介物)이 되기도 한다. 기쁨과 황홀(恍惚)(뜨거운 불)보다는 아픔과 추위의 면도날(차가운 불), 차라리 그 상처(傷處) 속에서 사랑의 불을 붙이는 부싯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음 구절의 시적 의미가 유사하게 형상화된 다른 작가의 시를 한 예로 들면 ?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김광섭 시 <생의 감각> 마지막연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