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리학의 경직성


조선후기 성리학의 경향


조선후기 성리학의 경향: 비판적 견해나 주장을 사문난적으로 배척하는 교조화 경향.


성리학의 흐름

16세기 중엽부터의 논쟁에서 형성된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분열.

17세기 이후의 남인학풍: 서경덕조식 문인의 북인이 인조반정으로 몰락하면서 이황의 남인에 합 류. 이에 남인학풍이 지역에 따라 다양히 전개.

서인 학풍: 인조반정 이후 의리 명분론을 강화. 17세기 말에 노론소론으로 분열. 송시열의 저술 은 서인의 주장을 뒷받침.

18세기 노론 내 송시열 제자들의 호락논쟁: 호론(충청도)는 인물성이론, 낙론(서울경기)은 인물성동론.

호론은 위정척사 사상에 영향, 낙론은 북학사상에 영향.

영남 남인과 노론 사이에 이기론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


성리학에 대한 비판

경향: 17세기 후반부터 주자 성리학을 상대화하고 6경과 제자백가 등에서 사상적 기반을 찾으려 하였다.

윤휴(남인): 서경덕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교 경전에 주자와 다른 독자적인 해석을 하다 서인에 의 해 사문난적으로 몰림.

박세당(소론): 양명학과 노장사상 영향을 받아 사변록을 통해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다 서인에 의 해 사문난적으로 몰림.


기타: 정약용은 주자의 해석에 구애되지 않고, 고주(古註)를 참작하여 공자맹자의 본뜻을 찾으려고 노력.

 


양명학의 전래


전래: 중종 때 전래


특징: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근간으로 한, 교조화된 성리학을 비판.


연구: 경기지방 중심의 재야 소론계열 학자와 불우 종친 출신 학자들이 연구. 18세기 초 정제두에 의해 체계화.

강화학파 형성: 정제두가 형성. 국어학, 역사학, 서화 등에서 새로 운 경지 개척. 실학자들과도 서로 영향.

정제두의 활동: 존언, 만물일체설저술. 그는 일반민을 도덕 실천의 주체로 상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양반 신분제의 폐지 를 주장.


영향: 박은식(유교구신론)정인보(양명학연론) 등의 국학자가 양명학 을 계승하여 민족운동 전개.

∙「불씨잡변(정도전) - 불교

∙「사변록(박세당) - 성리학

∙「천학고(안정복) - 천주교

∙「전습록변(이황) - 양명학

∙「서학변(신후담)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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