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선 전기의 대외관계


대명 관계


사대교린정책: 명과는 사대친선, 중국 외와는 교린정책.


태조태종 때의 대명관계: 태조 때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요동 정벌 계획과 여진과의 관계를 둘러싸 고 불편한 관계가 형성. 태종 때 양국은 친선하고 교류를 활발히 함.


교류 형식과 목적: 매년 ()정기 사절이 오감.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었으나 문화의 수입과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짐. 조선은 13공을 주장.

정기 사절

부정기 사절

하정사: 정월초 인사

주청사: 특별 요청을 하기 위한 사신

성절사: 황제 생일

사은사: 중국에 감사할 일이 있을 때

천추사: 황후태자 생일

진하사: 황제 등극, 황태자 책봉 축하

동지사: 동지에 보냄

진위사: 황제, 황후 상사에 조문


특징: 조선은 명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사대 정책이었으나, 명의 구체적인 내정 간섭은 없었다.


무역

교역품: 사신을 통한 공무역이 주로 행하여졌는데, 마필인삼화문석 등을 수출하고 견직물서 적약재문방구도자기 등을 수입.

폐단: 명의 과다한 금은 요구는 세종 때에 마필로 이를 대신하게는 되었으나, 이후 그 요구를 피 하기 위해 국내의 금은광을 거의 폐쇄하기도 하였고, 사치스러운 견직물의 수입으로 국내 수공 업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대명 관계의 변화: 대명 관계는 실리 추구와 국토 확장을 둘러싸고 대립하기도 하였으나, 뒤에는 사림 들의 존화주의로 인해 지나친 친명 정책으로 흐르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대여진 관계: 적극적이며 회유와 토별의 양면 정책


회유책

귀순 장려: 관직 부여, 정착을 위한 토지와 주택 공급.

유숙소 설치: 사절의 왕래 시 북평관 등 설치.

국경 무역 허락: 국경 지방인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세웠으나, 여진족은 자주 국경을 침입하여 약탈.


강경책

태조때의 대여진 관계: 태조의 두만강 지역 개척.

세종때의 여진 개척: 오늘날의 국경선 개척.

4: 세종 15(1433) 최윤덕 등이 압록강 상류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여연, 우예, 무창, 자성에 군 을 설치.

6: 세종 16(1434) 김종서 등이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온성, 종성, 경원, 회령, 경 흥, 부령에 진을 설치.

야연사준도: 김종서가 4군과 6진을 개척하고 함경도에 있을 때의 고사를 조선 후기에 그린 것이다.

세조성종 때: 신숙주, 윤필상 등이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여진족을 토벌.


이후의 대여진 관계

화전양면, 종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

국경지방에 많은 진보를 설치하여 전략촌화.

사민정책(태종중종): 삼남 지방의 일부 부유한 주민들을 압록강과 두만강 이주.

토관정책: 여말 선초 평안도함경도제주도 등지의 토착인을 토관 임명. 오래지 않아 향리로 대체.




일본 및 동남아시아와의 관계

일본 및 동남아 국가들에 교린책을 바탕으로 회유책과 강경책을 적절히 적용.

류큐, 시암, 자바 등 동남아시아 각국과도 조공과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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