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국토의 분단


열강의 한국 문제 논의


카이로 회담(1943. 11)

참가국: 미국(루스벨트)영국(처칠)중국(장제스)

내용: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시키며 독립시킬 것을 선언했다.

의의: 최초로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

● 팁: 카이로 회담은 좋은 것임.


포츠담 선언(1945. 7)

참가국: 미국(트루먼)영국(처칠 애틀리)소련(스탈린)중국(장제스)

내용: 카이로 선언(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했다.

 


분단의 원인

얄타 회담(1945. 2)

참가국: 미국(루스벨트)영국(처칠)소련(스탈린)

내용: 미국은 미소 양군이 38선을 경계로 각각 진주할 것을 제안. 맥아더의 일반 명령 1(1945. 8. 15)에서 공식 확정했다.

민족의 분단이 고착화됐다.

● 팁: 얄타는 나쁜 것임.


소 군정의 실시

남한: 남한에 주둔한 미군 아놀드가 군정 장관인 군정을 실시하며 친미적인 우익 정부의 수립을 후원했다.

북한: 소련군과 공산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족주의 인사들을 숙청하고 정권 수립의 기반을 닦았다.

결과: 스스로의 능력이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민족 분단의 비극을 맞이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1945. 8. 15)

조직: 광복 당시 최초의 정치 단체로 친일 세력을 제외한 여운형(온건 좌파)이 조선건국동맹을 모체로 안재홍(민족주의, 온건 우파) 등과 함께 발족했다.

지도자: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한계: 송진우, 김성수(임정 지지) 등 민족주의 우파세력이 불참했다.

활동 내용

치안대 설치

북한 지역을 포함한 145개 지부 조직

식량대책위원회 설치: 식량 회복에 주력했다.

건국 강령의 발표: 자주독립 국가의 건설, 민주주의 정권 수립, 국내 질서의 자주적 유지 등.

조선 인민 공화국의 선포(1945. 9. 6)

배경: 좌파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우파 민족주의자들이 탈퇴했다.

목적: 건준은 남한 지역에 미군이 진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군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하여 조선 인민 공화국을 선포.

조직의 보완

가. 이승만을 주석, 여운형을 부주석, 허헌을 국무총리로 임명하였다.

나. 그러나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조선 공산당 계열이 실권을 장악하여 좌익 정부나 다름없었다.

결과: 우익 인사들은 이 단체를 외면했고, 미군정도 성명으로(1945. 10. 10)이 단체를 부정하였으며, 결국 건준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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