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조의 치적>

 

영조는 노론을 우대, 정조는 남인을 우대

영조는 늙은 사람, 정조는 젊은사람 초계를 우대

 

영조~3대유폐(붕당, 사치, 음주), 신문고, 속대전, 무원록(법의학서), 기로과설치(60세이상의 과거), 권농정책, 노비공감법, 탕평책, 균역법

정조~제언절목, 추관지, 장용영, 신해통공, 정리자, 홍재전서(자선전), 일성록(일기), 한구자, 대전통편, 생생자, 탁지지, 규장각, 서얼발탁

 

문체반정운동~정조에 의해 주도된 문풍쇄신정책의 일환

노론벽파를 견제키 위함박지원(패관소품체)양반전

초계문신제도~당하관 이하 관리를 재교육에 의해 시럼을 거쳐 승진시킴

 

조선후기의 학자 채제공’~상업에 있어서 신해통공 실시, 정조때 문신으로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름, 재임 중 천주교 문제에 대해 온건한 정책을 유지

 

<탕평책의 실시>

 

탕평책의 실시원인~붕당정치의 문제점(극단적 정쟁, 집권욕으로 공론보다 사리에 집착, 사회분열, 왕권의 약화)

숙종때 처음으로 실시(노론 중심의 일당 전제화로 실패)

조제보합론을 실시 하려 하였음

영조의 완론탕평~온건론자를 등용, 이조낭관이 행사하던 낭천권과 천거권을 박탈

정조의 준론탕평

 

탕평책은 붕당간의 세력을 균형화하여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고, 정국을 안정시키려고 한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 미봉책에 불과

 

<실학의 발생>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표방하는 비판적, 실천적 학문사상이지만 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수광~지봉유설을 저술하여 천주실의를 소개함으로써 서양 문물을 소개

한백겸~동국지리지를 쓴 역사, 지리 연구의 선구자

김육~대동법 실시와 주전의 필요성 강조

윤휴~주자학 비판, 송시열의 예론을 비판하다 사형당맣

윤증~민본사상에 입각한 인간평등론 주장

 

중농학파~유형원, 이익, 정약용

중상학파~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인홍이언적과 이황 비판

정여립군주세습제를 부인하고 천하는 공물이라 함

 

성리학을 비판한 실학자

16C 정인홍, 정여립17C 윤휴, 박세당18C 정약용19C 최한기

 

김석문의 역학도해와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지전설을 주장하여 성리학적 세계관을 비판함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중농학파~경세치용의 학풍, 남인학자 중심, 지주제 철폐, 농촌을 배경

 

유형원~반계수록, 자영농을 바탕으로 병농일치의 군사제도와 사농일치의 교육제도

사상의 한계:적서차별과 군내의 양천구별, 문음제도, 노비제도 인정

이익~성호사설, 6좀론(노비제도, 과거제도, 양반문벌제도, 기교, 승려, 게으름), 화폐 폐단 지적

정약용~여유당전서:3부작(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3논설(탕론(왕조교체의 가능성제시), 원목(정치의 근본과 목민관 강조), 전론(공동소유, 공동생산, 공동분배))

박세당~색경, 윤휴와 함께 사변록을 지어 성리학을 비판하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림

홍만선~산림경제

서유구~임원경제지, 종저보

 

중상학파~이용후생의 학풍, 노론중심, 지주제 인정, 서울을 배경

 

유수원~우서, 대상인의 지역사회개발 참여

홍대용~임하경륜, 의산문답, 균전제 주장, 신분제도의 철폐, 의산문답에서 지전설 주장

박지원~열하일기, 과농소초, 양반전, 화폐유통의 필요성, 수레와 선박의 이용, 양반문벌제도의 모순 지적

박제가~북학의, 청과의 통상강화, 수레와 배의 이용을 늘릴 것, 절약보다 소비촉진

 

<조선후기 실학자(중농학자)의 토지개혁안>

 

토지제도는 앞에 있는 토지제를 비판하면서 성장

유형원의 균전론~토지국유제원칙, 토지매매금지, 대토지 소유 방지

이익의 한전론~유형원의 균전론 비판, 영업전(소유·세습가능)은 팔지 못하게 하고 매매전은 팔 수 있게

정약용의 여전제~산천과 계곡을 경계로 30호를 1, 공동경작, 공동소유

정약용의 정전제~여전제는 이상적인 형태라고 스스로 비판하고 차선책 제시

 

이런 실학자의 개혁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지주제의 확산이다.

대토지 소유를 방지하고자 함

 

<양명학에 대하여>

 

양명학은 성리학을 비판

양명학이란 주관적·실천적인 유학체계로서 주기론적입장

전습록을 이황이 전습록변에서 비판하고 정제두가 변퇴계전습록변에서 전습록변을 비판

 

성리학의 사상적 한계로서 비판, 16C 중엽~17C 에 이르러 일부학자 관심(남언경, 이요, 자유, 최명길, 이수광, 허요)

18C최 정제두에 의해 학파 형성

강화 중심의 강화학파(성호학파가 아님)

남인, 소론학자+불우한 종친출신 학자

양명학의 교지는 선행후지, 지행합일, 치양지이기이원론 부인

이건창·박은식 등에 의해 계승·연구됨

일제 식민치하에서 박은식의 유교구신론으로 계승되었다.

 

<천주교 박해>

 

17C 에는 학문적 대상으로 들어옴. 18C 에는 종교적 입장으로.

조선인 스스로 포교되고 연구 되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첫 소개

추조적발사건, 반회사건

 

사옥명

내용

처형자

3대 사옥

신해박해

진산사건, 윤지충의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하다 발각

윤지충(최초의 순교자)

신유박해

집권 벽파가 시파인 남인계를 축출하고자 탄압(정치적인 색채가 짙음)

정양용(강진유배), 황사영백서사건

기해박해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권쟁탈전 상재벽서 남김

오가작통법·척사윤음 발표

병인박해

대원군은 9명의 프랑스 신부 학살, 병인양요의 원인이 됨

대왕대비교령으로 천주교 금압령 이후 3년간 8000명 처형

 

대부분의 민중들은 천주교의 전파에 회의적이었다.

대원군은 처음부터 천주교를 박해한 것은 아니었다.

천주교의 최초의 전래자~이수광

최초의 신자~허균

최초의 세례자~이승훈

최초의 조선인 신부~김대건

 

<조선시대 종교 민간신앙>

 

태조~억불, 도첩제, 무학(한양천도의 주역)

태종~억불, 철저한 억불책, 도첩제 강화

세종~불교종파 정리, 사원전·노비제한, 궁중 내불당 짓고 신봉, 기화

세조~불교숭상, 원각사 건립, 신미(간경도감에서 불경간행)

성종~불교 억압, 출가 금지시킴

 

불교는 왕실이나 민간부녀자 중심으로 민간신앙의 하나로서의 역할을 수행

 

도교는 중국중심의 세계관이 없다

도교는 국가의 권위를 높이고 상무정신을 기르며 유교의 문약에 빠지고 사대에 치우치는 약점을 보완

 

 

<조선의 화가들>

 

조선전기(15C~16C) 특징~인물산수화·진취직·씩씩하고 낭만, 사군자의 발달(16C)

안견의 몽유도원도, 최경의 채희귀한도, 이상좌의 송하보월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17C~18C ~진경산수화 발달, 바위산이 많은 우리 자연을 묘사

18C 정선은 우리나라의 산수를 사실적으로 그림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금강산도, 여산초당도, 입암도진경산수화

 

18C 후반~실학적 화풍, 서양화법영향, 풍속화, 민화발달

김홍도는 촉석정도, 씨름, 서당 등 배경 없는 농촌의 생활상 묘사

신윤복은 주유도, 주막도, 선유도, 여인도 등 주로 도시의 여인 묘사, 배경이 있음

강세황은 영통골 입구도, 표암유고

김수철은 산사 만종도

 

19C 특징~실학적 화풍 쇠퇴, 복고적 화풍

 

조선시대의 3대 화가는 안견, 김홍도, 장승업

 

순수청자음각청자상감청자분청사기순수백자·청화백자철사·진사백자

상감청자까지가 고려시대(청자는 귀족적임), 조선의 백자는 실용적

·····

 

<조선시대 과학기술>

 

조선후기에 서양과학 기술문화의 전래 조선전기에는 외래과학기술의 접목이다.

조선전기~앙부일구, 측우기, 규형, 혼천의, 간의

무기제조 기술의 발달~철갑선, 비거도선, 화포, 화차, 비격진천뢰,

수학과 역법의 발달~사라센

조선후기~서양문물의 전래(곤여만국전도), 천문학 연구(김석문, 횽대용, 이익, 정약용, 일식·월식·조수간만에 관한 연구가 행해짐, 지봉유설)

동식물에 관한 연구(색경, 산림경제), 정약전이 흑산도 부근의 어류와 해산물등 155종을 연구하여 저술(자산어보)

정약용의 서양과학 기술 응용

서양의 과학문명 수용은 조선후기 이고, 서역·중국의 과학문명 수용은 조선전기 이다.

 

<건축과 석탑>

 

백제~익산미륵사지 탑, 정림사지 5층석탑

신라~적석목곽분, 황룡사 9층목탑, 분황사 모전 석탑, 첨성대

통일신라~횡혈식 석실분, 해중릉(문무왕릉), 높은 기단위에 3층탑(불국사 석가탑, 감은사지3층석탑, 다보탑, 석굴암,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고려~외관이 높고 웅장함(주심포다포), 봉정사 극락전(최고의 목조건축물),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조사당, 수덕사 대웅전, 석왕사 응진전(원의 영향을 받은 다포양식, 심원사 보광전(다포양식)

흥국사지 석탑(신라계통의 양식을 계승), 현화사 7층 석탑, 월정사 89층 석탑, 경천사10층 석탑(목조건축양식을 본뜸, 훵에 영향 받음)

 

조선시대~15C:궁궐·성곽·성문·학교 건축 중심

16C:서원건축 중심

17C:사원건축 중심

18C:수원성, 평양 대동문, 불국사 대웅전

19C:경복궁 근정전·경회루

원각사 10층 석탑(경천사 10층탑의 영향을 받음, 원에 영향 받음), 법주사 팔상전(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목탑)

대한제국~독립문(프랑스의 개선문 모방), 덕수궁 석조전(르네상스 양식). 명동성당(중세의 고딕양식)

 

<조각·공예품의 역사>

 

신라의 금동미륵반가상은 일본에 영향을 줌

백제는 서산마애삼존불상

통일신라시대~석굴암, 만불산, 불상, 무열왕릉비, 상원사종(현존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됨), 봉덕사종

 

고려(타시대에 비해 공예가 특히 발달), 조각은 신라에 비해 뒤떨어짐, 불상에 있어서 철불 주조가 유행함, 범종, 나전칠기, 은입사

조선시대~생활필수품 중심, 값싼 재료 이용, 소박하고 견고

15C 고려자기를 계승한 분청사기가 등장하고 16C 청화백자, 칠사백자, 진사백자 등이 발달

 

<조선시대 의학서적 및 각종 서적>

 

세종(향약채집월렴, 향약집성방, 태산요록(산부인과의서), 신주무원록(법의학서))

서거정의 동국여지승람은 전하지 않음, 역대제왕혼일강리도(태종, 세계지도)

신숙주이 해동지리지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임

 

역사지리지~정약용의 아방강역고

인문지리서~이중환의 택리지(팔역지 라고도 함), 각지방의 것을 훙미있게 서술

지도 제작~정상기의 동국지도(백리척의 축척법을 사용)

언해가 들어간 것은 한글서적임

 

<조선왕조 실록 및 기타 사서>

 

현존하는 실록은 조선왕조 실록 밖에 없음

선조·현종·경종 은 수정 실록을 함께 갖고 있다.

사초와 시정기는 일급문서로 사관이외에는 어떠한 사람도 열람 불가

사초는 사관이 국왕 옆에서 기록한 것이고, 시정기는 각 관청의 문서를 종합하여 춘추관서 작성

선원록~조선왕실의 족보, 숙종때

폐위된 임금은 일기라 했다. 실록이 편찬 완료된 뒤에 수정·개수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의 역사서>

 

성리학적 사관(고려국사, 동국사략)자주적 사관(15C,고려사 절요, 동국통감)존화주의 사관(16~17C, 기자실기, 동사찬요)민족주의 사관(18C~, 동사강목, 해동역사)

동국통감은 사대주의적이기는 하나 단군을 민족시조로 설정

한치윤의 해동역사~중국등 외국의 사서를 인용하여 기전체적 분류사

대동야승~17C 중엽까지의 야사, 야담을 모은 야사집, 용재총화, 필원잡기, 패관잡기

 

신채호의 독사신론, 박은식, 정인보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를 체계화하고 민족주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다.

 

<글씨의 역사>

 

구양순체, 왕희지체는 고려전기에 발달, 고려 후기는 조맹부체가 발달

최우, 유신, 탄연은 구양순체. 최우, 유신, 탄연은 고려시대 김생은 신라 사람

훈련도감자와 생생자는 목판, 춘추강자는 철판

 

<음악의 역사>

 

향가는 삼국유사에 14, 균여전에 11수가 전함.

보현십원가는 고려시대 만들어짐.

향가는 승려와 화랑이 지었기 때문에 불교적 색체를 띰

한말에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에서 상영

 

<삼정의 문란>

 

전정~은결, 진결, 도결, 백지

군정~족징, 인징, 강년채, 백골징포, 황구첨정, 마감채

환곡~늑대, 탄정, 반작, 가분, 허류

16C 전정문란, 17C 공납문란, 18C 군역문란, 19C 환곡문란 극심

 

<홍경래의 난과 진주민란>

 

홍경래의 난은 민란의 선구적 역할, 다양한 계층, 평안도 가산에서 일으켜서 정주성에 웅거

난은 처음에는 광산노동자가 주였으나 후에 농민이 주력이 됨

진주민란~진주목사 홍병원의 가혹한 탐학이 원인, 농민 반란의 전국적 확대를 일으킴

암행어사를 파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바로 잡고자 했으나 실패

·구향의 향전에서 신향이 승리

 

+ Recent posts