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의 대외관계 ※
(1) 고려전기의 외교정책:북진정책, 친송정책
(2) 경과:중국세력의 변화와 집권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개
한 족 (송) |
거란족(요, 10세기~11세기 전) |
여 진 족 (금, 12세기) |
몽 고 족 (원, 13세기) |
왜구, 홍건적 (14세기) |
1)광종 때 수교 ↓ 목적 ①고려 -문화적 -경제적 ②송 -정치적 -군사적 2)무력충돌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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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태조:만부교사건 2)정종:광군의 설치 3)침입과정 ①1차(성종,993):서희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임을 인정받음 ㉡“강동6주”의 차지 (국경선이 압록강까지 확장) ②2차(현종,1010) ㉠“강조의 정변”을 계기로 강동 6주를 넘겨줄 것을 요구 ㉡개경의 함락 ㉢양규의 선전 ③3차(현종,1018):강감찬 →“귀주대첩”의 승리(1019) 4)결과 ①고려, 송, 거란의 세력균형유지 →외교관계의 수립 ②천리장성의 축조(압록강 어귀~ 동해안의 도련포) →목적:거란,여진의 방어 ③나성의 축조(개경) ④7대 실록의 편찬 ⑤초조대장경의 조판 |
1)처음:무력행사 ↓ 별무반(윤관) ①구성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승병) ②결과:“9성”의 축조 →1년 만에 돌려줌 ㉠수비의 어려움 ㉡여진의 조공 약속 ㉢거란족과의 대치 2)금의 건국(1115) →군신관계(사대)의 요구 →이자겸이 정권 유지를 위해 수락 →북진정책의 좌절, 귀족사회의 분열 |
1)강동성의 역(1219):몽고와의 첫 접촉(무력충돌×) 2)대몽항쟁 ①내용 ㉠1차 침입:귀주에서 박서가 저항 ㉡2차 침입 -최우:강도(강화도)로 천도,팔만대장경의 조판 -김윤후:처인성 ㉢일반 민중:충주 다인철소,처인 부곡의 승리 ㉣삼별초의항쟁:강화도→진도(용장성)→제주도 (1270~73) ↑ ↑ 배중손 김통정 ②결과 ㉠고려의 주권과 고유한 풍속의 유지 ㉡부마국의 지위 |
1)북적:홍건적의 침입 ①공민왕 때 두 차례의 침입으로 개경 함락 ②정세운,안우,이방실,최영 등이 분전 2)남적:왜구의 침입 ①외교적 교섭:정몽주,김일→실패 ②무력토벌의 전개 ㉠최영:홍산대첩 ㉡이성계:황산대첩 ㉢정지:관음포대첩 ㉣최무선:“화통도감”의 설치→진포대첩 ㉤박위:쓰시마섬의 토벌(이종무:세종) ③결과 ㉠전국 해안지방의 황폐화 ㉡신흥무인세력의 성장 |
3)원의 간섭기 ①문화재의 소실:황룡사 9층 목탑,부인사 대장경판 ②영토의 상실:쌍성총관부,동녕부,탐라총관부 ③관제의 개편,격하-중서문하성,상서성→첨의부 -6부→4사(이부,예부:전리사,공부:폐지) ④행정의 간섭:정동행성․순마소․만호부의 설치,다루가치의 파견 ⑤경제적 수탈:결혼도감의 설치,특산물의 징수,응방의 설치 ⑥문화와 풍속의 교류:몽고풍, 고려양(두루마리,생채,병 등) ⑦활발한 신분 상승:전공,몽고귀족과의 결혼,몽고어에 능숙 등 ⑧개혁의 추진 ㉠충선왕 ⓐ토지제도와 수취체제의 폐단 시정 추진 ⓑ개혁추진세력의 미성장,원의 간섭을 인정한 상태에서 추진→실패 ㉡충목왕 ⓐ친원파를 몰아내면서 권세가들의 경제기반을 약화시키려는 개혁 추진 ⓑ권문세족의 반발과 원의 간섭→실패 ㉢공민왕(14세기)-중국:원․명교체기 ⓐ반원자주정책=친명정책의 추진(명의 연호 사용) -정동행성의 이문소 폐지,요동지방의 공략,몽고풍의 폐지 -쌍성총관부의 철폐:철령이북의 땅 수복 ⓑ왕권강화정책=권문세족의 억압 -정방의 폐지→인사권의 장악 -전민변정도감의 설치:신돈의 등용 -성균관의 정비,과거제도의 실시→신진사대부의 등용 ⓒ원의 압력,권문세족의 반발,개혁추진세력의 미약→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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