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의 항쟁



을미의병의 활동(1895)

단발령이 직접적 계기, 을미사변으로 처음 거병. 고종과 명성황후 척족의 지원도 있었다.

의병장: 처음 문석봉(보은), 유인석(제천), 이소응(춘천), 박준영(이천여주), 민용호(강릉), 김복한(홍주), 곽종석(산청), 이강년(문경), 기우만(장성)

해산: 아관파천, 단발령 철회, 국왕의 해산권고조칙에 따라 해산(많은 부대가 근왕주의적 의식이 있었음).

 


을사조약과 민족의 저항

민족의 저항

상소 운동: 조병세, 이상설, 안병찬 등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의 처벌과 조약의 폐기를 황제 에게 요구.

항일 순국: 민영환(대국민 유서), 좌의정 조병세, 전대사헌인 송병선, 학부 주사 이상철 등이 자결.

5적 암살단

항일 언론: 시일야방성대곡(황성신문), 을사조약불인친서(대한매일신보).

외교적 노력: 워싱턴 특사 헐버트와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 파견.

을사 조약 후의 민족 운동의 방향: 애국 계몽 운동과 의병의 항전.

 


을사의병과 병오의병


을사의병

원인: 을사조약 체결.

의병장과 의병대: 민종식(충청도 정주), 원용팔(강원도 원주), 김순현신돌석정용기(경상도), 최익 현기우만고상순(전라도 태인) 등 농민을 중심으로 노동자, 지식인, 학생, 활빈당 세력이 참여.

의병의 활동

민종식 부대: 조약 체결 뒤에 사직하고 1000여 명 규모로 1906519일 충청도 서해안 지역의 홍주성(홍성)을 장악.

신돌석 부대: 1906년 영해에서 봉기한 3천여명까지 달한 의병부대로 경상도 일대에 명성을 떨침.


병오의병(1906 1906. 6): 충청강원경상전라경기 등 60여개 군에서 활동. 1906 후반기1907년 전반기에는 서울 주변에까지 활동.

 


정미의병(1907)


군대해산

19078월에 일제는 군대 정리라는 명목으로 군대 해산. 박승환의 자결은 시가전을 강력히 전개 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주 진위대(민긍호), 강화 분견대(유명규) 등 지방 군인들도 봉기.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의 양상: 전투력 강화, 의병 투쟁의 전국화, 평민군인 출신의 의병장 대두.

의병장: (평민)군인 출신으로 민긍호김덕제지홍윤연기우박준성손재주현덕호, 평민 출 신으로 신돌석홍범도김수민안계홍 등.


서울진공작전(1907 1908 )

관동 의병장 이인영은 각지의 의병 부대를 양주에 1만여 명 집결.

의병 부대는 이인영을 13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삼아 13도 창의군을 결성(1907. 12)하고 다 음해 1월부터 서울 진공 작전 개시.

의병 부대는 서울의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통문을 돌리고, 서울 총공격에 앞서 허위의 300명 선발대가 먼저 서울에 접근케 하였음.

선발대는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후퇴하고, 부친상을 당한 이인영은 허위에게 맡기고 귀향하여 작전 실패. 좌절 이후 의병활동은 평민의병장 의병 부대의 주도로 유격 전술을 실시.


국내 진공 작전: 홍범도와 이범윤이 지휘하는 간도와 연해주 일대의 의병 부대가 국내 진공 작전을 꾀 하였다.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

의병 활동이 거세지자 일제는 조선 정부군을 배후에서 지휘하던 방식을 직접 진압으로 바꿈.

삼광정책: 민긍호 전사, 이인영이강년 사형, 허위 옥사. 1909. 910월의 초토화 작전은 의병의 최대 중심지였던 전라도 지방을 주요 대상으로 하였음.

1913년에 황해도의 헌병 파견소를 공격하였던 마지막 의병장 채응언이 1915년에 체포되기까지 활 동은 면면히 이어졌으나 남한 대토벌 이후 의병은 만주 등지로 활동을 옮김.

 


항일 의병 전쟁의 한계성

의병의 무력적 열세

내적 요인: 의병을 주도한 양반 유생층이 전통적 지배 질서의 유지를 고집하였으므로 대다수 농민 의 병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외적 요인: 을사조약이 강요된 후에는 외교권이 상실되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국제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애국계몽운동


(을사조약 전후의 항일의병 전개 즈음의)애국계몽운동의 성격

변법개화사상가: 서양의 자유평등민권사상을 옹호, 근대시민국가 수립을 목표. 일본과 협력하 는 길을 찾다가 침략이 가속화될수록 친일파로 전락. 일진회가 대표적 예임.

혁신적 유학자 출신의 지식인들: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 계열의 인사들. 1910년 이후에는 중국 으로 망명. 신민회가 대표적 단체.


경제자립운동

1880년대의 근대적 상업자본

대동상회, 장통회사가 출현하였다. 인삼의 재배와 판매로 자본을 축적한 개성 상인들은 종삼 회사 를 설립하였으며, 군산에서는 미곡 무역을 담당하는 호상 상회가 설립되었다. 갑오개혁 이전에는 회사 수가 전국 각지에 40여 개에 달하였다.

성격: 초기에는 동업자 조합의 성격을 띠었고, 이후 근대적 형태의 주식회사도 설립되었다.

1890년 이후 근대적 상업자본

배경: 정부의 상공업 진흥 정책에 맞추어 내국인의 기업 활동이 활발.

일본 자본가들의 진출: 대규모의 운수 회사를 설립하고 해상과 육상의 운수업을 지배.

민족 자본의 토대 마련: 이운사(1892), 대한협동우선회사(1900), 인천윤선주식회사(1900), 통운사 (1901), 부하철도회사(1898), 대한철도회사(1899), 해서철광회사(1900), 수안금광회사(1903), 대한직 조공장(1897), 김창덕 직조공장(1902).

근대적 산업 자본의 성장

유기 공업: 개항 이전에 이미 발달했던 유기 공업과 야철 공업을 계승하여 서울에 조선 유기 상 회라는 합자 회사가 설립.

면직물 공업: 개항 이전에 농가 부업 단계에 머물러 있던 면직물의 생산은 외국산 면직물의 수입 으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대한 직조 공장, 종로 직조사 등의 직조 공장이 설립되어 발동기를 이 용한 생산 활동을 전개.

기타: 이를 전후하여 연초 공장, 사기 공장들도 설립.

금융부문: 1890년 이래 조선은행(관료 자본 중심의 민간 은행, 심상훈), 한일은행, 제국은행(민병한) 등이 창립 1년도 못되어 폐쇄.

한성은행(1897): 김종한이 설립, 해방 이후 조흥은행으로 발전, 현재 신한은행.

천일은행(1899): 민병석심상훈 등이 설립, 현재 우리은행.

결과: 이들 은행은 1905년에 일제가 실시한 화폐 정리 사업을 계기로 몰락하거나 자주성을 잃고 변질되기도 하여 한국의 금융은 사실상 일제에 장악.

1900년대 은행경영: 한국인 은행으로 농공은행보통은행, 일본인 은행으로 제일은행한국은행팔십은행백삼십은행주방은행밀양은행일본흥업은행.


국채보상운동(1907): 대구에서 김광재서상돈이 국채보상기성회를 조직하여 금연운동을 시작으로 서 울여자교육회대한부인회,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제국신문 등이 1,300만원을 갚는 운동을 일으 킴. 통감부가 간사 양기탁을 횡령 누명으로 구속하는 등 방해를 하여 실패.



애국계몽단체와 언론활동


보안회

(1904)

송수만심상진원세성 등이 일본의 황무지개척 요구를 철회. 농광회사(이도재)를 설립하여 개간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일진회의 반민족행위를 규탄하다 일본의 압력으로 해산.

헌정연구회

(1905)

이준양한묵윤효정 등이 입헌정치의 수립을 목표로 활동. 통감부가 설치된 직후에 해산. 일진회의 반민족 행위를 규탄.

대한자강회

(1906. 4)

헌정연구회를 이끌던 윤효정이 장지연심의성 등과 함께 조직. 교육개발, 식산흥업, 외세배격을 구호로 25개 지회를 두고 월보를 간행. 1907년 통감부에 의해 해산. 고종퇴위 반대운동을 벌였다.

대한협회

(1907. 11)

대한자강회의 후신으로서 천도교의 오세창권동진 등이 조직. 산업, 교육, 애국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70개소의 지회를 두었으나, 통감부 통치를 문명지도로 긍정하면서 친일적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함.

서북학회(이갑): 평양황해도의 학술단체로 서북 학보 발행, 순회 강연.

한북흥학회(이준이동휘): 함경도의 학술단체로 교육구국운동계몽강연토론운동청년운동 전개.

기호흥학회(이광종): 경기충청도의 학술단체로 기호 학보 발행, 기호 학교 설립.

호남학회(이채): 전라도의 학술단체로 호남 학보 발행.

관동학회(남궁억): 강원도의 학술단체로 황성신문 발행.

교남학회(박정동): 경상도의 학술단체로 교남교육회잡지 발간.

 

영남학회(장지연): 대한 자강회 조직.

대동학회(김윤식): 대동 전수 학교 설립.

흥사단(안창호): 흥사단보 발행.

여자교육회(진학신): 양규 의숙 설립.

신민회

(1907. 4)

안창호이동녕양기탁이승훈 등 서북지방의 기독교 신자 및 학교, 학생들로 조직.

표면적으로는 애국계몽단체였으나 이면으로는 남만주 삼원보, 밀산부 한흥동, 신흥 무 관 학교 등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노력.

안창호의 대성학교(평양), 이승훈의 오산학교(정주)건립, 태극서관(대구), 자기회사(평 양) 건립 등의 활동. 조선 광문회(고전 간행) 1911105인 사건으로 해산.

4대 강령으로 사상 고취 동지 발견단합 상공업기관 건설 교육기관 설립.


애국계몽단체


한성순보(18831884)

박영효 등 개화파가 박문국에서 발간한 순간 관보. 한성주보(18861888)가 됨.

독립신문(18961899)

서재필 등이 발행한 독립협회 기관지. 한글판, 영문판.

황성신문(18981910)

남궁억 등 개신유학자들의 중류지. 국한문 혼용. 장지연의 논설로 80일 정간.

제국신문(18981910)

이종일의 부녀자 대상의 순한글 대중지.

매일신문(18981899)

1898. 4의 협성회보를 발전시킨 순한글 일간지. 독립협회 해산으로 폐간. 대중지로 개화사상을 펴며 국민의 각성 촉구.

대한매일신보

(19051910)

영국인 베델이 창간한 국한문한글영문판의 신민회 기관지. 영일동맹 덕으로 검열을 면제받고 주필 양기탁이 일인불가입이라 계시. 박은식, 신채호 등이 항일논조를 펴며 을사조약불인친서의병활동서양문물 소개를 함. 베델은 1909년 병사하였으나 1910년까지 간행되다 총독부에 매수되어 매일신보로 속간.

만세보(19061907)

천도교의 후원으로 오세창이 창간. 일진회를 공격하고 사회진보주의를 제창. 대한신문으로 변질.

대한민보(19091910)

대한협회의 기관지로 국민신보(일진회)에 대항.

경향신문(19061959)

국문의 가톨릭교회 주간 기관지.

경남일보(19091914)

김홍조, 최초의 지방신문으로 영남 유림들이 장지연 초빙.

한말 5대지: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대한민보

친일신문: 경성일보(총독부, 1906), 국민신문(이용구, 1906), 대한신문(이인직, 1927), 법정신문(이완용, 1909), 매일신보(1910).

기타 민족지: 신한민보(미국), 해조신문(1910, 연해주, 신채호)

언론활동(신문)


민족교육운동과 종교활동

동문학

고종 20(1883)

정부가 세운 영어 강습 기관으로 통역관 양성.

육영공원

고종 23(1886)

정부가 세운 최초의 관립 학교로 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상류층 자제들에게 영어, 수학, 지리학, 정치학 등 근대 학문을 교육

(동도서기적)민족교육운동

갑오개혁 때 교육입국의 조서가 발표(1895)되며 소사범외국어 학교 등 각종 관립학교 설 립. 민족교육은 을사조약 이후부터 절정.

연대

학교명

설립자

위치

연대

학교명

설립자

위치

고종 20(1883)

원산학사(최초근대사립)

정현석

원산

광무 10(1906)

신성보성여학교

진명여학교

보성여학교

서전서숙

미 북장로회

엄귀비

엄귀비

이상설

선천

서울

서울

간도

고종 23(1886)

배재학당(최초사립학교)

이화여학고(최초여사립)

경신학교

북감아펜젤러

북감스크렌튼

북장언더우드

서울

서울

서울

융희 1 (1907)

대성학교

오산학교

오성학교

신흥학교

안창호

이승훈

서북학회

신민회

평양

정주

서울

삼원보

고종 27(1890)

정신여학교

미 북장 엘러스

서울

광무 1 (1897)

숭실학교(최초지방사립)

미 북장 베이드

평양

융희 2 (1908)

기호학교

동덕여자의숙

기호흥학회

조동식

서울

서울

광무 2 (1898)

배화여학교

미 남감리회

개성

광무 7 (1903)

숭의여학교

미 북장로회

평양

 

광무 9 (1905)

보성학교

양정의숙

휘문의숙

이용익

엄주익

민영휘

서울

서울

서울

한말 주요 사립학교

천주교

1886 프 수호통상조약 이후 선교활동 자유화.

∙「경향창간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의민단 조직 무장항일투쟁, 고아원양로원 등 사회 사업

개신교

1884년 알렌이 장로교, 1885년 아펜젤러가 감리교 전래.

서북지방에서 큰 호응, 서재필이상재윤치호 등이 대표자

서울의 기독교인들은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전신) 조직 일제의 동양전도관

국권침탈 후: 민족운동 전개 극심한 탄압 일제 말기: 신사참배 거부(1935)

천도교

(1906)

3대 교주 손병희는 친일적인 이용구가 시천교를 설립하여, 이와 결별하고 동학을 천도교로.

이용익과 더불어 출판사 보성사 설립,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 인수, 만세보기관지.

231운동인 자주호국선언을 계획(1922)

사회운동 전개 조선농민사 조직: 신파의 개량주의적 민족운동

대종교

(1909)

창립 단시 단군교라 칭하며 나철, 오기호 등이 발전.

1910년에 다수 애국지사들이 가담, 간도연해주등 해외 항일운동의 정신적 지주(정신문화운동)

중광단(1910) 북로군정서: 무장항일투쟁(청산리 전투) 전개

유 교

민주주의 이념에 적응하려는 움직임 나타남.

양명학에도 주목하여, 양명학자 박은식은 유교구신론(1909) 주장. 일제의 대동학회

불 교

민족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만해 한용운이 불교유신론(1913) 주장 일제의 본원사

원불교

1916 박중빈이 창시, 개간사업과 저축운동 전개.

기본교서 원불교 전서: 교화, 교육, 자선의 3대사업 전개

새생활운동 전개 일부는 친일행각

종교활동

 


국어학과 신문학운동


국어학 분야

갑오개혁 후: 정부에서 편집국과 인쇄국을 두어 국한문 혼용의 교과서를 편찬, 국문연구소(1907)을 두어 주시경지석영최광옥 등이 국어 정리.

조선어연구회(1921): 국문연구소를 모체로 이윤재최현배 등이 조직. ‘가갸날제정, 기관지 한글발간.

조선어학회(19311942): 표준어를 제정하고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1932), 우리말 큰사전편찬을 착수. 우리말 큰사전은 한글학회(1946)1957년 완성편찬.

국문표기방법의 통일: 유길준 조선문전(1895), 이봉운 국문정리(1897), 지석영 신정국문(1905), 주시경 국어문법(1906), 유길준 대한문전(1909)


국사분야

국사교과서의 간행: 장지영김영택현채

현채: 유년필독서, 동국사략등을 저술. 대체로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서양식 역사서술 체계 에 맞춰 축약한 신사체.

이 시기 국사연구의 경향: 고대사 연구에 치중, 민족주의적 주체성을 강조(단재), 국사의 대중화에 관심.

민족사관: 박은식에서 시작하여 신채호의 역사적 민족사관 정립, 둘에 의해 정립되어 정인보안재 홍문일평 등에 계승. 주로 실학자들의 저술을 정리. 민족사학은 현대의 근대적주체적 역사관 정립에 크게 기여.

국학자

저서

연구활동

신채호

을지문덕전, 최도통전, 천희당시화, 이태리건국 3걸전

독사신론」 ⇨역사 서술상의 주체를 민족으로 설정하고 민족주의 사학의 연구 방향 제시

조선혁명선언」 ⇨ 의열단의 이념. 민중의 폭력 혁명으로 독립 쟁취를 부르짖음.

<해조신문> 간행

 

신민회에 참여.

(화랑) 사상: 조선사연구초에서 묘청의 난을 낭가사상의 대표로 인정, 민족사관 정립

∙「조선상고사(1931): 역사는 -非我의 투쟁.

대륙사관 단군부여고구려발해

기자위만 제거, 한군현 부정

임시 정부에서 국민 대표 회의 개최를 주장하는 등 창조파의 주동 역할을 하다 무정부주의자로 변신.

박은식

(백암)

유교구신론(양명학적), 안중근전, 서사건국지, 연개소문전,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학규신론, 왕양명실기

 

조선혼: 한국통사이 존재하여 불멸하면 (나라)는 때맞추어 부활한다.”

한국통사는 최초의 한국근대사(1915)이다.

신규식과 동제사 조직, 임정 대통령으로 활약

정인보

(위당)

조선사연구, 양명학연론

‘5천년간 조선의 얼동아일보 게재.

신채호의 민족주체사상 계승발전

실학의 전통 정리

문일평

호암집, 한미50년사

조선역사학의 대중화 문제에 큰 관심

근현대사 연구 치중 세종을 민족대표로

최남선

아시조선, 조선정신, 고사통, 조선독립운동사, 단군론, 조선역사

사상.

불암문화론으로 일선동조론에 대항. ‘조선 정신

이능화

조선기독교 및 외교사, 한국도교사, 한국불교통사

종교민속 방면의 연구

홍이섭

조선과학사

전형필

오세창의 지도로 문화재 수집

장지연

∙「대한강역고, 백두산정계비고」 ⇨ 민족 주체성 과 조국 정신 고취

∙「조선유교연원, 대한최근사

조국정신

장도빈

조선사상사(1925), 잡지 서울간행, 발해사 연구의 개척

∙「대한위인전(민족주의 사학)

 

손진태

조선민족사개론, 국사대요, 한국민족문화의 연구

민족사관에 대한 비판과 극복

황 현

매천야록

현 채

동국사략(1907)․「유년필독등 교과서 저술, 월남망국사 번역소개.

이광수

민족개조론, 민족적 경륜민족주의 우파

안재홍

조선상고사감

민족정기 고조선 사회의 발전 체계화

신간회 참가, 신민족주의 제기

안 확

조선문명사(1923)

정 교

대한계년사(고종 이후 근대사)

한용운

조선독립의 서, 불교유신론

불교의 미신적 요소를 배격하고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근대화 운동

국학자와 민족주의 사학자

외국인의 역사연구

헐버어트: 대한기년, 한국통사, 한국최근사

그리피스: 은둔의 나라 한국

맥켄지: 한국의 비극

그라젠제프: 근대한국


문학분야

신소설

신체시 운동이 친일문학 쪽으로 흘러가자 한문학을 계승하면서 자주정신을 고취하는 문학풍조가 생겼는데, 신채호는 천의당시화를 대한매일신보에 게재.


기타 문학

계몽문학, 창가, 민속 가면극, 고희동, 김정희를 잇는 전통 회화.

번역문학: 게일 천로역정, 헐버트 사민필지, 윤치호 이솝이야기」․「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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