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광작농민과 도고상인의 성장
[ 제1절 벌열정치 ]
1. 벌열정치
․인조반정(1623)이후 서인의 집권
- 효종(1649~1659)때 송시열 등용
․남인의 등용
- 예송논쟁 (숙종 즉위년,1674), 세자책봉 문제 (숙종 15년,1689)
․숙종 20년(1694)이후 서인 장기 집권 (갑술환국)
- 노론 : 송시열 계열
- 소론 : 윤극 중심
․벌열의 성립 : 노론을 중심으로 한 장기집권
- 소수 가문에 의한 정권 독차지
- 많은 사림학자들의 지방 낙향 → 서원 설립 (숙종때 300여개)
- 농업에 종사하는 잔반 생김 ⇦ 오랜기간 관직 못나감
2. 탕평책
․노론의 벌열정치에 대한 반발 → 성리학 지상주의 비판
- 실학사상, 양명학, “정감록”, 서학(천주교) 추구
․탕평책 ⇦ 왕권의 권위회복
- 영조(1724~1776) ~ 정조(1776~1800)
- 붕당간의 대립완화 → 왕권신장
․시파(時派)와 벽파(辟派)의 대립 ⇐ 노론의 분열
- 시파 :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
- 벽파 : 죽음의 정당성 주장
․이인좌의 난 (영조 4년,1728) → 노론의 우세
․정당주의·무사안일주의 → 세도정치로 발전
[ 제2절 수취제도의 변화 ]
1. 대동법의 실시
․재정의 궁핍
- 전란에 의해 농토 황폐
- 양안에서 빠진 음결의 증가
(임진왜란 전 170만결 → 광해군때 54만결)
- 토지개간 장려, 양전 실시 → 숙종때 140만결
- 면세지 (궁방전, 관청·군영 소속의 둔전 등) 증가
중앙권신, 지방 세력가들의 토지점유 확대 조세액의 감소
․대동법의 실시 : 공물을 미곡으로 대신내는 수미법
- 조세의 감소와 방납의 폐해로 실시
- 광해군 즉위년(1608) : 이원직의 주장으로 경기도 시행
- 인조 원년(1623) : 강원도 실시
- 효종 (1649~1659) : 김육의 주장으로 충청도,전라도 시행
- 숙종 34년(1708) : 전국실시
․田 1結당 米 12斗 징수
- 선혜청 담당
- 쌀대신 布나 錢으로 납부가능
- 공납제도의 폐지 → 농민들의 경제적 부담 가벼워짐
- 상업자본 발전 (貢人 중심) → 독립적인 수공업 발전
2. 役法의 변화와 균역법
․임진왜란시 5위의 사실상 유명무실
→ 임진왜란 중 ‘훈련도감’설치하여 군사양성
․5군영 성립 : 중심부대
- 모병제의 실시
- 군역대신 1년에 2필의 군포 바침 (황구첨정,백골징포,인징,족징 등 폐단)
․균역법의 실시 (영조 26년,1750)
- 군포를 1필로 감함
- 왕실소속 어세·염세·선세를 정부 수입으로
- 양반소유 토지포함 모든 田結 (평안도·함경도 제외) 1결당 2두의 결작 징수
- 한유자등에게도 선무군관포 징수
․균역법 실시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군포부담 여전
[ 제3절 경제적 성장 ]
1. 광작농민과 농촌분화
1) 광작의 보급
․이앙법의 발달 → 이모작 가능
․우경의 보편화, 볏을 가진 쟁기 사용 ⇨ 소요 노동력 감소로 廣作의 보급
․저수지 시설
- 현종 3년(1662)에 제언사(堤堰司) 설치
- 정조 2년(1778)에 “제언절목” 반포
․부농의 광작 확대 → 빈농의 이농 가속화
- 두레 조직, 임노동자 이용
․소작농들의 임대 광작
- 打租法(1/2 상납) → 賭租法(정해진 양) ⇨ 자유로운 농업경영
․특수 재배물에 대한 상업적 생산 발달
- 인삼·담배·목면
* 담 배 : 광해군때(1600년代) 전래
고구마 : 1763년(영조 39년) 조엄이 대마도에서 가져옴
감 자 : 1800년대 전래
2) 신분질서 변화
․농업 기술향상, 농업 경영방식 발전, 상업적 농업생산 발달 → 평민지주 탄생
․부농들의 신분상승, 빈농들의 유민화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잔반 생김
2. 도고상업의 발달
1) 도고상인 : 수공업을 지배하여 상품을 독점 판매
․貢人의 활동
- 대동법 실시로 공납제도의 폐지, 관부에서 필요한 물품조달
- 공인자본의 성장 → 독점적 도매상인 ‘도고’로 성장
․사상들의 활동
- 서울 江商 : 한강을 따라 경기·충청 일대에서 미곡·소금·어물 판매, 조선업 지배
- 개성 松商 : 경기를 중심으로 육로를 따라 황해·평안지방, 충청·경상지방에서 인삼 판매
․시전상인
- 금난전권 이용하여 수공업 지배
2) 국제무역
․의주의 만상 : 의주의 중강·봉황시의 책문에서 淸과 私무역
․동래의 내상 : 일본과 사무역
․송상이 만상과 내상을 끼고 인삼과 은을 매개로 중개무역 전개
3) 場市의 발달
․신해통공 (정조 15년,1791) : 육의전 제외한 시전들의 금난전권 페지
․일반 장시의 발달
- 보부상을 상대로하는 도고인 객주나 여각이 발달 (은행업 겸함)
․운수업 발달
- 私船 이용, 선박·항로 개척
․상인 단체들의 조직
- 공인들의 공인계
- 육의전을 중심으로 한 ‘都中’이라는 조합조직
- 보부상들의 ‘보부상단’
4) 금속화폐의 사용 ⇦ 상업의 발달
․숙종 4년(1678)에 상평통보 주조
․17세기 말에는 화폐가 전국적 유통
․부를 축적하는데 사용 → 전황(전귀) 발생
․소작료를 화폐로 지불하는 ‘도전법(賭錢法)’ 발생
3. 수공업과 광업의 새양상
1) 수공업
․관영 수공업의 쇠퇴 : 공장안(工匠案) 페지 - 정조(1776~1800)
․수공업의 성장 ← 대동법의 실시
- 상인들이 주로 수공업 지배 (17·18세기)
- 철기·유기 제조업자들은 자립화하는 경우도 있음
2) 광업
․광업의 민영화 경향 (17세기)
- 設店收稅法 실시 → 別將에 의해 대행
․別將制 폐지 → 守令收稅制 실시 (18세기)
- 상업 자본가인 物主에 의해 광산운영이 크게 발달
[ 제4절 실학의 발달 ]
1. 실학의 발생
․실학 : 사회적 모순에 대응하기 위한 학문
- 17·18세기 벌열정치에 따른 몰락 양반 발생
- 광작에 의한 영세민들의 유민화
- 도고 상인들의 상공업 지배에 따른 영세 상인 몰락, 물가 폭등
․오랫동안 정권에서 벗어나 있던 남인 출신 실학자가 많음
⇦ 현실 개혁위한 정권 담당자들에 대한 비판
․연구 대상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었음 - 현실적·실증적·민족적 성격
2. 농업중심의 이상국가론
․經世致用의 학문 : 토지제도·행정기구·군사조직 같은 제도상의 개혁에 치중
․유형원 (효종,현종)
- 현종 11년(1670) “반계수록” - 전제·敎選·임관·職官·祿制·병제 검토·비판
- 공전제 주장 : 국가에서 토지를 공유하여 농민에게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나누어 줌
․이익 (숙종~영조)
- “성호사설” : 천지·만물·인사·經史시문의 5개부문, 백과사전적 저술
- “곽우록(藿憂錄)” : 국가제도 전반에 관한 의견 (개혁사상)
- 균전제 주장 : 농가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영업전의 소유를 확보
․정약용 (정조,순조)
- 순조 원년(1801) ‘신유사옥’으로 18년간 강진에서 유배 생활
- “경세유표” : 중앙의 정치조직에 관한 의견
- “목민심서” : 지방 행정에 관한 개혁
- “흠흠신서” : 형정에 관한 의견
- “탕론”,“전론” 등 사회개혁사상 발표
- 여전제 : 한마을(閭)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 경작하여 노동량을 기준으로 수확 분배
- 정전제 : 가족의 노동력을 기준으로 농업 종사자에게 “井”字로 구분한 토지의 8구를 분배,
1구의 수확을 세금에 충당
․농업을 중심으로 한 이상국가 구상
- 士農一致의 원칙에서 신분적인 차별 폐지
- 교육의 기회균등, 능력위주로 관리 등용
- 상공업의 발전이나 화폐의 유통에 의한 농촌 경제의 침식 방지
3. 상공업 중심의 부국안민론
․이용후생의 학문 : 상공업 발전을 통하여 사회의 번영 이룩 ⇨ “北學”이라 부름
․유수원 (영조)
- “우서” : 영조 5년(1729)~13년(1737)
문답형식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개혁안 제시
․박지원 (영조,정조)
- “열하일기” : 정조 4년(1780), 청의 문물소개 및 자기의견 제시
․홍대용 (영조,정조)
- “燕記” : 청에 갔던 기행문
- “의산문답” : 實翁과 虛字의 문답형식, 우주와 인간의 문제를 논함
․박제가
- “북학의” : 청에 갔던때의 견문기, 항목별로 그 시대 제반 문제에 대한 개혁 언급
․이덕무
- “연기” : 청에 갔던 견문기
․청의 문화 배우고, 현실개혁 의지
- 무위도식하는 양반유학자 비판
- 상공업·농업을 높이 평가
- 상공업 발전에 큰 관심
- 기술적인 발전으로 생산촉진·교통수단 발전으로 국가 경제력 증강 주장
- 신분제 폐지, 균등한 교육에 의한 직업적 관리 양성 주장
4. 國學의 발전
1) 한국의 역사에 관한 연구
․이수광
- “지봉유설” (광해군 6년,1614)
천문·지리·유교·식물, 한국의 옛 사회나 정치에 대한 견해
․이익
- “성호사설” (1740년경 정리), 백과사전적 저술
․“동국문헌비고” (영조 46년,1770)
- 지리·정치·경제·문화 등에 관한 한국학 백과사전
․안정복
- “동사통목” : 정조 2년(1778), 단군조선~고려말
- “열조통기” : 조선시대 역사
․한치윤
- “海東繹史” : 정조때, 외국 사서에서 한국의 역사 발췌, 기전체
․이긍익
- “연려실기술” : 영조때,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2) 만주사에 대한 관심
․이종휘 : “東史” - 고구려에 큰 비중
․유득공 : “발해고” - 정조 8년(1784), 신라통일의 불완전성 강조
․홍양호 : “해동명장전” - 정조 18년(1794)
3) 역사지리서
․한백겸 : “동국지리지” - 선조때
․신경준 : “강계고(疆界考)” - 영조때
․한진서 : “해동역사지리고” - 순조때
․정약용 : “강역고”,“대동수경” - 순조때
4) 인문지리서
․이중환 : “택리지” - 영조때
․신경준 : “도로고”,“산수고” - 영조때
5) 지도
․정상기 : “동국지도” - 영조때
6) 國語에 대한 연구
․신경준 : “훈민정음운해”
․유 희 : “언문지” - 순조때 한글에 대한 음운 연구서
* 영조 代
․“속대전” : “경국대전”이후의 교령을 편찬
․“속오례의” : “오례의” 수정
․“속병장도설” : “병장도설” 개편
․“동국문헌비고” : 한국의 문물제도를 분류·정리한 백과사전적 저술
* 정조 代
․“대전통편” : “경국대전”,“속대전” 및 그후의 교령을 합쳐서 편찬
․“문원보불(文苑黼黻)” : ‘반교문’,‘위유문’,‘제문’,‘교서’,‘國書’등
관각(館閣) 제신(諸臣)들의 문장수록
․“추관지” : 형법에 관한 역사와 내용 기록
․“도지지” : 戶曹의 사례 편집
․“무예도보통지” : 무예에 관한 그림과 설명
* 관찬 사업의 성행에 따라 ‘韓構字’,‘整理字’등 활자 주조
5. 西學의 전파
1) 서학에 대한 관심
․광해군때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 소개
․이익·안정복 등 실학자들 서학에 관심 ⇒ 사상적으로는 비판적
2) 신앙운동 - 정조때 남인학자들을 중심
․정조 7년(1783)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
․이승훈·이벽·이가환·정약전·정약종·정약용·권철신·권일신 등 남인 (이익의 문인들)
김범우(조선 최초의 천주교 순례자) 등의 中人
․서양 선교사의 전도보다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천주교 서적들을 읽고 깊은 관심
3) 典禮문제로 사회적 논란
․정조 9년(1785) : 서학을 사교로 규정하고 금지령
․ ″ 10년(1786) : 북경으로부터 서적 수입금지
․ ″ 15년(1791) : 전북 진산에서 神主를 없앤 윤지충을 사형 ⇒ 신해사옥
․ ″ 19년(1795) : 중국인 신부 주문모 입국,활약 → 교세확장,4천여명의 신자
4) 서학에 대한 박해
․정조때는 서학을 묵인하는 방향, 영의정 - 남인 채제공
․순조(1800~1834) 즉위하면서 서학에 대한 혹독한 박해
- 신유사옥 (순조 원년,1801) ⇦ 대왕대비 김씨와 연결되는 노론벽파가 남인시파를 타도
이승훈·이가환·정약종 등과 주문모 사형, 정약전·정약용은 유배
․황사영이 몰래 북경에 帛書를 보내려다 발각당해 사형 당함 → 탄압정책 심해짐
6. 과학과 기술
1) 농서 : 17·18세기에는 농업기술 향상에 대한 관심이 커짐
․신 속 “농가집성” : 효종 6년(1665), “농사직설”·“금양잡록” 합하고, 자신의 의견 추가
․박세당 “색경(穡經)” : 숙종(1674~1720)때, 과수·축산·원예·수리·기후 등에 중점
․홍만선 “산림경제” : 숙종때, 농업·임업·축산·양잠·식품가공·저장 등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알아두어야 할 사항
․서호수 “해동농서” : 정조(1776~1800)때 왕명, 한국의 농학을 종합
․고구마 재배법 ⇦ 구황식물로서 고구마에 대한 관심
- 강필리 “감저보” : 영조때
- 김장순 “감저신보” : 영조때
- 서유구 “종저보” : 순조 34년(1834)
․정약전 “자산어보” : 순조 15년(1815), 물고기에 대한 책
2) 의학서
․정약용 “마과회통” : 정조 22년(1798), 종두법 처음 소개
3) 서양의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도입
․선조(1567~1608) 말년에 명에 갔던 사신이 유럽지도 가져옴
․인조 9년(1631)에 정두원이 명에 사신으로 갔다오는 길에 천주교 서적과 함께
화포·천리경·자명종·만국지도·천문서·서양풍속기 가져옴
․소현세자 귀국시 과학서적 가져옴 (동생 봉림대군 ⇒ 효종)
․인조 6년(1628), 네덜란드인 웰테브레(박연) 표착 → 훈련도감에서 대포 만듬
․효종 4년(1653), 네덜란드인 하멜 표착 → 탈출하여 “표류기” 저술
김육의 노력에 의해 새로운 역법 연구 → 개량曆 시행
․정약용 - 기중기를 고안해서 화성(수원성) 축조에 이용
․지동설 - 김석문,이익,홍대용
7. 성리학에 대한 비판
․독자적인 견해 (주자의 설에 만족하지 않음) - 실증적인 태도로 유교의 경전들에 접근
- 윤휴 “중용주해”
- 박세당 “사변록” : 도가사상에 접근 사문난적으로 몰림
- 정약용
․양명학의 수용
- 남인과 소론 계통의 학자들, 정치적 진출에 제약을 받는 종실이나 서얼출신이 많음
- 정제두 “존언”
[ 제5절 예술의 새 양상 ]
1. 한문학의 변화
․실학의 정신 반영됨
- 박지원 “열하일기”속에 실린 “허생전”,“호질(虎叱)”
“방경각외전”에 실린 “양반전”,“민옹전”
․민간 설화의 소설화 (한문)
- “동패낙송(東稗洛誦)”,“청구야담”
․서얼·중인·서리 출신의 문인
- 홍세태 “해동유주” : 숙종(1674~1720) 때, 시 모음
- 고시언 “소대풍요” : 영조 13년(1737)
- 천수경 “풍요속선” : 정조 21년(1797) 매 60년마다 시집 간행
- 유재건 “풍요삼선” : 철종 8년(1857)
2. 古小說과 사설시조
․한글소설 (17·18세기)
- 허균 “홍길동전” : 광해군(1608~1623) 때
- 김만중 “구운몽” : 숙종 15년(1689) 경
- “장화홍련전”,“창선감의록”,“심청전”,“흥부전” → 권선징악
“임진록”,“임경업전” → 군담소설
“옥루몽”,“숙향전”,“춘향전” → 애정소설
․시조
- 長詩, 사실성, 소재의 다양화 → 사설시조의 출현
- 김천택 “청구영언” : 영조 4년(1728)
김수장 “해동가요” : ” 39년(1763)
3. 미술의 새풍조
1) 회화
․진경산수화 출현
- 정 선 (숙종~영조,18세기) : ‘인왕제색도’,‘금강전도’ 등
- 김홍도 (영조,정조,18세기) : ‘총석정도(叢石亭圖)’ 등
․속화의 유행
- 김홍도,신윤복,김득신 등
2) 자기
․청화백자 발달 - 정조(1776~1800)때 국산 안료 사용하면서 크게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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