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쟁과 탕평
⑴ 환국정치
① 환국
㉠ 기사환국: 숙종 15년(1689) 후궁 소의 장씨의 소생을 원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 되고 다시 남인이 정권을 장악.
㉡ 갑술환국: 숙종 20년(1694) 폐비 민씨 복위 운동을 반대하던 남인이 화를 입어 실권하고 서인이 재 집권하게 된 사건. 갑술옥사 또는 갑술경화라고도 함.
㉢ 무고의 옥: 숙종 27년(1701) 인현황후 사후 장희빈의 처소에서 신당이 발견되자 장희빈에게 사약이 내려짐. 소론은 세자를 위해 용서해 줄것을 간청했으나 숙종은 소론 세력을 귀양 보내거나 파직시 킴. 소론은 세력이 축소되고 노론이 대거 조정에 진출함.
② 숙종(1674~1720)의 재위기간은 당쟁의 절정기였음. 예송논쟁으로 왕실의 권위가 실추되자 왕이 편당 적 조치를 취하여 환국을 불러오게 됨.
③ 이러한 정치적 동향은 17세기 후반 이후 상품 화폐경제 발달에서 비롯함.
④ 결국 향촌 사회에서의 지주제와 신분제의 동요는 사족중심의 향촌 지배질서를 어렵게 하였고 붕당정 치의 기반도 무너지게 하였음.
⑵ 붕당 정치의 변질 결과
① 왕위 계승 문제: 사사가 빈번히 발생, 외척의 정치적 비중 상승, 정쟁의 초점이 왕위 계승으로 맞춰짐.
② 벌열 가문의 권력 독점
③ 양반층의 분화
④ 서원의 남설: 특정 가문의 선조를 받드는 사우와 뒤섞여 도처에 건립. 특히 갑술환국(1694) 이후 남인 의 본거지인 경상도 지방에서 심하게 나타났음.
⑶ 탕평론
기원 | 서경홍범조에서 비롯함. |
실시원인 | 붕당정치의 문제점: 극단적 정쟁, 집권욕으로 사리에 집착, 사회분열, 왕권약화 |
본질 | • 탕평론은 정치적 균형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왕권전제가 목표 • 왕에 의한 타율적 세력균형 유지는 붕당정치가 변질된 17세기 후반에 제기 |
숙종(1674~1720)의 탕평책 | ① 탕평론이 처음 제기 ② 명목상의 탕평, 조제보합론 없음 ③ 노론 중심의 일당 전제화로 실패, 편당적 조처로 환국이 일어났음 |
경종 때의 상황 | 경종(1720~1724) 왕세제(영조)와 대리청정 문제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격화. |
영조의 완론탕평 | ① 즉위 초 「탕평교서」반포, 실패 ② 온건론자를 등용하여 탕평파 육성(완론탕평) ⇨ 일종의 조제보합론 ③ 노론과 소론을 교대로 기용하여 정국이 불안 ④ 이조낭관이 행사하던 낭천권과 천거권 박탈 |
정조의 준론탕평 | ① 노론 벽파를 물리치고 남인 시파를 고루 등용 ② 엄격한 준론 탕평을 실시 ③ 근본적인 당쟁의 모순을 시정할 수는 없었다 |
탕평론의 결과 | 탕평책은 왕권 강화를 도모하고, 정국 안정을 위한 미봉책에 불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