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정치의 시작


선조(15671608)의 사림 기용

선조는 향촌의 사림을 재기용: 사림 내부에서 대립이 발생하여 동서 분당.

 


붕당정치의 전개 과정


사림 내의

갈등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을 둘러싸고 갈등. 명종 때 이후 정권에 참여해 온 기성 세력은 개혁에 소극적이었으나, 명종 때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새롭게 정계에 등장한 신진 사림들은 사림 정치의 실현을 강력히 주장.

분당

(선조, 1575) 이조전랑직의 문제로 신진 사림의 지지를 받던 김효원과 왕실의 외척이며 기성 사림의 신망을 받았던 심의겸을 중심으로 동서의 분당. 신세력인 동인에는 김효원, 이산해 유성룡, 구세력 서인에는 심의겸, 정철, 윤두수 등.

자기 수양에 역점을 두어 지배자의 도덕적 자기 절제를 통해 부패 방지

백성 통치에 역점을 두어 제도 개혁을 통한 부국 안민에 치중하는 경향

분당

(선조, 1592) 서인 정철이 건저의 문제로 논죄되고, 정여립 모반사건(1598) 등으로 동인은 강경파 북인(이산해, 이발)과 온건파 남인(유성룡, 우성전)으로 분열.

 

남인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중심. 향촌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

남명 조식의 제자들로 구성. 왜란 때 의병활동을 주도, 광해군 개혁정치 주도하는 등 실천적인 면이 강함.

대북소북

분당

선조 말기에 북인이 득세, 광해군을 둘러싼 대북파와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로 분열

 

 

대북의 집권

(광해군 원년, 1608) 광해군 즉위 이후 대북파가 집권하면서 소북파 등을 제거

 

o

×

 

서인의 집권

인조반정(1623)으로 집권한 서인은 어영청총융청수어청을 설치하여 세력 강화

 

 

 

효종의 북벌계획

숭명반청 의식이 강한 서인을 등용, 서인의 군사적 기반 강화

 

 

 

남 대립

1차 기해예송(1659)

효종이 승하하자 조대비의 복제를 둘러싸고 서인(송시열)의 기년설 대 남인(윤휴) 3년설 대립. 서인이 이김.

2차 갑인예송(1674)

효종비 인선대비의 상에서 서인의 대공설(9개월)과 남인의 기년설이 대립하여 남인 승리.

 

현종은 증대된 서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허적윤휴 등 남인을 등용. 남인은 예송논쟁을 일으켜 서인과 대립.

 

 

 

 

 

 

 

 

서인

상업과 기술발전에 호의적. 노비속량과 서얼허통에도 적극적. 부국강병에 관심이 많았으며 대신 주도의 정치를 지향.

남인

수취체제의 완화와 자영농 육성에 치중, 상업과 기술발전에 소극적. 왕권강화와 정책 비판에 큰 비중.

 

 

 

 

숙종 때의

서인 집권

(경신환국)

숙종이 즉위하여 남인을 등용하자 남인이 병권을 강화. 이에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을 등용하였는데 경신대출척(1680)이라 함. 그 후 서인이 노론(송시열)과 소론(윤증)으로 분열.

 

 

노론

율곡 이이의 제자들인 노론은 송시열을 영수로 하여 명분(대명의리론)을 바탕으로 숭명반청책(북벌론)을 지지. 이후 내부에서 북학파가 성장함으로 서얼허통과 상공업 진흥에 관심.

소론

우계 성혼의 제자들인 소론은 양명학을 수용, 윤증을 영수로 하여 남인과 마찬가지로 성리학과 대외정책에 탄력성을 가지면서 내정개혁에 치중.

 

 

 

 

 

기사환국

(숙종, 1689)

숙종은 장희빈의 소생(연령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는데 서인이 반대하자 서인을 축출하고 남인을 재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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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옥사

(숙종, 1694)

남인은 서인이 폐비음모를 꾸민다고 하여 옥사를 일으킴. 숙종은 남인을 축출하고 소론을 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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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의 옥

(숙종, 1701)

장희빈이 민비를 해하려고 한 사건이 있은 후, 숙종 27년에 민비가 승하하자 숙종은 소론을 축출하고 노론을 중용, 노론이 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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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사화

(17212)

경종이 즉위한 이후 소론(유봉희)이 노론(김창집)을 반역죄로 몰아 제거하고 정권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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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탕평책

사도세자 문제를 중심으로 시파와 벽파로 분열, 순조 이후 세도정치 등장.

시파벽파

 

 

 

붕당정치의 성격

처음에는 자기 붕당을 군자당이라고 주장하고 상대방을 소인당으로 배척

선배 사림이 물러간 뒤에는 붕당을 모두 군자당으로 간주하고 견제협력

비변사를 통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공론을 중시하는 정국 운영

재야에서 서원이나 향교에서 모여 공론을 주도하는 산림이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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