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군정


출범(1945. 9. 9): 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 군정을 포고, 아놀드 소장이 군정 장관에 취임.


한국에 대한 입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부정

ㅇ 중국과 친밀하고 민족주의적 성격을 지닌 임정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ㅇ 주석인 김구와 임정 요인들을 개인자격으로만 귀국 허용.

조선인민공화국의 부정

 

한계성

미국은 한국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총독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여 

친일파가 미군정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그 세력이 보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정당의 난립(194510월 현재 54개의 정당이 등록)


한국 민주당(1945. 9. 16)

중심인물: 송진우, 김성수 등 민족주의 계열이 중경 임시 정부 지지를 명분으로 조직.

특징: 요인들이 미군정에 참여하였으며, 친미적인 우익 정부 수립을 위한 미군정의 후원을 받아 강 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


조선공산당(1945, 9. 16)

조직: 노동자, 농민을 주축으로 도시 소시민, 지식인 등으로 구성.

중심인물: 공산주의자 박헌영을 중심.

정책: 대지주 토지의 무상몰수를 주장.

단체의 결성: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을 결성.


국민당(1945. 9. 24)

중심인물: 안재홍, 김규식 등 중도 우파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

성격: 신민주주의신민족주의를 표방하여 좌우통합을 하고자 하였고, 임시 정부 지지 표명.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1945. 10. 25)

중심인물: 이승만이 귀국하여 결성.

성격: 남한의 우익 정당들을 잠정 통합하는데 성공.

결과: 좌익은 독촉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좌우익의 대립이 더욱 심화.


한국 독립당(1945. 11): 김구가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여 활동 전개.


조선 인민당(1945. 11. 12)

중심인물: 여운형 등 중도 좌파 세력.

성격: 중도 좌파 정당으로 미소의 원조와 민족 국가 건설을 노선으로 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좌우 합작을 추진.

민족 자주 연맹(1947. 12):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 합작 노선을 전개, 남북 연석 회의를 주도하고 단독 정부 수립에 불참.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1945. 12)

배경: 38선을 경계로 한반도가 분단되고, 남과 북에 군정이 실시되는 가운데, 3국 외상은 한반도 문제를 협의.

내용: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 동안 미4개국의 신탁 통치하에 두기로 결정.

결과

반탁운동의 전개

신탁통치의 결정이 전해지자 전 국민이 반대 운동을 전개.

비상정치회의(김구),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이승만)이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여 신탁통치에 반대 (1946. 2).

찬탁운동의 전개

처음에는 반탁이었으나, 소련의 사주를 받아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을 수용하기로 바꿈.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에 맞서 좌익의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조선민족혁명당, 천도교청우당 등이 민주주의 민족전선을 결성.

좌우익의 대립 격렬: 국내정치세력은 반탁과 찬탁으로 양분되어 격렬히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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