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 경제정책


농업경제 중심

논농사의 확대

수리 시설의 보수와 신축, 저지의 개간 확대 벼농사의 발달로 논농사 중심으로 전환

밭농사의 발달

보리콩을 23작하는 윤작법 보급

농업 기술의

발달

호미와 보습 등의 농기구의 종자의 개량

우경에 의한 심경법 확대

시비법 발달: 분전법(씨앗에 거름을 섞어 뿌리는 분종법과는 달리 밭 전체에 거름을 뿌리는 방법) 제초법 발달이 바탕(분전법의 경우에는 곡식뿐만 아니라 잡초도 거름을 먹게 되어 무성해지므로 제초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가능)

제초법의 발달: 제초 기구로 극쟁이와 짧은 호미 사용, 모내기법을 이용한 제초

품종의 다양화 약용작물 재배(피마자, 생지황 등) 과일 재배에서 접목 발달

휴한농법의

극복

고려 초기에는 지력 유지를 위하여 한 해(일역전)이나 두 해(재역전)를 휴경하였다. 그러나 가축의 배설물과 나무나 풀을 불태워 생긴 재를 거름으로 이용하는 시비법이 발달함에 따라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고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는 휴경을 하지 않을(불역전) 수 있었다. 또한, 정부에서는 지방 수령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수리시설을 확장하도록 하고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경작지를 넓히도록 하였다.

 


국가의 재정원칙: 토지 대장인 양안과 호구 장부인 호적. 인구와 토지를 파악하는 호부. 재정의 수입과 관련된 사무를 보는 삼사. 재정은 관리의 녹봉과 왕실 경비, 일반 비용, 국방비 등에 지출.

 


수취체제

조세: 토지를 논과 밭으로 나누고 3등급으로(1=100=100=1000파 당 최고 18석 기준) 구분하여 세 를 받음. 민전 1/10, 국유지는 1/4, 전호제 1/2. 세는 조창까지 옮긴 후 조운을 통하여 개경의 좌우창 으로 운반.

공납: 고을(주현)에 할당된 일정 종류와 액수를 호구를 기준으로 9등급으로 나누어 상공과 별공을 거둠.

요역: 정남(1660세 남자)의 노동력 수취, 군역: 정남의 부병근무 혹은 양호.

어민에게는 어염세, 상인에게는 상세를 받음.

 


토지제도의 정비 - 전시과 체제

토지제도의 변천

역분전(태조): 개국공신과 군사에게 경기에 한하여 지급한 논공 행상적 토지.

시정 전시과(경종): 문무의 전현직 관리에게 관직의 고하와 인품을 반영하여 전국적 규모로 전지와 시지를 지급.

개정 전시과(목종): 현직(직산관) 관리에게 관직만을 기준으로 문무의 직관과 산관을 망라하여 18등급으로 나누어 지급. 문관이 우대되었고 군인전도 전시과에 규정.

경정 전시과(문종): 현직 관리에게만 18등급의 전지시지 수조권 지급. 사전은 경기 지방만 한함. 공음전 신설. 무신에 대한 차별 대우는 시정. 무신 정변 후 귀족들의 토지 독점화가 심해지면서 전 시과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지 못함.

 

 

과 전: 전시과의 규정에 의해 문무 현직관리에게 지급

구분전: 하급관리군인유자녀 조선: 유가족(휼양전), 외역담당자(구분전)

사원전: 사원에 지급하는 면세지.

별사전: 승려나 지리업에 종사하는 자에게 지급.

군인전: 26위의 직업군인에게만 지급 조선의 군전은 지방의 한량에게 지급한 것임.

외역전: 향리에게 지급.

공음전: 5품이상의 관리:

공신전: 공신(공양왕때 공음전이 변한 것임) 조선: 별사전(준공신에게 지급), 공신전

내장전: 왕실경비

공해전: 관청경비

한인전: 6품이하 관리의 무관직 자녀에게.

민 전: 국가 소유의 농민경작지. 상속기증임대매매 가능. 민전이 없는 자는 소작농(佃戶)으로 기능.

녹과전: 원종 1275 시행. 몽골의 침입, 무신정변후 농장의 확대로 국고가 탕진되자, 고종 44년 경기 8현의 땅을 녹 봉 대신 지급. 私田의 하나로, 소유자는 경작자에게서 전조만 받았다. 실패.

영업전 군인전, 외역전, 공음전, 공신전, 내장전

 

소유권

형식상 국가(토지국유제) / 실질상 民田(사유): 지주전호 관계 설정시 1/2

수조권

국가관청 公田 / 양반사원 私田

경작권

농민외거노비

 



2. 경제생활

귀족의 경제기반

상속받은 토지, 노비, 과전(일부분 상속 가능)과 녹봉(47등급으로 400석에서 10석까지)가 경제 기반.

과전에서 1/10, 공음공신전에서는 수확량 절반을 제공받음. 문종 때의 녹봉제에 따라 현직 관리는 녹패로 연 2회 쌀보리 베비단을 지급받음.

노비를 경작하거나 소작을 시켜 생산량의 절반을 수취. 외거노비에게 신공으로 베나 곡식을 수취, 솔 거노비에게는 가내노동을 맡김. 귀족들은 고리대나 권력으로 농민의 토지를 강탈, 대리인에 관리지 대 위임.

말과 차()를 이용, 비단고운 모시옷을 입었다.

 


농업 정책

진전 개간: 토지 대장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 경작되지 못하고 있는 땅을 개간하면 소작료 감면, 주인 없는 진전을 개간하면 개간자의 토지로 인정.

황무지를 개간하면 일정기간 조세나 소작료를 감면해 주었다. 12세기 이후에는 연해안의 저습지간 척지도 개간하였다. 수리시설, 농기구, 종자도 개량되었다. 강화도 피난 시기 이후에는 강화도 지방을 중심으로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소 심경법이 일반화되었고, 시비법이 발달하여 밭농사는 23작의 윤작법이 보급되었고 고려 말 에는 이앙법이 일부 보급되었다.

고려 후기에는 이암이 원의 농상집요를 소개하였고 공민왕 때에는 목화씨가 들어왔다.

 


수공업 활동

관청수공업: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 기술자를 공장안에 전속시켜 무기, 왕실이나 귀족품의 생활 용품 제조. 뛰어난 공장에게는 녹봉과 토지 지급. 소에서는 금, , 구리, , , 옷감, 종이, , 차 등 생산.

민간수공업: 가내수공업이 중심으로, 자급자족을 위한 생활필수품과 납세용 포목류 제조가 주류. 고려 후기에는 민간에서도 관청 제조품인 놋이나 도자기 생산.

사원경제: 제지, 직포.

 


상업

시전: 개경에 설치되어 관청과 귀족들이 주로 이용. 또한 비정기적인 시장과 물가조절 관청인 경시서 가 있었다.

관영 상점: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는 관청의 수공업장에서 만든 물품을 판매하는 관 영 서점, 약점, 주점, 다점이 있었다.

지방: 관아에서 일시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었음. 사원에서도 생산품을 판매. 행상들은 지방 시장에서 물 품을 팔거나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베나 곡식을 받고 소금, 일용품 등을 판매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상품 수요 증가, 시전 규모 확대, 업종별 전문화. 벽란도를 중심으로 무역 발달. 지방에 서는 조운로를 따라 미곡, 생선, 소금, 도자기 등이 교역되었고 원도 발달. 국가가 소금의 전매제를 이 용하여 재정을 늘렸음. 관청관리사원에서는 농민에게 물건 강매 요구.

 


금융활동 전개

고려의 화폐제도

시기

종류

비고

성종(996)

건원중보

최초의 화폐, 확산실패

숙종(1102)

활구(은병)

의천의 주장으로 발행. 1개당 포 100, 510

해동통보(해동중보)

삼한통보(삼한중보)

동국통보(동국중보)

유통이 상류사회에 한정, 상거래에서는 곡식과 포가 여전히 유효.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 설치.

 

충렬왕(1276)

쇄은

충혜왕(1331)

소은병

공양왕(1391)

저화

최초의 지폐로 저화 1장에 쌀 2

 

금융활동: 보는 후기에 갈수록 고리대 성격이 짙어졌다.

학 보

태조 13년에 서경에 설립한 육영재단

광학보

정종 때 승려의 면학을 위한 장학재단

경 보

정종 때 불경 간행을 위해 만든 재단

제위보

광종 14년에 빈민구제를 위하여 설치한 재단

금종보

현종이 현화사 범종을 주조하기 위하여 조직한 재단

팔관보

문종 때 팔관회의 경비에 지출하기 위하여 설치한 재단

장생고

사원과 귀족들이 경영한 서민 금융기관으로 폭리를 취하여 부를 축적

 


대외무역: 공무역이 중심.

대송무역: 친송북진 정책

고려의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 광종 때 송과의 국교가 시작되었는데, 고려는 문물을 수입 하고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송은 북방민족에 대항하기 위하여 서로 통교하였다.

고려는 사치품(서적, 비단, 약재, 자기, 악기, 향료) 수입, 원료와 수공업품(, , , , 나전 칠 기, 화문석)을 수출.

대송 교통로는 북송 때에 벽란도-옹진-산둥반도-덩저우, 남송 때엔 벽란도-흑산도-절강성-밍저우.

송문화의 영향으로 목판인쇄술, 대성악(아악), 은입사, 자기 발달, 월정사 89층 석탑 발달.

북방민족과의 무역: 거란은 은을 가져와서 식량, 문방구리 철 수입. 여진은 은, 모피, 말을 가져와 먹무 기, 식량 철제 농구 등으로 바꾸어 갔다.

대일무역: 11세기 후반부터 수은과 유황 등을 가지고 와 식량과 인삼, 서적 등과 바꾸어 갔다.

벽란도에서의 무역: 아라비아(대식국) 상인까지 와서 수은, 물감, 향료, 산호, 호박을 주고 토산품 수출.

원 간섭기의 무역: 사무역이 활발이 전개되었으나 금, , , 말의 과도한 유출이 사회 문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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