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리학의 융성


⑴ 성리학의 두 흐름(훈구파와 사림파)


훈구파(관학파=혁명파, 15세기)

사림파(사학파=온건파, 167세기)

역성 혁명 찬성

원시 유학에 관심

부국강병, 중앙집권화 추구

사장 중시

불교도교 등을 포용

성균관집현전 출신

15세기 민족 문화 창달에 기여

막대한 토지 소유

왕도패도주의

군사학기술학 중시

격물치지경험적 학풍

치인지학 추구(지배로서의 학문)

자주 민족의식(단군숭배)

주례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사용

(주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유교 경전)

역성 혁명 반대

성리학 이념에 충실

왕도 정치와 향촌자치 추구(향약실시 주장)

경학 중시

불교도교 등 배척

지방 사학 출신

16세기 이후 사상계 주도

중소 지주충

왕도정치 강조

기술학 천시

사변주의관념적 학풍

수기지학 추구(수신으로서의 학문)

중국중심 화이사상(기자)

3사 장악, 훈구파 비판(사화)

형벌보다는 교화에 의한 통치를 강조

 



⑵ 성리학의 발전(주리론과 주기론)


서경덕조식이언적이 선구자이고, 조식은 노장 사상에 포용적이었으며 학문의 실천성을 특히 강조

이언적

서경덕(불교노장 사상에 개방적)

이황(주리론) - 이기 이원론

이이(주기론) - 일원론적 이기 이원론

원리 중시

도덕과 명분(원리) 강조

일본 성리학에 영향

•「주자서절요, 이학통록

성학십도(군주 자신이 성학을 따를 것을 주장)

 

영남학파에 영향(김성일, 유성룡 등)

예안향약

백운동서원 소수서원으로 사액

도산서원(후진양성)

경험적 세계 중시

현실 개혁에도 관심

실학으로 연결

동호문답

성학집요(현명한 신하가 성학을 군주에게 가르쳐 그 기질을 변화시킬 것을 주장)

기호학파 형성(조헌, 김장생 등)

해주향약, 서원향약

소현서원

•「만언봉사: 10만양병설, 동호문답: 대동법 주장

지나친 도덕주의로 현실적인 부국강병책에는 소홀

 

 

19세기 위정척사, 항일의병

18세기 실학

19세기 개항

 





학파정파의 형성과 대립


① 주리설(주리론)과 주기설(주기론)


영남학파

(동인,

주리론)

남인(이황)

경기도 남인(이익, 정약용) 중농주의 실학

경상도 남인 위정척사 사상

예송 논쟁을 일으킴(남인서인)

수취체제 완화와 자영농 육성 주장

상업기술 발전에 소극적

왕권 강화 중시(갑인예송, 기사환국)

북인(조식)

절의 중시 정인홍, 곽재우 등 의병장 다수 배출

중립 외교(광해군 때) 추진

대동법 시행, 은광 개발 등 사회경제정책 추진

기호학파

(서인,

주기론)

노론

(송시열,

이이)

충정도 노론 - 주기론 고집

서울 노론 - 주리론 포용 북학 사상으로 발전

성리학 신봉, 이단 적극 배격

의리 명분론, 조선중화사상, 척화론 주장

일당 전제화를 시도하여 붕당 정치를 변질시켰다.

계승

한원진 임성주 등이 계승. 19세기 중엽의 최한기는 주기론과 관련된 경험주의 철학을 높은 수준으로 고양.

소론

(윤증, 성혼)

성리학 이해에 탄력적

양명학 연구

내정 개혁 주장



② 심성론 중심(인물성 - 이론 vs 동론)


호론

낙론

충청도 지방 노론 중심의 주장

한원진, 권상화

인물성이론

우리 문화의 자부심으로 청서양에 배타적

위정척사 사상에 영향

서울경기 집장 노론 중심의 주장

이간, 김창협, 이재

인물성동론

서양 등 이질적인 것을 포용하는 입장

북학 사상에 영향

 


예학과 보학의 발달: 예학은 예송논쟁의 구실로, 보학은 양반 문벌강화 역할.




 

4. 불교와 신앙


⑴ 불교 정책불교는 중국을 존중하는 세계관이 없어 유교의 약점을 보완


태조

도첩제 실시로 승려 수 제한, 사찰 증설 금질. 후에 흥천사를 지음.

태종

도첩제 강화. 사원전노비 몰수 등 억불책.

세종

종파 정리, 사원전노비 제한, 화장경행을 금지. 후에 궁중에 내불당 건립.

세조

원각사 건립, 간경도감 설치하여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숭상.

성종

도첩제 자체를 폐지

중종

승과 폐지, 법계 폐지, 승려 천민화

명종

문정 왕후의 지원 아레 보우가 중용되고 승과도첩제 부활. 후에 다시 탄압.

16세기

후반

서산 대사와 같은 고승이 배출되어 교리를 가다듬었고, 임진왜란 때 승병의 활약으로 위상 정립.

 


민간신앙


도교

장점: 제천행사는 국가권위 높임, 도교경전은 상무정신 함양. 양생술은 의학발달에 영향. 유교의 문 약에 빠지고 사대에 치우치는 약점 보완.

단점: 행사의 남용으로 국가 재정에 큰 손실 사원 정리 행사 축소

관청: 소격서가 (칠성단)초제를 주관하였으나 16세기 사림의 명분론에 맞지 않아 폐지.

기타: 마니산 초제


민간 신앙

풍수지리설, 도참 사상이 조선 초기 이래로 중요시되어 한양 천도에 반영. 산송문제 대두.

무격 신앙

민간 신앙 보호: 미신행위 금지, 민간신앙을 국가신앙으로 흡수, 무당을 국가가 채용.

삼신 숭배: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숭배를 국조숭배로 흡수, 구월산에 삼성사 설치제사 동시에 평양에 단군사당 건립제사.

세시 풍속

명당 선호 경향: 불교식으로 화장하던 풍습이 묘지를 쓰는 것으로 바뀌면서 명당 선호 경향이 두 드러졌다.

 

공무원 기출&예상 단어 15 (impeach~impugn)


impeach 탄핵하다,의심하다
impeccable 결함없는,완벽한
impecunious 돈이 없는,가난한
impede 방해하다
impel 재촉하다,강제로~하게하다
impending 절박한,긴급한
impenetrable 꿰뚫을수없는,통과할수 없는
impenitent 회개하지 않는,완고한
imperative 명령적인,강제적인,긴급한
imperceptible 알아차릴수 없는,극히적은
imperil 위태롭게하다
impermeable 스며들지않는,통과할수 없는
impersonate ~의역할을 하다
impertinent 건방진,뻔뻔한,부적절한
imperturbable 침착한,태연한
impervious 통과시키지않는,영향받지않는,무감각한
impetuous 격렬한,성급한
impious 불경스런,불신앙의
implacable 달랠수없는,무자비한
 
implausible 믿기 어려운,거짓말 같은
implement 도구,실행하다
implicate 관련시키다,함축하다
implicit 함축적인,무조건적인
implore 애원하다,간청하다
impolitic 분별없는
impose 지우다,부과하다,강요하다,이용하다,속이다
impotent 무력한,허약한
impoverish 가난하게하다,고갈시키다
impracticable 실행불가능한,다닐수없는
impregnable 확고한,견고한
impregnate 임신시키다,주입하다
imprint 찍다,표시하다
improbable 일어날것 같지 않은
impromptu 즉석의,즉흥의,즉석으로,준비 없이
improper 부적당한,점잖치 못한
improvise 즉석으로 하다
imprudent 경솔한,무분별한
impudent 뻔뻔스러운,염치없는
impugn 비난하다,반박하다


공무원 기출&예상 단어 14 (humility~impassive)


humility 겸손
hybrid 잡종
hyperbole 과장
hypercritical 혹평적인
hypersensitive 과민한
hypertension 고혈압
hypostasis 근본원리,본질
hypothec 저당권,담보권
idiosyncrasy 특징,특이성
ignoble 비열한,비천한
ignominious 수치스러운,치욕적인
illegible 읽기어려운
illegitimate 불법의
illicit 불법의
illiterate 무식한,문맹의
illuminate 조명하다,설명하다,계몽하다
illustrate 설명하다
imbecile 저능한,바보의


immaculate 깨끗한,순결한
immaterial 비물질적인,정신적인,중요치않는
immature 미숙한,미성년의
immemorial 태고의,먼옛날의
immerse 잠기게하다,담그다,몰두시키다
immigrate 이주해오다
imminent 절박한,긴급한
immobile 움직일수 없는,고정된
immoderate 무절제한,과도한
immortal 죽지 않는,불후의
immune 면제된,면역된
immutable 변경할수 없는,불변의
impact 충돌,충격,빽빽한
impair 손상시키다,해치다
impart 주다,전해주다
impartial 공평한,편견없는
impassable 통행할수없는,통과할수 없는
impasse 막다름,난국
impassioned 감동적인,열의에 찬
impassive 감정이 없는,무감각한


공무원 기출&예상 단어 13 (gratuitous~humid)


gratuitous 공짜의
gregarious 군집성의,사교적인
grisly 무서운
gruesome 소름끼치는
gruff 퉁명스러운
guile 교활
gullible 속기쉬운
hackneyed 진부한
halcyon 평온한
hallowed 신성한
hallucination 환각
hamper 방해하다
haphazard 우연의
harass 과롭히다
harbinger 선구자,전조
harry 약탈하다,침략하다
haughty 건방진
hazardous 위험이 많은
hazy 흐릿한
hedonism 쾌락주의
heedless 부주의한
heinous 극악한,가증스러운
heresy 이단
heterodox 이단의,비정통적인
heterogeneous 이종의,이성분으로 이루어지는
heteronomy 타율
heterophobia 이성 공포증
hibernate 겨울잠을자다,동면하다
hideous 소름이 끼치는
hilarious 즐거운
holocaust 전멸,대학살
holoscopic 전체시야에 담은,종합적인
homogeneous 동종의,동일성의
homonym 동음이의어
homosexual 동성애의
horticultural 원예의
hostage 담보물,인질
humane 인정있는
humdrum 지루한
humid 습한


1. 교육 기관


인문 교육 기관: 중앙에 성균관과 4부 학당, 지방에 향교를 두어 각 군현의 인구에 비례하여 정원을 책정.


초등 교육: 서당

입학 대상: 사립 교육 기관으로서 사학이나 향교에 입학하지 못한 선비와 평민 자제들이 교육을 받았다.

입학 연령: 대가 8, 9세부터 15, 16세 정도였다.


중등 교육: 중앙의 4(4부 학당)과 지방의 향교.

사학(4부 학당): 중학동학서학남학이 있었으며, 정원은 각각 100명씩이었다.

㉡ 향교: 현에 각각 하나씩 설립.


③ 고등 교육성균관

명륜당: 유학 강의동 문묘: 공자 등 성현을 모신 곳 

양재: 기숙사 

존경각: 도서관 

비천당: 과거시험장



⑵ 기술 교육

교육 기관: 의학, 역학, 산학, 율학, 천문학, 도교, 회화 등으로 나누어 각각 전의감, 사역원, 호조, 형조, 관상감, 소격서, 도화서 등 해당 관청에서 교육.

학생 수와 교육 내용: 기술 교육은 군현의 크기와 지방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생 수와 교육 내용을 조정.



 

2. 민족문화의 성립


민족 문화의 발달배경과 한글 창제

조선 초기 학풍: 집권층인 관학파가 과학기술과 실용 학문을 중시.

한글 창제: 1446년 반포.

 


실록의 편찬


실록의 편찬(태조실록철종실록)

태조실록: 태종때(1413) 편찬.

정종태종실록: 세종때 편찬

광해군 일기, 연산군 일기, 노산군 일기(숙종 때 단종 )

선조현종경종 수정(삭제) 실록


실록의 기록

정종태종실록 편찬 이래 춘추관에 임시관청인 실록청을 설치

왕의 사후에 사초를 정리하여 초정초의 과정을 편년체로 기록.

사초(사관이 국왕 옆에서 기록)와 시정기(각 관청의 문서를 종합하여 춘추관에서 작성)은 사관 이 외 열람 불가.


③ 실록의 보관

세 종

선조광해군

이괄의 난 이후

현재

춘추관 사고

춘추관 사고

춘추관 사고

이괄의 난 때 소실

충주 사고

오대산 사고

오대산 사고

도쿄대로 이전(1923년 지진으로 소실)

성주 사고

태백산 사고

태백산 사고

부산 국가 기록 보관소에 보관

전주 사고

(임진왜란 때 유일 보존)

마니산 사고

정족산 사고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김일성대학교 보존

묘향산 사고

적상산 사고


국조보감: 실록 중 역대 왕들의 선정과 훌륭한 언행만을 모아서 간행. 왕들의 정치 참고서로 이용.



⑶ (조선 전기역사서의 편찬

(혁명파 사대부의) 성리학적 사관 조선 왕조 개창의 정당화 및 성리학적 통치 규범 확립이 목적

고려국사

정도전

태조 4(1395)

고려전체 역사

편년체

고려 멸망 당위성, 조선건국 합리화

동국사략

권근

하륜

태종 3(1403)

단군고려말

편년체

단군-기자-위만-한사군-삼한-삼국으로 상고사 체계화

15

 

(관학파의) 자주적 사관으로 자주적 입장에서 고려 역사를 재정리

고려사

김종서

정인지

문종 1(1451)

고려시대 역사

기전체

조선 건국 합리화를 위해 고려 말 왜곡(군주 중심의 역사서술)

고려사절요

김종서

정인지

문종 2(1452)

고려시대 역사

편년체

고려사에 누락분 보충추가(신하적 입장에서 서술)

삼국사절요

서거정

노사신

세조성종

삼국시대 역사

편년체

세조는 왕권강화와 부국강병의 목적으로 고조선-고구려-고려 역사체계를 이루려 함

동국통감

서거정

성종15

(1484)

박혁거세공양왕

편년체

3조선(단군, 기자, 위만)과 삼한-삼국-통일신라-고려로 이어지는 흐름, 삼국사절요고려사절요를 기초로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

16

(사림의) 존화주의적 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소중화로, 기자 조선을 주목, 고유문화 이단시

동국사략

박상

14741530

 

강목체

15세기 동국통감을 비판요약, 엄정한 도덕적 기준으로 한국사 재정리

기자실기

이이

선조

(1580)

 

 

왕도정치의 기원을 기자에서 찾고 한국유학의 토착화에 기여


 


⑷ (조선 전기지도와 지리서의 편찬


역대제왕

혼일강리도

이무

태종 2(1402)

요하 동쪽의 조선과 일본을 표시한 세계지도로 동양 最古

팔도도

태종 2(1402) 이회 세종 16(1434) 정척 세조 때 양성지의 동국지도

팔도지도

정척,

양성지

세조 9(1463)

인지를 이용한 최초의 실측지도. 압록강 이북까지 기록되어 북방의 관심 표명.

조선방역지도

제용감관원 이이 외 11

명종1213

(155758)

조선 8도 주현도

 

신찬팔도지리지

윤준, 신색

세종 14

(1432)

최초의 인문지리서. 증보한 세종실록에 수록. 각 지방의 연혁, 호구, 토산 등을 기록.

팔도지리지

양성지

세조1성종 8

(14551477)

실록지리지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왕명을 받아 제작. 동국여지승람에 묻힘.

동국여지승람

서거정,

노사신

성종 12(1481)

팔도지리지세종실록지리지에 학교, 인물, 사묘, 시문 등 사대부의 취향이 반영된 전국 군현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행, 홍언필

중종 25(1530)

동국여지승람을 증보 간행한 것이 현존

읍지

 

16세기

사림의 관심이 반영되어 각 군현을 단위로 작성된 지도

 


법전과 윤리서, 의례서


① 조선의 법전

구분

시기

편찬자

특징

조선경국전

태조

정도전

여말 선초의 조례를 정리한 최초의 법전

경제문감

태조

정도전

조선의 정치 조직의 초안

경제육전

태조

조준, 하륜

여말 선초의 각종 조례를 정리한 법전

경국대전

세조성종

최항, 노사신

조선의 기본 법전으로 세조 때 착수, 성종 때 교정반포

속대전

영조

김재로

경국대전을 보완

대전통편

정조

김치인

경국대전+속대전

대전회통

고종(대원군)

조두순

대전통편을 보완하여 편찬

육전조례

고종(대원군)

조두순

대전회통에서 빠진 시행 규례 정리


의례서 및 윤리서

삼강행실도(세종): 모범이 될만한 충신, 효자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을 붙인 윤리서.

국조오례의(성종): 가의 여러 행사에 필요한 의례 정리서.

이륜행실도: 윤리서.

동몽수지: 어린이 예절 윤리서.




공무원 기출&예상 단어 12 (expunge~grandiose)


expunge 지우다,삭제하다
extant 현존하고있는
extemporize 즉석에서 하다
extenuate 경감하다,참작하다
exterminate 근절하다,박멸하다
extinct 꺼진,활동이없는,전멸한
extirpate 근절하다,박멸하다
extol 칭찬하다
extort 강제로 빼앗다,강탈하다
extracurricular 과외의,정규과목이외의
extraneous 외부로부터의,밖의,관계없는
extraterrestrial 지구밖의,우주의
extraterritorial 치외법권의
extravagant 돈을 낭비하는,과도한,터무니없는
extricate 구출시키다
extrinsic 외부로부터의,비본질적인
extrude 밀어내다,내밀다
exuberant 풍부한,넘치는
exude 발산하다,분비하다
exult 크게기뻐하다,의기 양양해하다
fabricate 만들어내다
facetious 익살맞은
facetious 익살맞은
facilitate 용이하게하다
faction 파벌
factitious 인위적인
fallacious 그릇된
famish ~을 굶주리게하다
fanaticism 열광
fancy 상상하다,좋아하다
fastidious 까다로운
fatuous 어리석은
fealty 충성
feasible 실행할수있는
fecund 많이 생산하는
feign ~인체하다
felicitous 적절한
fiction 마찰
fictitious 가짜의
fidelity 충실,성능
finesse 교묘한솜씨
flagrant 극악한
flamboyant 화려한
fledgling 애송이,풋내기
flimsy 부서지기 쉬운
flout 비웃다
fluctuation 변동
flux 변화
foible 결점,약점
foment 조장하다
foreboding 예감,조짐
forefront 최전선
foregoing 이전의,전술한
foreordain 미리~의운명을 정하다
forerunner 선구자,전조,조짐
foresight 예견,선견지명
forestall ~을 미리막다,선수를 치다

forfeit 몰수당하다,잃다
forgo 포기하다,그만두다
forlorn 버려진,버림받은,고독한
formidable 끔찍한
forsake 버리다,떠나다
forswear 맹세코 그만두다
forte 특기
fortitude 용기,인내
fortuitous 우연한
foster 촉진하다,기르다
fractious 까다로운
frail 연약한
fraternal 형제의
fraud 사기꾼
fraught ~으로 가득찬
fray 닳게하다
friction 마찰
frigid 매우추운,혹한의
frolicsome 까불며 뛰노는
frugal 검소한
frustrate 좌절 시키다
fulsome 지나친
funereal 장례식의
furtive 몰래하는
gainsay 반박하다
galvanize,-ise 갑자기 활기띠게 하다
gamut 전범위
gape 바라보다
garrulous 수다스러운
genial 온화한
genteel 품위 있는
germane 밀접한 관계가 있는
gesticulation 몸짓
ghastly 무서운
gist 요점
glib 입심좋은
glossy 윤이나는
gluttonous 게걸스러운
goad 자극하다,선동하다
gorge 배불리 먹다
grandiloquent 과장된
grandiose 웅대한,장엄한


. 근세 사회


1. 문무 양반사회

양천제(양인-천인)

반상제(양반-상민)

법적인 기준, 조선 초기에 어느 정도 관철.

갑오개혁 이전까지 조선의 기본적인 신분제. 법 적으로는 노비만 천인.

현실적 신분, 16세기 이후 고정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제 정착

 


양천제도와 반상관계의 전면화


양반의 삶: 점차 신분 명칭으로 정착.



중인의 생활

광의로는 양반과 상민의 중간신분, 협의로는 기술관.

15세기부터 넓은 의미의 중인으로 형성되어 후기에 독립된 신분층을 이룸.

기술관, 향리, 서리(경아전 녹사서리, 지방의 외아전은 향리), 토관, 군교, 서얼.

역관: 사신을 수행하면서 무역에 관여하여 이득을 보았다.

향리: 토착 세력으로서 수령을 보좌하면서 위세를 부리기도 하였다.

서얼은 중인과 같은 대우를 받아 중서라고 불렸고 문과 불가 무반 등용.

서리와 향리 및 기술관은 같은 신분 간에 혼인하고 직역 세습, 관청주변에 거주.

 


상민의 삶

농민: 상민의 대부분이며 조세공납부역 부담. 출세에 제약은 없었음.

수공업자: 공장으로 불리며 민관영 수공업에 종사, 공장세 납부.

상인: 시전 상인보부상이 국가의 통제아래 상거래에 종사, 상인세 납부.

신량역천

신분은 양인이나 고려 시대에 제염, 어업, 광업, 목축, 봉수, 간척, 도살 등 천역을 담당하던 계층

조예(문관청의 사령), 나장(무관청의 사령), 일수(지방 관청의 하인), 조군(조운선의 사공), 수군(해 군), 봉수군(봉수대 수직자), 역보(역졸) . 군역을 마치면 일반 양인.

 

상업공업광업수산업 종사자는 군역 면제이고 낮은 군직이나 잡직 가능



천민의 구성

노비

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자유민으로서 교육, 등용에 제한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상속증여 가능.

고려의 일천즉천제도가 17세기말 현종때 폐지되고 영조때 노비종모법’(1731) 확정.

장예원에서 노비 담당.

조선 초기에 양인으로서 천인이 된 자, 양천 교가소생 부곡민을 양민화. 후기에 양인으로 된 자도 다수.

소유주에 따라 관노(신공 납부, 관청 노동), 사노(외거, 솔거). 국초 관노 < 사노

조선 말기에 농민의 몰락이 심화, 사노비의 수는 격감. 노비신분 세습제 폐지는 1886.

모든 공노비는 60세가 되면 역이 면제. 노비의 신공은 노(남자)는 면포 1, 저화 20장이고 비(여 자)는 면포 1, 저화 10장이다.


㉨ 노비와 타 신분간의 결혼

고려 노비제도의 기본 원칙은 천자수모법+종부법=일천즉천이었다. 이것이 조선에 그대로 계승된다.

1. (노비)+(노비)=자식(노비); 모의 소유자가 자식 소유.

2. (양인)+(노비)=자식(노비); 천자수모법(고려)+노비종모법(조선) 적용되고 모의 소유자가 소유.

3. (노비)+(양인이상)=자식(노비); 종부법 적용되고 부의 소유자가 자식 소유.

4. (양반)+(노비)=자식(노비); 일정 수속을 거치면 얼자(양인)이 된다.

 

   

노비 외에 백정, 광대, 무당, 창기 등이 천민이었다.



 

2. 사회정책 개관


사회정책


정부의 농민통제책

오가작통법: 5호를 1, 5통을 1리로 조직하여 이장(이정)을 두고 위에 면()를 설치. 면장이 권농의 직임을 짐. 임난 후 속오법에 의해 방위조직화.

호패법: 태종 2(1402) 실시하여 3년마다 고쳐 작성.

 


구호시설


환곡

의창

고려 성종 때의 빈민구호기관으로서 중종 20(1525) 진휼청 설치로 폐지

15세기에는 의창 에서, 의창의 원곡 부족으로 기능 수행이 어려워짐

따라서 16세기에는 상평창이 환곡 담당(상평창의 이자는 1).


상평창: 고려 성종 때의 물가조절기관으로서 선조 41(1608) 선혜청 설치로 이에 병합.

사창: 양반 지주층이 운영한 주민 자치 환곡.

의료 시설

전의감: 태조 때 설치한 궁중과 중신의 치료기관 내의원을 분리시켜 삼의사 설치.

혜민서: 민간인의 치료기관.

혜민국과 동서대비원: 수도권 안의 서민 환자 구제와 약제 판매.

제생원: 지방민의 구호와 진료

동서활인서: 여행자, 유랑자의 수용과 구휼

 


법률


형법

형법과 민법은 기본적으로 경국대전에 종합.

실제로는 고려 이래의 대명률(태장도유사+자자+능지처사)에 의거.

반역죄, 강상죄는 연좌법 적용.


민법

주로 관습법에 의거, 가족제도에 관계되는 것은 주자가례에 준함.

민사재판은 관찰사와 수령이 담당.

상속 문제는 성리학 정착 이후로는 종법에 의거.


재판: 항소과정도 있었다.


사법기관

중앙(사헌부, 의금부, 형조, 한성부, 포도청, 장례원)

사헌부, 의금부, 형조: 정치적 중대 사건 담당

한성부: 수도의 일반행정, 토지및 가옥 소송 담당

장례원: 노비 소송 관장.

지방: 관찰사, 지방관, 토포사(진영장이 겸함)


신문고: 태종 2년에 설치하여 의금부에서 관장. 사헌부에서 해결되지 않는 억울한 일을 왕에게 직접 호소.



 

3. 향촌 사회의 모습


향촌 사회


향촌의 개념

: 중앙과 대칭되는 개념으로서 지방관이 파견되는 행정 구역상 군현.

: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면리 단위의 구역.


유향소

계승: 고려 말의 유향소가 지방세력화 하고 이시애의 난과 관계되어 세조 때 폐지했다가 성종 20 (1489) 향청으로 계승.

조직: 지방양반과 유향품관으로 구성되며, () 좌수(향정), 차석인 별감의 향임(2)수령이 임명.

기능: 수령자문향리의 비행을 규찰풍속교정정령시달민의대변향약운영수령의 횡포 견제.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다수.


경재소(=경소)

역할

중앙에 재직하는 고위 품관이 출신 지역의 경재소를 관장하여 유향소를 통제, 행사 주선, 공물 상 납에 책임을 지는 중앙-지방 연락기구.

왜란 이후(1603) 지방사족 명단으로 향안 작성, 향규 제정, 향회 집행.

조직: () 당상이 동향인 중 좌수 1, 참상별감 2, 참외별감 2명 임원 임명하고 유향소의 품 관도 임명. 고향의 경저리(=경주인=경인)이 경재소에서 업무 수행.

변화: 경재소 혁파(1603) 후 향소(향청)으로 개칭.


영저리(=영주인):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감영에서 감영과 지방과 연락 사무를 보던 지방 향리. 폐단 큼.

 


촌락의 구성과 풍습


일반적인 촌락: 면리제 하에서, 반촌민촌 구분이 있었지만 두서너 씨족이 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으 며, 양반평민천민이 함께 살았음.


특수한 마을

교통기관에서: 역촌, 진촌, 원촌

어장과 포구에서: 어촌

수공업품 생산지에서: 점촌


향촌의 공동체 조직

사족: 동계, 동약을 조직하여 촌락민들에 대한 지배력을 신분적으로 강화하고자 하였으며, 지주제 를 통하여 사회경제적 지배를 관철.

일반 백성

동계동약: 사족들만이 참여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양반과 평민층이 함께 참여. 사족 지배 체제가 동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향도, , 두레

석전: 조선 초기 상무정신을 함양하는 행사.

사림 세력의 성장에 따라 유교에 맞지 않는 것은 음사로 취급. 16세기 후반 이후로는 전통적인 향촌규약과 조직제가 향약으로 대치되고 친족 중심의 동족 부락이 형성.

향도계, 동린계 등의 마을축제는 상조기구로 기능 전환.



 

4. 성리학적 사회 질서


언론과 학문 중시

경연: 국왕과 대신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토론을 통해 국왕의 학덕 배양.

서연: 세자와 대신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토론을 통해 세자의 학덕 배양.

상소

구언: 백관의 의견을 묻는 제도.

 


⑵ 예학과 보학


예 학

보 학

종족 내부의 의례 규정

종족의 종적인 내력과 횡적인 종족 관계 확인

종적 단결 강화, 타 종족에 우월 의식 조성

가족과 친족 공동체의 유대를 통해 신분적 우위 확보

16C

중반

주자가례 중심의 생활 규범서가 출현하고 학 문적 연구 시작

16C

후반

성리학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에 깊은 관심, 가묘와 사당 건립.

17C

양난으로 흐트러진 유교적 질서의 회복이 강 조되면서 더욱 중시. 예치가 강조.

김장생, 정구 등 예학자들이 다수 등장.

결과: 학파 간 전례 논쟁(예송)

영향: 정쟁의 구실, 양반 사대부의 신분적 우 월성을 강조하는 데 이용.

족보의 편찬과 예학의 발달은 조선 후기에 매우 성하여 양반문벌제도 강화에 기여




서원과 향약의 영향


서원의 기능

숭배추모: 이름난 선비나 공신을 숭배하고 그 덕행을 추모.

향촌 사회의 교화에 공헌

향음주례: 가을로 향음주례를 지내는 동안에 인재를 모아 학문도 가르쳤다.


서원

백운동서원(1543): 주세붕이 풍기의 죽계에 설립한 최초의 서원. 이황의 건의로 최초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이 됨.

당쟁의 소굴화가 되고 민간 작폐가 심하였음 영조 때 300여개소, 대원 때 600여개소를 철폐하여 소수서원을 포함한 47개소만 남겼다.


향약

정착

중종 때 조광조 등의 사림파가 경재소유향소 철폐를 주장하고 향약 보급을 제안하였으나 성공 하지 못하고 각지에서 개별적 실시

이황에 의해 경상도를 중심으로 보급되다 선조때 본격적으로 보급.

보급: 중국 여씨향약(이황, 이이가 보급)이 최초, 해주향약(이이)이 널리 보급된 조선 후기에 가장 완벽한 향약.

조직: 도약정(회장), 약정(부회장), 직월(간사) 등의 임원을 두어 향청과 서원을 중심으로 운영.



 

5. 근세사회의 변동


신분의 계층분화

양반의 분화: 17세기 후반 붕당정치의 변질(노론의 일당전제화)로 정계에서 배제된 권반들이 향반토반잔반이 됨. 이름만 양반인 잔반의 경우 훈장, 농업, 상공업에 종사.


 

중간계층의 성장


서얼 대우의 변화

임진왜란을 계기로 납속책, 공명첩을 통하여 관직 등용.

정조 때 청요직 진출을 요구: 정조 때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가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 청요직 은 3사의 관직으로 판서정승 진출에 유리.

신해허통(철종 1851): 사관 등용 조치.


중인의 성장: 19세기 중엽 철종 때 대규모의 소청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실패. , 전문직으로서 존재를 부각.


위항문학: 중인을 위시한 평민, 노비 등의 문학을 통틀어 지칭. 시사도 조직.

㉠ 「해동유주: 숙종 때의 문관이자 시인인 홍세태가 편집한 위항시집.


 


노비의 신분상승 추구


노비의 신분상승

조선 후기에 군공과 납속을 통한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었음.

18세기 전반에 종모법(아버자가 노비라도 어머니가 양민이면 자식이 양민)이 원칙으로 허용되면서 활발.

신분상승에 실패한 노비들은 도망을 가서 임노동자, 머슴, 행상 등으로 생계유지. 남아있는 노비들 이 도망자 신공을 부담.

정부에서는 신공을 줄이기도 하고, 도망 노비들을 찾아내려고도 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함.


공노비의 해방

공노비 중 일부를 입역노비에서 납공노비로 전환.

국가 재정 문제로 서서히 풀어주다 공노비의 신공 징수가 불가능하게 되자 순조 원년에 공노비 6 만 명을 해방.

사노비: 일반 농민이나 공노비에 비하여 더 가혹한 수탈과 사회적 냉대를 받았다. 사노비들도 조선 후 기에 신분 상승을 추구하여 도망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가족제도와 혼인모습의 변화

17세기 이후 가족제도: 가부장제 윤리와 주자가례 생활화로 부계중심화. 친영 제도 정착, 적통 장사상속.

양자 입양 일반화: 조선 후기에는 부계 중심의 가족 제도가 더욱 강화 되었으며, 아들이 없는 집안 에서는 양자를 들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동성 마을 형성: 부계 위주의 족보를 적극적으로 편찬하였고, 같은 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사는 동성 마을을 이루어 나갔다.

혼인형태의 변화: 엄격한 족외혼. 일부일처제와 처첩제. 재가한 여자의 자손은 과거응시관료임명 불 가. 법적 혼인연령은 남 15, 14 이상.


 

인구수의 변동

한양의 인구 변화: 세종 때 1018세기에 20

전체 인구의 변화: 400600(세종) 500(임난 전후) 600(17C) 700(18C) 천만(19C )



 

6. 향촌의 변동


경영형부농(신향)의 출현과 변화된 양반중심의 향촌질서

지배층의 분열

양반이 전호, 임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 발생

향반토반들은 문중 중심으로 사우, 서원을 건립하고 청금록향안, 향회, 항약을 통해 결속을 다 지고 동약으로 농민을 지배.

경제의 변화와 부농의 출현

관권을 실질 장악하였던 아전, 서리 등 향리의 세력을 강화하여 향촌질서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정부에서도 납속, 향직 등으로 부농의 합법적인 신분상승을 가능케 함.

부농층이 향임직에 진출.

(18세기 후반 이래 향리 세력의 성장에 따른)농민의 수탈 강화

부세가 토지를 중심으로 집중되어 향촌 질서 동요.

또한 전세, 군포, 환곡 등이 공동납제로 촌락에 부과되어 농민은 궁핍, 불만은 고조.

 


7. 농민층의 변동

농민의 분화모습: 농민은 경영형부농이 되거나 상공업으로 전업, 또는 도시광산의 임노동자로 분화. 농토로부터 이탈.

 

양반층의 증가와 임노동자의 출현

양반의 증가: 하층민이 부를 축적하여 공명첩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 또는 상민이 됨.

임노동자의 출현


 

8. 근대지향적 사회변화


사회불안의 고조

사회의 부패: 18세기 후반에는 정치 기강이 안정, 세도정치가 시작되며 사회가 부패.

부패의 심화: 19세기에 이르러 지배 체제의 모순이 심화. 게다가 1820년의 수재, 이듬해 콜레라, 도적, 이양선이 출몰.

도적의 창궐

화적: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지방의 토호나 부상들을 공격.

수적: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무대로 조운선이나 상선을 약탈.

 

예언사상의 유행

낭설, 비기(정감록, 토정비결), 도참, 무격신앙, 미륵신앙이 유행

19세기 초엽부터 예언사상이 현저하여 벽서사건이 빈발.

 

천주교의 수용

전래

17세기에 베이징을 왕래하던 사신들에 의해 국내 소개.

학문으로 인식되면서 서학이라 불리며 이익을 비롯한 남인 학자들이 연구.

발전

교리 연구회: 정조 1(1777)에 남인 학자 이승훈, 정약종, 이가환, 권철신, 정약용, 이벽 등이 중심.

민간에 수용: 18세기 후반부터 중인상민을 대상으로 전개하여 큰 호응. 신자가 늘어갈수록 기존 가치관과 갈등을 보였으며,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널리 신봉.

탄압

초기: 정부는 천주교가 유포되는 것에 대하여 내버려 두면 저절로 사라질 것으로 생각. 김범우의 집에서 예배를 보다가 의금부(추조)에 적발체포된 사건으로 금지령을 내리고 천주교 서적 수입 을 금지.

사옥명

시기

내 용

처 형 자

3대 사옥

신해

박해

정조

1791

진산사건, 윤지충의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하다 발각

윤지충(최초의 순교자), 권상연

정조 때에 재상 체제공(시파)이 천주교 신자가 남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침.

신유

박해

순조

1801

집권 노론 벽파가 남인 시파를 축출하고자 탄압

이승훈, 이가환, 권철신, 주준모, 정약용(강진 유배), 황사영백서사건. 실학이 퇴조.

기해

박해

헌종

1839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권 쟁탈전. 상재벽서 남김.

앙베르, 모당, 샤스탕, 조신철

오가작통법척사윤음 발표

병인박해

고종

1866

대원군은 9명의 프랑스 신부 학살, 병인양요의 원인이 됨

대왕대비교령으로 천주교 금압령 이후 3년간 8천명 처형(최대의 박해)

천주교 박해

 


동학의 성립과 전파(1860)

1860년 최제우가 계시를 받아 동악 창시.

전통적인 민족신앙을 바탕으로 유천주교 교리를 흡수. 철학적으로 주기론, 종교적으로 샤머 니즘과 도교에 가까움. 인내천 사상과 후천개벽을 내세우고 조선 왕조를 부정. 민족주의 사상을 지님.

삼남지방에 널리 보급되었으나 최제우가 처형당함(1864). 2대 교주인 최시형의 노력으로 충청도 보 은을 중심으로 성장. 최시형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정리.

고부 군수 조병갑이 농민을 괴롭히자 전봉준은 농민을 중심으로 동학교도를 이끌어 농민전쟁을 치름. 그러나 전봉준, 최시형 등이 잡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민란의 발생(농민의 항쟁)

수탈하여 이탈한 농민은 유리걸식, 도적떼에 가담하여 화전민, 간도나 연해주로 이주, 품팔이. 유랑을 면하면 압박과 수탈.

계와 두레가 성행하기도 하고 소청벽서괘서로 사회 모순에 항거.

 


홍경래의 난(평안도 농민전쟁)


홍경래의 난(1811)

원인: 세도정치와 서북 지방민의 차별

경과: 몰락 양반인 홍경래가 평안도 가산에서 중소지주 출신인 하층양반과 중소상인을 중심으로 유랑농민과 합세하여 대규모의 민중봉기 일으킴. 청천강 이북 지역 등 8개 군을 장악.

결과: 정주성에서 박기풍, 이효원, 유효원이 이끄는 관군 진압정부군에 의하여 5개월 만에 진압.

의의: 지방세력에 의해 추진된 민란의 선구적 역할. 실패 이후 사회불안은 심화.


진주민란(=임술민란=백건당의 난, 철종 131862)

원인: 조선 후기 수취제도의 모순과 농민 수탈이 배경. 경상도 우병마사 백낙신의 착취와 홍경원의 탐학.

경과: 유계춘 등이 농민을 규합하여 민란을 일으킴.

결과: 정부는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탐관오리 백낙신, 홍병원을 파직하고 주동자를 처벌.

영향: 민란의 전국적 확산을 초래.


개령민란(철종 131863)

발단: 현민 김규진이 현감을 규탄하는 읍폐의 통문을 배포하자 현감이 이를 체포, 구속.

결과: 현민 수천명이 작당하여 현감을 감금하고 간리를 제거하려 난을 일으켰으나 군에게 진압.


정부의 대응

암행어사 파견, 안핵사선무사 보냈으나 효과가 없었다.

삼정 운영 개선을 위한 삼정이정청(1862. 8.)을 설치하였으나 실패.

민란의 의의: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사회의 모순을 자율적, 적극적으로 변혁시키려 하였다는 점에 서 조선 봉건사회 붕괴의 요인.

동요요인

1. 납속책: 선조 때(15C)에 재정궁핍과 구호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재정정책의 하나.

2. 공명첩: 숙종(17C) 이후 시행하던 진휼책. 부유층에게 관직(명예직)을 팔아 돈을 얻던 증서

3. 농업 발달 농민분화, 상공업 발달 계층분화

4. 공노비 혁파

신분변화

1. 양반의 몰락: 세도정치로 잔반 증가

2. 중인의 지위향상: 규장각 검서관, 서민문학가, 동학지도자

노비감소

1. 양란 중 노비문서 소각 도망, 유망, 모속(신분속임)

2. 납속, 속오군, 군공에 의해 양인신분 취득

3. 노비종모법이 현종(1669)때 마련, 영조(1731)때 법제화

4. 영조(노비공감법), 고정(1886) 노비세습 폐지

 

 

국내에서의 민족운동


민족교육의 추진


문맹퇴치운동

31운동 이전: 기독교 계통의 주일학교와 YMCA 중심의 한글교육.

31운동 이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어학회에서 전개.

문자 보급 운동: 조선일보는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표어 아래 운동 시작(1929). 당시 조선일보와 귀향 학생들에 의하여 추진된 이 운동은 농촌 계몽과 문맹 퇴치에 큰 성과.

브나로드 운동: 1,600만 명이 문맹자라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우리글을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미신 타파, 구습 제거, 근검 절약 등 생활 개선을 꾀하려고 하였다(1932).

일제의 탄압: 1935년에 조선 총독부는 문맹 퇴치 운동을 금지하게 하였다.


민립대학 설립운동(1923)

1910년 윤치호, 남궁억 등이 민립대학 설치를 요구.

1920년 이상재, 장덕수 등이 조선교육협회를 조직하여 민간대학 설치를 결의. 1923년 민립대학 기 성회를 조직하여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좌절. 이후로도 연희 전문 학교, 보성 전문 학교, 이화 학당 등을 대학으로 승격시키려고 하였으나 일제는 1924년 경성제대를 설치하여 저지.


과학 대중화 운동

배경: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과학 교육 부재, 경성제대 제외하고는 한국인을 위한 교육 기관이 부 족, 31운동 이후 과학 진흥의 필요성 인식, 열강의 과학 기술 진흥,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

전개: 동아일보를 비롯한 민족지와 잡지 등에서 과학의 대중화 주장. 발명 학회과학 문명 보급 회(1924)가 과학의 중요성을 계몽하면서 민립 대학과 연구 기관의 설립, 외국 유학 기금 적립을 추진. 발명 학회는 과학조선을 창간하고, ‘과학의 날을 정하여 전국적인 과학 행사를 열었다. 과 학 지식 보급회는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대중화를 주장하였으며, 과학 도서의 간행, 강연회, 전시 회 등의 개최에 노력. 이들 단체는 주요 도시에 지부를 설치하고 조직을 확대해 나갔으나, 30년대 말 일제의 강요로 일제가 만든 과학 단체에 흡수.



경제투쟁의 전개


민족기업의 육성(일제의 규제로 소규모 공장의 건설에서 두드러졌다)

민족 기업의 성격: 순수한 한국인만으로 운영,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제품 생산.

공장 규모의 발전: 1920년대까지는 소상인수공업자들의 소규모 생산, 20년대에는 노동자 수가 200인이 넘는 공장도 출현.

경공업 관련 기업의 설립: 서울, 평양, 대구, 부산 등 대도시에서 순수 민족 자본의 직포 공장, 메 리야스 공장, 고무신 공장 등 설립.

기업의 유형

지추 출신: 호남지방 지주들의 경성방직(1919), 영남지방 지주들의 무역회사인 백산상회.

서민 출신: 평양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메리야스고무공업은 중요한 민족기업 분야.

물산 장려 운동의 전개

민족계 은행: 경남합동은행, 삼남은행, 경일은행, 호남은행.

1930년대 민족 기업: 30년대에 들어와 영세한 민족 기업은 일본의 독점 자본과의 경쟁에서 점차 밀려났고, 전시 체제하에서는 총독부의 물자 통제로 큰 타격을 받았다. 총독부는 기업 정비령을 통하여 민족 기업을 억압하여 강제 청산하거나 일본 공장으로 흡수 합병시켰다.


물산장려운동

자작회: 청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각자 저축하고 필수품은 가능한 만들어 사용하자는 운동.

물산장려회(1922): 조만식, 김동원 등을 중심으로 평양에서 조직.

조선물산장려회(1923): 물산장려회의 활동이 호응을 얻자 종교계, 교육계 인사 등을 규합하여 서 울에서 조직되어 1940년대까지 계속. 민족 자본의 육성을 위하여 소비 절약이 필요하다고 보고, 국산품 애용, 근건 저축, 생활 개선, 금주금연 운동 등의 실천 요강을 내걸고 활동하였다. 민족 주의자들이 주도하였고 사회주의자들은 불참.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추진되었으나, 일제의 탄압으 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소작쟁의


1920년대: 31운동 이후에 시작하여 30년 전후에 최고조. 1920년대 전반기에는 소작인 조합이 중 심이 되었고 20년대 후반기에는 농민 조합이 소작 쟁의를 주도. 농민운동은 주로 소작쟁의로 전 개, 소작권 이동 문제, 소작료 인하 문제(관계쟁의), 지세와 공과금 부담 문제, 횡포한 마름 처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각지에서 소작인회, 농민조합 등을 결성. 공산주의자의 지도로 조직된 농민조합은 전국적으로 80여개나 되었는데, 함경도 지방의 농민조합이 가장 격렬. 각지에 결성된 단체는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농총동맹, 조선농민총동맹(1927. 9)등과 결합하여 대항. 1920년대의 대표적인 소작 쟁의로는 1924년 암태도 소작쟁의로 악질 지주와 일본 경찰에 맞서서 소작료를 낮 추었고, 19261923년 악질 일본인 지주를 상대로 한 요천 소작쟁의 등이 있다.


1930년대: 농민의 투쟁은 지하 농민 조합을 통하여 전개되었고, 19341937년의 명천농민투쟁이 가장 유명하다. 1930년대부터 조직된 혁명적(적색)농민조합운동은 적색 농민조합의 지도하에 식민 지 지배에 정면 대항하는 항일 농민 폭동이다. 함남 정평과 함북 명천지역이 가장 대표적이다. 1930 년대 농민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혁명적 농민운동조합이 80여개 군도에서 활발하게 전개 되었다는 점이다. 주로 소작관계의 개선, 농촌개량, 농업정책 반대 등으로 그 이전의 합법적 투쟁 과는 다르다. 30년대 이후의 소작 쟁의는 항일 운동의 성격을 띠며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대 상의 범위, 규모, 기간이 확대되고 장기화되어갔으며 형태도 대중적 봉기 형태로 옮아가고 있었 다. 특히 동양척식 주식회사 농장의 소작 쟁의는 항일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노동쟁의


1920년대: 노동자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하여 조선노동공제회(1920. 4), 조선노동총동맹(1927. 9) 의 전국적 단체와 평양노동연맹, 경성노동연맹, 진주노동연맹회, 원산노동연합회, 인천노동연맹, 부산노동연맹 등의 지역 단체를 결성하여 투쟁하였다. 1924년 결성한 조선노농총동맹은 전국 260 개 노동농민운동단체 53천명의 회원을 포괄하였다. 1920년대 대표적인 노동자 투쟁으로는 부 산 부두 노동자 5000여인 파업, 1923년 평양 양말공장 노동자 쟁의 등이 있다.


1920년대 후반: 서울, 인천, 목포 등의 대도시에 한정되던 노동 쟁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영흥 노동자 총파업 등 대중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1928년의 원산 총파업은 최대의 투쟁이었다. 19289월 문평 석유 공장의 감독 고다마가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하여 시작된 총파업은, 원산 노련위원장 김태영이 동요하여 실패하였다. 원산 총파업은 노동 운동이 항일적 성격을 띤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1930년대: 훨씬 조직적정치적 성격을 띠었으며,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동맹파업도 빈번하였다.

운동

내용

단체 및 활동

1920년대

1930년대

농민 운동

(소작 쟁의)

소작료 인하, 소작권 이전 반대

생존권 투쟁의 성격

 

항일 운동의 성격

사회주의계와 연계

 

각지의 농민 조합, 소작인 조합

암태도 소작 쟁의(1924)

조선 농민 총동맹(1927)

노동 운동

(노동 쟁의)

임금 인상, 근로 조건 개선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 운동

노동 운동이 항일 투쟁의 성격 으로 전환

규모와 쟁의 횟수의 증가

조선 노동 총동맹

적색 노동 조합

원산 노동자 총파업(1928)

 


사회운동


사회주의 사상의 대두

수용: 레닌이 약소 민족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이후, 1920년대에 들어와 사회주의 사상을 처음 받아들인 사람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독립 운동가들로 민족 독립과 함 께 계급 해방을 추구하였다.

초기의 사회주의 운동: 소수의 지식인이나 청년, 학생이 중심이었고 노동자, 농민의 참여는 오히 려 적었다.

사회주의 운동의 확대: 국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노동농민청년학 생여성 운동과 형평 운동등이 전개되기 시작.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 결과

내부의 갈등: 사회주의 운동에는 그 노선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계열이 있어 마찰과 갈등이 심화.

민족주의 운동과 대립

민족 유일당 운동의 대두


사회주의 세력

형성배경: 상해 고려공산당(1920), 연해주의 공산당, 도쿄의 무정부주의 운동, 조선공산당이 대두. 민족주의계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다, 1925년 치안유지법 공포 이후 민족 유일당 운동이 전개.

 

단체

중심인물

활동내용

한인사회당

(1918. 2)

이동휘

볼셰비키 찬성 정치세력 최초의 공산단체. 전로한족회 주도세력은 불참.

한인공산당

(1920. 8)

이동휘, 여운형, 김립, 안병찬

한인사회당 주도세력이 대한국민의회와의 관계를 끊고 상해에 건너가 여운형 등과 함께 조직.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1921. 5)

한명세, 이훈, 최고려

러시아에 귀화한 교포를 중심으로 한 단체로 사회주의 혁명을 우선시.

상해파 고려공산당

(1921. 5)

이동휘, 김립

식민지화과정에서 망명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민족회방을 우선 과제로 삼음.


공산당의 결성과 그 활동 

1

조선공산당

1925. 4 김재봉

김재봉을 책임비서로 화요회와 북풍회가 참여. 산하에 고려공산청년동맹을 두었으며 1925. 11 신의주 사건(청년회원이 변호사 구타)으로 파괴. 기관지 조선지광

2

조선공산당

1925. 12 강달영

강달영을 책임비서로 하여 다시 조직. 권오설 책임비서인 고려공산청년회도 재조직. 국민당 시도도 하였으나 610만세운동으로 탄로해체.

3

조선공산당

1926. 9 김철수, 김준연,

한위건, 안광천

ML(통일공산당) 김철수를 파견해 승인을 받고, 안광천이 책임비서일 때 신간회 결성에 적극 참가하였으나 조직이 탄로나 200여명이 검거되어 1928. 2월 해체. 기관지 대중신문, 이론투쟁, 현단계.

4

조선공산당

1928. 3. 차금봉

해외활동을 주력하다가 7월에 해체. 기관지 조선지광, 혁명, 불꽃등이 있다.

코민테른은 4차 조공해체 후 192812월 테제를 발표. 조공은 해방 후 19459월 박헌영이 재건.


공산당의 재건과 노동자 농민운동: 1930년대 이후 지하운동을 통해서 재건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지역별로 고립분산적이어서 통일성이 없었다. 박헌영이 1939년 서울에서 경성콤그룹을 조직하 였으나 1941년 해체된다. 이들은 운동방향을 공산주의 혁명운동으로 이끌어 갔다. 이같은 운동은 민족역량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내 공산주의자들은 해방 후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으며, 중도좌파정당을 흡수하여 남로당(1946. 11)으로 개편되었다.





610만세 운동(1926)

배경: 1926426일 순종이 승하하자 순종의 인산일을 기하여 제2차 조공의 간부였던 권오설 은 운동을 계획하고 민족주의 세력과 제휴.

경과결과: 우연히 삐라가 발견되어 계획의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검거되었으나, 조직을 보존한 학생들은 밀고 나갔다. 이 운동은 민족 유일당 운동과 신간회 결성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광주학생운동(1929)

원인: 19291030일 광주-나주간의 한일 통학생이 충돌하여, 113일 대규모 충돌로 비화.

경과: 학생들은 학생 투쟁 지도 본부를 설치하고 11122차 시위 전개. 서울 학생들은 12914일에 운동을 전개.

결과: 193031일에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려 하였으나 일경의 사전 검거로 실패.

의의: 5개월 동안 전국의 각급 학교 학생 54,000명이 참여한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 최대의 민 족적 항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성진회(광주지역 비밀결사)와 신간회가 지원.

탄압정치 반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관료교관 배격 식민지교육 철폐 치안유지법 반대



신간회(1927-1931)

배경

1920년대 중반 이후 민족 개량주의가 등자하고 민족주의 계열이 비타협적 민족주의와 민족 개량주의로 분화

민족 개량주의자들은 참정권 운동’, ‘자치운동을 제창하였으며, 

일제가 허용 하는 범위내에서의 정치 운동, 교육과 산업의 진흥을 제시.

결성: 192611월에 발표된 정우회 선언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전환을 촉구한 글로서 민 족 유일당 운동에서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 19271민족 단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구호 아래 조직 계획이 발표되고 215일 창립 대회가 열렸다. 이상재가 회장, 권동진이 부회장으로 선출되고, 정치적경제적 각성 촉구 단결 공고, 기회주의 부인 의 강령이 채택되었다. 19275월에는 근우회(김활란)가 창립되어 신간회 산하 단체로 가입하였다. 신간회 중앙 본부는 민중의 권익을 옹호하며 일제와 투쟁하였다.

해소: 1929년에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진상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계획한 일이 발각되어 다수 의 지도 인사가 검거. 이후 중안 간부가 새로 구성되었으나 좌우 노선의 갈등으로 내분이 발생하 였다. 또한 1930년 이후 중앙이 보인 타협적 태도나 방관적 자세는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코민테 른의 12월 테제(1928) 이후 쿠시넨 의견서(1932. 5)는 민족연합전선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신 간회는 19315월 대회를 열고 해소.

신간회의 결의문

 

민중대회 개최 시위운동 전개 여론 환기

 

 

 

 

신간회의 주장 내용

 

한국어 교수

일본인의 한국 이민 반대

한국인 특별취제법 철폐

동양척식주식회사 폐지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한국인 착취기관 철폐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

과학과 사상연구의 자유보장

소년부녀자 노동운동

노동권 확립

신간회의 결의문

 

민중대회 개최 시위운동 전개 여론 환기

 

 

 

 

신간회의 주장 내용

 

한국어 교수

일본인의 한국 이민 반대

한국인 특별취제법 철폐

동양척식주식회사 폐지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한국인 착취기관 철폐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

과학과 사상연구의 자유보장

소년부녀자 노동운동

노동권 확립

 

  

배경: 31 운동을 비록한 국내외 항일 독립 운동에서 여성들의 참여가 그들의 의식을 계발.

활동: 문맹 퇴치, 구습 타파, 생활 개선의 실현을 위한 여성 교육 계몽 운동.

여성 단체의 조직

1920년대 초(민족주의의 영향 아래 계몽 차원)조선 여자 교육회조선 여자 청년회(계몽)

│ ├조선 여자 기독교 청년회

│ └지방: 야학, 강연회 등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되는 모습으로 변화

결과: 1920년대 후반에는 여성 직업 단체들이 조직되어 보다 많은 참여가 이루어짐.



여성 운동과 학생 운동

전개: 천도교 청년회가 소년부를 설치함으로써 본격화, 이후 천도교 소년회로 독립하여 어린이날 제정.

발전: 전국적 조직체인 조선 소년 연합회(1927)가 결성. 방정환과 조철호 등이 소년 운동 전개.

분열: 지도자들 사이의 사상과 이념 대립으로 분열.

중단: 일 전쟁 발발 후, 일제가 한국의 청소년 운동을 일체 금지시킴으로써 중단.

목표: 1920년대 초에 전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00개가 넘었으며, 표면적으로는 품성 도야, 지식 계발, 체육 장려를 내세웠고, 실제로는 민족의 생활과 역량 향상을 목적으로 하였다.

활동: 학교야학, 금주회, 저축 조합 등.

조선 청년 총동맹(1924):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의 분열을 수습하기 위하여 조직.

전개 과정: 대개는 동맹 휴학의 형태로 전개. 초기에는 시설 개선이나 일인 교원 배척 등의 요구가 많 았고, 후기에는 식민지 노예 교육 철폐, 조선 역사의 교육, 교내 조선어 사용, 학생회 자치, 언론집회 의 자유 등의 요구가 대두.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배경: 백정들은 갑오개혁에 의해 법적으로는 해방되었으나 사회적으로 계속 차별받고 있었다.

전개: 진주에서 이학찬을 중심으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 운동 전개.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령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고 칭호를 폐지하여 우리도 참다 운 인간이 되는 것을 기하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형평 대회 취지문

성격: 신분 해방 운동을 넘어서 민족 해방 운동의 성격까지 내포.

와해: 1920년대 말 내부적으로 이념적 갈등을 겪으면서 급진파와 온건파 사이에 대립이 격화. 또한 일 제의 탄압 강화로 더욱 약화.

성격의 변화: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회원의 순수한 경제적 이익 향상 운동으로 변화.




애국지사들의 활약


장인환전명운(1908): 스티븐스 사살.

안중근(1909)

이재명(1909): 이완용에게 부상을 입혔다.

강우규(1919):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저격.

김익상(19211922): 1921년 조선 총독부에 폭탄 투척, 1922년 상해에서 다나카 대장 저격.

김상옥(1923): 의열단원으로 종로 경찰서에 폭탄 투척.

박열(1923): 도쿄에서 일본 천황 암살계획을 세우다 체포.

김지섭(1924): 의열단원으로 일본 궁궐에 폭탄 투척.

나석주(1926): 의열단원으로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 투척.

이봉창(1932): 애국단원으로 일본 천황 저격 실패. 이 사건을 계기로 상하이 사변 발발.

윤봉길(1932): 애국단원으로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 천장절및 전승 축하식전에 폭탄을 투척하여 시 라카와 등을 살해. 이후 중국의 장 제스는 임점에 대한 지원 강화.

그 외 상하이에서 주중 일본 공사를 사살하려 했던 백정기, 친일파 민원식을 사살한 양근환 등이 대표적인 애국 지사.


참고: 의열단과 한인 애국단

의열단(1919): 김원봉이 지린에서 조직.

한인 애국단(1926): 김구를 중심으로 상하이에서 조직,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4. 일제의 민족성 말살정책과 민족 문화의 수호


민족말살정책


병참기지화 정책

배경: 1920년대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공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경제 블록을 형성하여 한반도 의 노동력과 자원의 수탈이 가중.

투자시장화: 1920년대 회사령 철폐로 회사설립을 신고주의로 전환. 조선 수력전기회사가 설립되어 (1926) 부전강의 수력 개발, 흥남 질소비료공장 설립(1927).

만주 사변(1931) 이후: 중화학공업육성정책, 남면북양정책, 농촌진흥운동(농민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미봉책, 19321940), 군수공업 촉진- 재벌이 중심이 되어 군수공업과 광업개발(금광 석탄)

중일전쟁(1937) 이후: 민족말살정책.


침략전쟁의 확대

만주사변(1931. 9. 18): 일제는 심양 교외 유조구의 만주 철도를 폭파하여 만주를 점령.

상해사변(1932. 1): 유럽의 눈을 상해로 돌린 다음 만주국 세움(1932. 3. 1). 규탄을 받자 국제연맹 탈퇴(1933)

중일전쟁(1937. 7): 노구교 사건을 계기로 발발하여, 중국 침략을 시작.

태평양 전쟁(1942. 12. 7): 이른바 대동아 전쟁’.


민족말살정책: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시작.

육군특별지원병령

1938. 2

중일전쟁 직후의 조선청년 동원(18,000명 동원)

국가총동원법

1938. 2

일본 내 동법의 조선내 적용 시작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

1938. 7

지방연맹직장연맹 조직

국민징용령

1939

1939년부터 모집, 1940년부터 알선 형식으로 133146만 징집

공출제도

1939

식량 영단을 설치하고 식량 강제 수탈

학도병제

1943

조선인 전문학교대학교 학생을 징집하여 총 4,500명 동원

징병제

1944

종전까지 약 20여만 징병

여자 정신대근무령

1944. 8

1240세 여성 수십만을 강제 동원, 이 중 57만이 위안부로 성적 노리개 역할.

기타

근로동원으로 어린 국민학생과 중학생들을 군사시설 공사에 동원, ‘근 로보국대로 여성들을 토목공사에 동원, ‘애국부인회라는 어용단체 설립.

산미 증식 계획 재개: 개인에게까지 할당

경제생활 규제: 식량 배급, 미곡 공출, 가축 수탈

금속 그릇의 공출: 농구, 식기, 제기, 교회사원의 종까지 징발.

패전 후에는 류큐나 중국 하이난 섬 등지에서 한국인을 대량 학살.


국가 총동원체제로 전환

신사참배 강요

1936. 8

11신사 원칙하에 궁성요배 강요

황국신민화정책

1938

내선일체 구호 하에 황국신민 서사 암기

한국어 교육금지

1938

일본어 사용 강요

한국사 교육금지

1938

일본 역사에 편입

창씨개명

1939. 11

조선민사령 에정, 전국민 4/5 개명

동아일보, 조선일보 폐간

1940. 8

문장, 인문평론등 한글잡지도 폐간

조선어학회 사건

1942

강제로 해산하고 관계자 투옥학살

사상범 통제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1936), 조선 정보위원회(1937), 사상보국연맹(1938), 조 선사상범 예비구금령(1941)


민족문화 말살


 

민족문화의 수호


일제의 한국문화 연구

고적조사위원회(1910): 고적조사도보(15) 편찬.

법전조사국: 한국의 관습풍속을 연구하다 31운동 이후 중추원에 이관.

조선사편수회: 총독부 내의 기관으로 조선사(35), 조선사료총간(21), 조선사료집진(3) 등 간행.

청구학회(1930): 한국만주 등 극동문화 연구 단체. 학술지 청구학총


종교 탄압

기독교: 안악 사건(1910), 105인 사건(1912)이 날조되었고, 31운동 이후에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 이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고 하여 체포투옥되었다. 1930년대 후반 이후에는 신사 참배가 강요되 었으며, 이를 반대하는 종교 계통의 학교는 폐쇄되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투옥되었다.

1. 안악 사건(1910): 안중군의 동생 안명근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자 국내에 들어와 자금을 모금하다가 검거 된 것을 기화로 황해도 지방의 교육종교계의 관련 인사 160명을 총독 사살 계획에 연루시켜 체포.

2. 105인 사건(1912):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구실로 신민회 회원을 체포. 신민회 해산의 계기가 되었다.

불교: 사찰령, 승려법 제정으로 탄압.

천도교대종교: 민족 종교는 일제의 간섭이 특히 심하였다.


한국사의 왜곡: 단군 조선의 부정, 식민 사관의 전개.


민족문화의 수호운동


조선학 운동(1934): 문일평안재홍정인보 등이 1934여유당전서의 간행을 계기로 전개. 이 들 외에 백남운 등이 주축. 과거 민족주의 역사학이 국수적낭만적이었음을 비판하고 민족과 민 중을 다같이 중요시하면서 우리문화의 고유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확보.


유물사관 도입(19301940)

특징: 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세계사적 보편성 위에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식민 사학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정신 사관도 비판.

대표자: 연합성 신민주주의를 제창한 온건 좌익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1933), 조선봉건사회 경제사(1937) 저술.

이 외에도 이청원 조선역사독본, 박극채 이조사회경제사, 김광진, 진석담 등이 있다.


진단학회(1934): 청구 학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 어용 학자들의 왜곡된 한국사 연구에 반발하여 순 수학문으로 역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결집하여 진단학보발간. 이병도(실증 사학의 대표자, 한국고대사연구), 이상백, 김상기, 이윤재, 이희승, 송석하, 손진태, 신석호 등 참여. 실증사학 도입.


조선어학회(1941): 한글날과 맞춤법 통일안 제정, 한글발간.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준비하다 이 중화, 장지영, 최현배 이희승 등 수십명이 투옥되고 이윤재한증은 옥사(조선어학회 사건, 1942)


신민족주의 사학

특징: 194050년대에 주로 연구되었으며, 민족주의 사학을 계승하여 자주적 민족 국가를 수립하 고, 민족적 자유와 평등을 실현한다는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재평가하고 민족사를 체계화하고 자 하였다.

학자: 손진태는 신민족주의를 통한 민족 단결과 평등친화자주독립을 주장하였으며, 조선민족 사개론」․「조선민족설화의 연구」․「국사대요등을 저술. 안재홍 조선상고사감, 홍이섭 조선과 학사



문예활동


문학: 일제 말기는 한국 문학의 암흑기였고, 이광수 일장기가 날리는 곳이 내 자손의 일터최남 선 조선인의 일본화가 조선 문화의 당면 과제노천명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서정주 오장 마쓰이 히데오 송가등이 친일 활동을 하였다.


음악: 국내(홍난파-봉선화, 현제명), 국외(안익태-애국가, 코리아 환상곡), 동요(홍난파-고향의 봄, 윤극영-반달)


미술: 동양화(안중식-한국의 전통회화 전승발전), 서양화(고희동-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자화상, 이중섭-부부), 기타(전형필-문화재 수집보호, 고유섭-한국탑파연구」․「조선미술문화사 총론). 동양 화가인 김은호 등은 친일.


연극

31운동 이전: 신파극의 유행

31운동 이후: 극예술협회(1921), 극예술연구회(1931, 연극공연을 계몽수단으로 간주), 토월회 (19231926, 박승희김기진이 조직한 근대연극회, 민중각성 촉구)

중일전쟁 이후: 일제 탄압으로 오락지향성 돌변, 일제찬양연극 공연, 연극공연에 일본어 사용.

일제 말기: 일본어를 쓰지 않는 연극은 공연히 허가되지 않아 연극은 질식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영화: 나운규의 아리랑(1926). 이후 1940년 일제의 조선 영화령 발표로 탄압.

일제 말에 이광수, 최남선 등이 조직한 친일적 문인조직. 조선음악가협회, 조선연극협회도 같은 성격.


아동문화: 방정환이 어린이를 창간(1922), 어린이날 제정, 조철호는 소년군(소년단) 창설(19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