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1.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청일전쟁

배경: 일의 경제적 대립. 임오군란 이후 청의 정치적 진출에 대한 일본의 불만과 동학 이후 청일 본의 군사적 대치.

경과

청은 일본에 조선에서 공동철수를 제의하였으나 일본이 거절. 일본은 청과 공동 내정개혁을 제의 하였으나 청이 거절.

일본은 갑오개혁을 시작하며 청과의 기존 조약을 폐기 선언하여 충돌.

아산만 풍도에서 일본의 선제로 전쟁이 시작되어(1894. 7), 성환평양여순위해위대만에서 일본이 승리.

결과: 하관조약이 체결되고 청은 조선에서 완전히 철수, 일본이 조선과 만주에까지 영향.

 

삼국간섭

원인: 하관조약으로 일본은 요동반도를 할양: 러시아에겐 남하정책에 위협.

경과: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협동하여 요동반도 반환을 일본에 요구.

결과: 일본은 3천만냥을 받고 청에 반환. 국내에서는 친러파가 득세.

삼국간섭 이후 청으로부터 얻은 이권.

러시아: 뤼순다롄간의 철도부설권, 다롄 25년 조차권.

프랑스: 도쿄철도의 연장부설권, 광주만 99년 조차권.

독 일: 산둥성 철도부설권, 교주만 99년 조차권.


 

일간의 각축

춘생문 사건(1895. 10. 12): 이범진 주도하에 친러친미파들이 친일 정권에 포위되어 있던 국왕을 미국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고 친일 정권을 타도하려 하였으나 실패.


아관파천

배경: 러시아는 친러파와 짜고 을미사변 후 러시아 수병을 파견. 베베르는 18961월 스피에르로 교체되었지만 여전히 막후에서 활동.

경과: 친위대가 의병 진압으로 왕궁의 경비가 소홀하자 친러파 이범윤 등이 베베르와 모의하여 아 관파천 단행(1896. 2)

결과: 김홍집과 어윤중이 친일파로 지목되어 민중에게 살해, 유길준 등은 일본으로 망명. 윤용선을 총리로 하는 친러내각이 조직되고 고종은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서 보호를 받음.


러시아와 청일본간의 관계

1차 협상 베베르-소촌 각서(1896. 5): 일본은 아관파천과 친러내각을 인정하고, 서울-부산간의 전신선 보호와 거류민 보호의 구실로 군대를 계속 주둔한다.

2차 협상 로마노프-야마가타 의정서(1896. 6)

3차 협상 로젠-니시 협정(1898): 양국은 모두 조선내정 불간섭, 훈병교관과 재무고문의 파견은 사전에 협의, 러시아는 일본의 조선 상업공업의 침투를 방해하지 않는다. 일본은 한반도의 경제 적 우위 확보.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을 계기로 한 러시아와 각국의 비밀조약

러시아-: 만주와 조선에서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공수동맹을 체결하여 동청 철도 부설권 을 청으로부터 획득.

러시아-일본: 일본이 조선에 점유하고 있는 전신선 관리권을 인정하는 대신, 러시아는 서울에서 조러 국경선 간의 전신가설권 확보. 완충지대 설정. 일본은 38° 분할을 제의하였으나 거절당함 (로마노프-야마가타 의정서).

조선-러시아: 군사교관과 재정고문 파견. 전신선 연결 합의. 탁지부의 알렉셰프는 한러 은행을 설립.

 


⑷ 열강의 이권침탈


고종 20 (1883)

: 부산-나가사키 해저전선 부설권

고종 22 (1885)

: 인천-의주 전선 부설권 | : 부산-인천 전선 부설권

고종 23 (1886)

: 부산 절영도 저탄소 설치권

고종 25 (1888)

: 연안 어획권

고종 28 (1891)

: 인천 월미도 저탄소 설치권, 경상도 연안 어획권

고종 31 (1894)

: 경부철도 부설권

고종 32 (1895)

: 평안도 운산금광 채굴권

건양원년(1896)

: 경인철도 부설권 | : 경의철도 부설권

: 경원종성광산 채굴권, 인천 월미도 저탄소 설치권, 압록강 유역울릉도 채벌권

광무원년(1897)

: 강원도 금성 당현금광 채굴권 | : 부산 절영도 저탄소 설치권

: 서울 전기수도 시설권

광무 2 (1898)

: 한러은행 설치권 | : 평안도 은산금광 채굴권

: 평양탄광 석탄 전매권, 경인철도 부설권(미국으로부터 매수)

 



2. 독립협회의 활동(18961899)


독립협회의 성격: 자주독립자유민권자강혁신


독립협회의 자주적 근대사상과 그 조류

독립협회의 사상적 조류

서구시민사상: 서재필, 윤치호 등.

개신유학사상: 남궁억, 정교 등은 동도서기파로부터 발전.

자주자강과 개화혁신사상: 이상재는 서구시민사상+개신유학사상.

기타: 한규설 등의 개화파 무관, 자본가, 천민에서 해방된 일반 시민.

 


독립협회의 성립과 활동


독립협회의 성립

시작: 갑신정변에 실패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였던 서재필이 귀국하여 조직.

주요인사: 윤치호이상재 등 외교계 인사들로 조직된 정동구락부와 남궁억 등 실무관료 계열 인 사들이 주로 참여.

지지층: 학생, 노동자, 부녀자 및 해방된 천민 등 광범한 사회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독립협회의 특징

회원 가입이 전적으로 개방

1898년 공지지회를 필두로 평양대구 등지에 지회 설치. 지회는 서울의 본회 해산 뒤에도 활동을 계속.


독립협회의 자주 국권 활동

모화관을 독립회관으로 개칭(1896).

고종 환궁요구: 고종은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국하여 국호 대한, 연호 광무의 대한제국 선포(1897. 10).

영은문 헐고 (청으로부터의) 독립문 설치(1897. 11)

러시아 군사교관과 알렉셰프의 소환.

만민 공동회 개최(1898):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고, 대한의 자주 독립권을 지키자는 내용의 결의안 채택.

자주 국권 운동: 독립 협회는 수시로 만민 공동회를 열고, 민중을 배경으로 내정 간섭과 이권 요구 및 토지 조차 요구 등에 대항.

독립신문, 자주호국선언, 입헌군주제 주장, 지회설치


독립 협회의 이권 수호 운동

러시아의 이권 침탈 저지

절영도 조차 요구 저지: 러시아가 일본의 선례에 따라 저탄소 조차를 요구하자,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배경으로 일본의 저탄소 철거까지 주장하여 러시아의 요구를 저지.

러 은행 폐쇄.

도서의 매도 요구 저지: 군사 기지의 설치를 위한 러시아의 목포, 증남포 부근의 도서에 대한 매 도 요구를 저지.

기타 열강의 이권 침탈 저지: 프랑스의 광산 채굴권 요구를 좌절, 독일이 차지한 이권에 대한 반대 운동도 벌여 한동안 이권 침탈이 줄어들었다.


독립 협회의 민권 운동

배경: 자주 국권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힘이 증대되고 민권 의식이 고양되어 전개.

내용: 기본권 운동을 전개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국민 참정권 운동도 전개.


독립 협회의 민중 운동 성과

민중의 대표 기관으로 성장

진보적 내각의 수립: 민중 운동을 통하여 보수적 내각을 퇴진시키고, 박정양의 진보적 내각을 수립.

관민공동회에서 헌의 6조 결의할 것: 헌의 6조는 고종도 실시를 약속하여 의관의 반을 민선으로 하기로 하고 독립협회에 의뢰까지 하였으나 이것은 정부의 탄압방책 준비수단에 불과.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전제황권을 공고히 할 것.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인하여 시행.

국가재정을 탁지부에서 관장,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하여 자복한 후에 시행.

칙임관을 임명할 때에는 황제폐하가 정부에 그 뜻을 물어서 중의(과반수)에 따를 것

정해진 규정 홍범 14조를 실천할 것(장정실천).



독립협회의 의의


독립협회의 해산(1899)

정부는 독립협회가 공화주의 정치를 한다고 하여 해산 명령을 내리고 이상재 등 중심인물 17인 체포.

만민 공동회의 항거: 서울 시민들은 만민 공동회를 열어 50여 일간의 시위 농성을 통하여 독립 협 회의 복설, 개혁파 내각의 수립, 의회식 중추원의 설치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정부는 황국협회(1898)를 이용하여 시위 군중에게 테러를 감행하고, 군대와 순검을 풀어 독립협회 를 견제하다가 두 단체 모두 해산.


독립협회의 의의: 우민관을 지닌 부르주아적 개혁운동

시민 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구식 입헌군주제 혹은 공화국가를 세우려 하여서 보수 세 력의 지지를 얻지 못함.

미국영국일본에 대해서는 우호적, 농민군이나 의병에 대해서는 적대적.

독립 협회를 통한 사회의식과 사회 자체의 변화

사회의식의 변화

사회 자체의 변화: 민권 사상과 평등 사상이 확산

 



3. 광무개혁


광무개혁의 성격

광무개혁의 배경: 고종의 경운궁 환궁과 대한제국 선포.

광무개혁의 성격: 황제의 전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구본신참.

교정소 설치: 정부는 법률칙령의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황제 직속의 입법 기구 설치.

 

광무개혁의 내용

경향의 변화: 처음에는 중추원을 구성하여 민의반영 개혁정치를 실시하고자 하였고, 지방의 23부를 13 도로 개편, 사범학교 설립. 1899년 대한국제의 반포에서 황제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개혁: 18998월 교정소에서 9개조에 달하는 대한국제의 반포.

모든 권한을 군주의 대권으로 규정. 의회참정권사법권 규정은 없음.

군사적 개혁

원수부를 설치하여 황제가 육해군을 통솔하도록 하고, 서울에 시위대와 지방에 진위대의 군제를 마련하고 군사 수를 대폭 증강.

장교 양성을 위한 무관 학교 설립

민주적 외교

청과 통상 조약을 체결하여 관계를 대등하게 수정(1899).

간도관리사(1902, 이범윤)와 블라디보스토크 통상사무관을 파견, 북간도의 영토편입 도모.

경제적 개혁

토지조사(양전) 사업: 1898년 양지아문을 설치하고 18991903년 사이에 미국인 측량사를 초빙하여 지계를 발급.

국가 제조공장을 설립하고 민간 제조공장 설립을 지원.

상무사를 조직하여 상업특권을 부여하고 영업세 징수도 위임.

내장원 재정 관리: 이용익에게 위임하였고, 재정은 군대양성공장건설회사설립학교건립의병 지원으로 사용.

사회적 개혁

기예학교의학교상공학교외국어학교 설립. 유학생 파견. 실업교육 강화.

교통통신시설 개선, 새 호적제도, 병원 설립.

 


대한제국의 의의와 한계

의의: 강력한 황제권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서 짧은 기간에 근대화를 이룸.

한계

열강의 간섭과 보수적 파쟁을 제거하지 못하였음.

백동화 남발로 화폐제도가 문란, 상무사는 상업 발전을 저해.

군대도 민중항쟁 진압용이었을 뿐 외세를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

 


민주의 반침략반봉건 항쟁

농민운동과 노동운동

농민층의 저항: 항조운동, 항세운동

초기 노동운동: 제국주의매판적 자본에 대해 노동운동반침략적 운동을 벌임.

광부: 저임금과 민족적 차별대우에 저항. 운산당현은산직산금광에서 봉기.

개항장 부두노동자: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저항. 목포 부두노동자들의 파업(18981903)이 대표적.

영학당동학당활빈당

영학당

전라도 동학교도인 최익서 등이 영학당을 조직하여 1898년 말의 흥덕 농민항쟁을 지원하며 활동.

영학당은 1899년 봄 전라도 북부의 농민들이 균전폐지 요구에 해산당한 것을 계기로 고부, 흥덕, 무장 등지를 공격하고, 영암지역의 농민들과 합세하여 광주전주관찰부를 점령한 뒤 서울까지 공격 시도.

고창 공격에서 패함.

동학당

1900년경에 해주재령 등 황해도와 소백산맥 지역에서도 활발.

1900년부터 본격적 활동을 전개하는 활빈당으로 흡수되거나 을사조약 전후 의병에 참가.

활빈당

19001905에 활발. 충청경기,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 소백산맥 부근 등지에서 활동.

행상유민초기노동자걸인의병 운동에 가담한 농민군 등의 조직으로서 양부를 빈민에게 분 배함으로 활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였음.

대한사민논설 13조목을 요구하며 저항하다, 을사조약 이후 일본군의 무력 탄압으로 지도부가 붕 괴되어 소멸. 잔여세력은 의병에 흡수.

방곡을 실시하여 구민법을 채용할 것.

시장에 외국상인의 출입을 엄금.

금광의 채굴 엄금.

사전을 혁파하고 균전으로 하는 목민법 채용.

악형의 여러 법을 혁파.

타국에 철도부설권 불허.

도우를 엄금.

곡가 안정을 위한 구민법 꾀할 것.

백성이 소원하는 문권을 폐하께 받들어 올려 흥인을 꾀할 것.

개화법을 행할 때에는 정법을 행할 것

어지럽지도 사치하지도 않은 선왕의 의제를 사용할 것.

요순 공맹의 효제안민의 대법을 행할 것을 간언함.

행상에게 징세하는 폐단을 고치고, 징세한 것을 모두 반환하고, 방임을 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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